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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훈의 "여기는 NIH입니다"]<34>
[이시훈의 "여기는 NIH입니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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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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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방문기
▲ 이시훈(내과전문의, NIH visiting fellow)

NIH에서 함께 실험실 생활을 하던 의과대학 후배가 작년에 클리블랜드에 있는 Case Western Reserve 대학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 후배는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미국 의사 시험을 치르고, 조만간 임상 수련을 계획하고 있는데, 한국뿐만 아니고, 유럽이나 이스라엘, 인도, 중동 출신 의사들도 비슷한 코스를 많이 선택하고 있는 것 같다. 레지던트 지원을 위한 면접 시 연구 경험이나, 가시적인 논문 등의 결과물이 있으면 유리한 점도 있고, 임상과 연관된 실험실 경험을 쌓는 것 자체로도 추후 진료 및 임상을 수행하는데 매우 좋은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NIH 생활을 하는 동안 가장 가깝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후배이기 때문에 꼭 클리블랜드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클리블랜드에 가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모교뿐만 아니고 우리 나라 현대 의학에 있어서 크나큰 공헌을 한 세브란스씨가 바로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출신이기 때문이다. 예과 시절 교양 과목시간부터 의학 입문 시간이나 의학사 강의 시간에 항상 '클리블랜드 출신의 기독 기업인 세브란스씨의 기부'로 세워진 세브란스 의학교와 병원에 대해서 수없이 들어 왔기 때문에 언제고 한번은 들러 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삼일천하로 막을 내린 갑신정변 당시 우정국의 개국연에서 심한 자상을 입은 당시의 실력자 민영익을 치료해 준 것을 계기로 왕의 신임을 얻은 알렌에게 서양식 의학을 도입한 왕립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게 하고, 곧 이의 이름을 제중원으로 개칭했다. 이후 조정으로부터 운영권을 위임 받아 병원의 운영을 맡게 된 개신교 선교부의 에비슨 박사는 제대로 된 병원과 의학 교육 기관의 설립, 운영을 위해서는 자금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온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금 운동을 벌였다. 때마침 클리블랜드에서 마련된 강연회에서 조선의 의료 현실과 병원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어떤 젊은 신사가 다가와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볼 것을 권유하였다.

그 젊은 신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브란스씨의 아들이었는데, 에비슨 박사를 만난 세브란스씨는 뜻밖의 거액을 희사할 것을 에비슨 박사에게 제안했고, 너무 놀라고 고마워 어쩔 줄 모르던 에비슨 박사에게 "도움을 주는 나의 기쁨이 도움을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큽니다." 라고 말했던 세브란스씨의 일화는 아직도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다. 실제로 병원 설립을 위한 기부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던 에비슨 박사와 병원 설립을 위해 기부할 곳을 알려달라고 했던 세브란스씨의 기도가 기적적으로 일치하게 된 것이라는 뒷얘기도 꽤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모교에서는 세브란스씨 가문의 후의에 보답하기 위해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 후손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하지만 약 1세기 전에 클리블랜드 일대의 거대한 부자였던 그 가문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다만 클리블랜드에서 세브란스 이름이 들어간 음악당이나 박물관 등을 찾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 많은 재산을 남김없이 사회에 환원했기 때문이라는 추측과 함께 다시 한번 세브란스씨와 그 가문에 존경을 표시하였다. 세브란스 새 병원을 개원한 3년 전에 세브란스씨의 후손을 결국 찾아 개원식에 초대하여 감격에 겨워하던 모습도 꽤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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