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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르세미술관을 꿈꾸다!
한국의 오르세미술관을 꿈꾸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7.08.0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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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길 원장 (닥터박갤러리 대표)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산자락에 검붉은 철판이 드문드문 내려앉았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그 모습은 마치 색이 고운 한 마리의 새가 녹음 속에 웅크리고 앉은 듯하다. 러브호텔이 즐비한 강가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닥터박갤러리'의 주인은 박호길 원장(서울 강남·박호길내과의원)이다.
그곳에선 마침 개관 1주년을 기념해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란 부제가 붙은 '정종미 전'이 한창이다. 고운 색감과 질감을 내기 위해 숱한 시간과 손이 갔을 작품들이 어쩐지 갤러리 자체를 닮았다. "이거 정말 제대로인데?" 갤러리를 둘러보고 난 소감이다. 세심한 공간 배치며 곳곳에 내걸린 작품 면면에서 박 대표의 내공이 묻어난다.

"보니까 사고싶고 사려니까 알아야겠고"
"의사가 남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하루종일 진료실에 틀어박혀 아픈 사람들을 맞대야 하는 고달픈 직업이지요.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이 무료하고 정서적으로 메말라간다고 느꼈을 무렵, 취미로 그림을 보러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첫 발은 우연함에서 출발한다. 우연한 '호기심'이 '관심'이 되고, '관심'은 곧 '열심'이 된다.

"그림을 자주 많이 보니까 자연스레 안목이 높아져요. 그러다가 '저 그림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이 생겨나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공부를 하게 되고. 보니까 사고싶고 사려니까 알아야겠고. 그렇게 애호가에서 컬렉터로 변해 갔죠."

30여년간 스스로 작가론과 미술이론에 탐닉했던 때문일까. 그동안 수많은 화집과 도록에 얼굴을 묻어 온 그에게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중섭이나 박수근 화백의 그것 대신, 손동진·베르나르 뷔페·부상파이 등 차별화된 컬렉션이 남았다. 인상파 작품으로 프랑스 미술의 한 시대를 보여주는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처럼, 'OOO 화백' 또는 'OOO 미술'을 대변할 수 있는 '한국의 오르세미술관'을 꿈꾼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나, 돈 안 많아요"
요즘 미술품 시장이 호황이란다. 모 화백의 그림이 최고가를 갱신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미술품 시장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려면 어찌어찌 하라는 정보성 기사도 눈에 띈다. 당연히 미술품 수집가로 제법 이름을 날린 박 원장의 '수확물'에 은근한 기대와 시샘이 쏠리기도 했을 터.

"모르는 사람들은 미술품 수집해서 돈 좀 벌었겠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아요. 지금까지 모은 수집품을 팔아 본 적이 없으니 돈을 벌었을 리가 없잖아요? (돈을) 쓰기야 많이 썼죠. 없을 땐 할부로도 사고……."

처음에는 아내가 그의 취미생활을 마뜩잖아했다. 돈이 남아서 투자하는 것도 아니요, 팔아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아니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림을 보러 갈 때면 말리려는 지 따라나섰던 아내가 차츰 달라졌다. 이젠 두 부부가 모두 OK하지 않는 작품은 아무리 좋아도 사지 않는다. 박 원장에게 아내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조언자다.

"혼자만 즐거우면 무슨 재민겨"
내로라 하는 작품들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뿌듯했어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그가 미술품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에 눈을 뜨게 된 건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내 개인 자산으로만 두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종교의 영향이라면 영향이랄까?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려면 '나눔'이 중요합니다. 꼭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나눠야 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미술관은 예술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을 서로 나누는 장이죠."

버려진 땅을 사들이고 건축가로 승효상씨를 결정하고 건물을 지어 내려가는 데는 꼬박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아가 그는 갤러리가 미술 전시 공간을 뛰어넘어 복합 문화 예술 공간이 되길 바랐다. 작은 폭포를 지나 보트를 탈 수 있는 '물댄동산'과 '나루터', 조촐한 파티를 열 수 있는 '창조의길', 웬만한 공연은 거뜬히 소화해낼 '방주극장', 아내의 이름을 딴 세미나·연주 공간 '운선홀', 강을 향해 틔여있는 카페 '쉴만한 물가' 등은 전시실 못지않게 돋보이는 공간이다.

"의사가 어떻게 이런 걸 다…"
닥터박갤러리는 닥터(의사)인 박호길 대표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의사로서 살아온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대변하기도 했다. 한평생 진료실에서 환자를 봤던 땀과 열정이 갤러리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달까.

"사실 개관 이전부터 유명세를 좀 탔어요. 국내에도 사설 갤러리가 꽤 있는 편인데, 닥터박갤러리가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끈 건 아마도 제가 의사이기 때문일거에요. 의사가 어떻게 이런 걸 다……. 뭐, 이런 반응들 아니겠어요?"

이런 반응의 내면에는 의사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깔려 있다고 박 대표는 설명한다. 그가 '의사, 그리고 또 하나의 길'을 강조하는 이유다.

"사회환원이란 거창한 구호에 주눅들 필요가 없어요. 환자진료 밖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취미와 재능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또 하나의 길'을 만들면 사회적으로 공익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제2의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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