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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희귀질환 관리 위한 의료 인프라 구축해야
시론 희귀질환 관리 위한 의료 인프라 구축해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2.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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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주(한국희귀질환연맹 대표)

필자는 2002년 7월 2일 '세식구가 윌슨병 아들 목 조른 눈물의 부정'(조선일보), '광주 장애인 아들 목 졸라 죽인 아버지 검거'(경향신문), '죄인이지만…불치병 아들 살해 아버지 동정여론 봇물'(국민일보) 등의 충격적인 기사를 접하면서 조선일보에 '희귀질환 비극 막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자신과 같은 불치 희귀병(윌슨병으로 오진된)으로 중증 장애인이 된 아들의 고통과 절망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죽여 달라는 아들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던 한 아버지에 대한 기사였는데, 우리 사회에서 희귀질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처해 있는 절망적인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수천여 종이 넘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은 이 가족처럼 자신이 앓고 있는 병명조차 모른 채 방치돼 있다. 단순히 의료비 지원만으로는 희귀질환자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희귀질환의 효율적인 진단·치료·관리를 위한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후 5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 국내 희귀질환자와 가족들이 처한 성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2001년 정부의 희귀난치성질환 의료비지원사업은 4개의 질환에서 시작하여 2008년 현재 111개 질환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희귀질환 정보를 제공하고자 '희귀난치성질환센터'를 설립하였고, 2006년에는 3개의 '희귀질환 지역거점병원'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2006년 장향숙 의원의 국정감사정책리포트 '설문조사를 통해 본 희귀난치성질환자 생활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희귀난치성질환자 94%가 정부지원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진단시스템 부재로 인해 환자 중 62%가 오진을 경험했으며 증상을 감지하고 확진을 받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각 질환별로는 환자수가 적지만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세계보건기구, 6천여종 이상 추정) 총체적으로 볼 때 희귀질환이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적지 않다(10%이상). 희귀질환은 그 유병률을 미국에서는 20만명 미만의 질환으로 정의하여 약 2천 5백만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일본은 5만명 미만을 '난병'이라고 정의하며 약 53만 명이 등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만 명 미만의 유병률을 가진 질환으로 정의하고 약 1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희귀질환이 오진되거나 확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통계자료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현황파악조차 안되고 있다.

이는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국내 전문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차원에서 볼 때 희귀질환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는 점이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질환으로 질환 자체가 워낙 드물기 때문에 일반 의료진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특수 검사를 통해서만 확진될 수 있다. 또한 가족 내 재발이나 대물림의 가능성으로 환자와 가족에게 사회 심리적 부담과 경제적 낭비를 가져오며, 효율적인 치료제의 부재로 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희귀질환의 특성을 고려할 때 희귀질환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희귀질환과 같은 유전성질환을 전문적으로 진단·치료하고 예방 차원에서 환자와 가족을 관리할 수 있는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임상 각 분야의 전문의의 협진을 통한 통합적 진료를 할 수 있는 전문임상센터(Clinical Genetic Center)를 지정·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 임상센터를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전달체계를 확립하여 조기진단 및 적절한 치료를 유도하고, 유전상담을 통한 예방과 삶의 질을 위한 관리차원의 종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동시에 전문의의 양성 및 일반 의료진에 대한 교육 정보 제공을 담당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전문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 실정에 맞는 유전의료 전문인력(임상유전학 전문의·Non-MD Ph.D 의학유전학 전문가·유전상담사 등)의 양성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비인기과를 회피하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여 '공공의 제도'와 같은 실질적인 대안이 모색되어야만 임상유전학 전문의를 교육·배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최근 의료현장에서 그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유전상담의 경우, Non-MD 전문유전상담사인증제도와 유전상담의 급여화를 위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아가 희귀·난치성질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전질환에 대한 조기진단법과 효율적인 치료법의 개발은 연구를 통해서만 기대할 수 있다. 다행히 21세기에는 인간유전체 연구사업의 결과를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 유전자의 발견, 질병의 발병기전의 규명, 새로운 진단법과 치료법 개발 등의 연구가 활발히 행해지고 있어, 새로운 효율적 치료법의 개발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효율적인 '맞춤 유전치료'시대가 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환자들 또한, 한국희귀질환연맹의 희귀질환DB 구축을 위한 설문조사에서 정부를 비롯한 정책 결정기관에 대해 바라는 점으로 62%가 '연구지원'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희귀질환에 대한 기초 및 치료제 개발 등의 연구는 시장경제성의 원칙 하에서는 그 자발적인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희귀질환의 진단 및 치료에 대한 연구를 유도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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