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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습득도 의무다

기술습득도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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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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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필자는 얼마 전 1992년부터 국내에서 사용이 금지됐던 실리콘 젤 유방 보형물이 15년만에 국내 시판이 허용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최소한 의학 담당이거나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 그 때문인지 일부 신문과 방송에서는 필자의 기사가 나간 뒤 이 아이템을 다시 기사로 내보내기도 했다.

잠시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전까지만 해도 유방확대수술에는 액상 실리콘 젤 유방 보형물이 대세였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이 보형물을 넣은 일부 여성에게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몸 안에서 실리콘이 손상되면서 끈적끈적한 물질이 새어나오고, 그 물질은 이내 다른 인체 조직을 썩게 만들거나 관절염 등을 유발했다.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1992년 미국은 실리콘 젤의 사용을 금지했고 한국 또한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로부터 15년간 유방확대수술에는 식염수 보형물이 사용됐다.     

솔직히 필자는 두 보형물의 차이를 알 수 없다. 다만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한결같이 식염수 보형물이 액체이기 때문에 비닐 팩을 가슴에 집어넣은 것처럼 물렁물렁하고 이질감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반면 이번에 시판이 허가된 실리콘 젤은 반고체 상태라서 촉감이나 모양이 실제 유방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 실리콘 젤의 장점은 또 있다고 한다. 액상 형태의 기존 실리콘 젤과 달리 몸 안에서 손상돼도 두부처럼 뚝 잘린 채로 꽁꽁 뭉치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응집력이 강한 이런 속성 때문에 이 실리콘 젤을 '코히시브(cohesive) 젤'로 부른다고 했다.

여성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라고 한다. 유방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성형외과마다 여성들의 문의가 폭주한 것은 물론 실제 예약도 두세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8월 중순 휴가를 노려 가슴을 키우려는 여성도 있었고 심지어 추석 연휴 때 수술 받으려고 지금 예약을 해 둔 여성도 있다고 한다.

성형외과 의사들 말로는 전체 예약자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이 이미 유방확대수술을 받은 여성이라고 했다. 식염수 보형물을 이용한 유방성형수술을 받았는데 만족스럽지 않아 '업그레이드'하려는 것이다. 식염수 보형물 수술이 500만 원대, 새로운 실리콘 젤 수술이 650만~700만 원대이니 새로 수술을 받는 사람은 최소한 1000만 원 이상의 돈을 쓰는 셈이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런 수술에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 가치관 때문에 수술 받는 여성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하향 평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득이 적은 사람은 고소득자의 행태가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고소득자들은 거액을 들여 '고작' 가슴을 키우려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수술을 받으려는 여성의 개인적 고민은 안중에도 없다.

혹시 의료계 내부에서도 이런 하향 평준화 시도는 없을까.

2년 전 필자가 식약청에서 코히시브 젤의 국내 시판 승인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필자는 코히시브 젤이 국내에서도 사용된다면 성형외과 시장이 반짝 특수를 누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기사에 반발했던 사람들은 시민단체도, 소비자도 아니었다. 바로 코히시브 젤을 쓰지 않고 식염수 보형물을 사용한 유방성형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의사들이었다. 이런 경우를 '내부의 반대자'라고 불러야 할까? 유방성형수술 자체를 비난할 게 아니라면 의사들이 할 일은 다양한 방법을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어느 방법을 택할 것인지는 소비자에게 맡겨두면 된다.  

의료기술에 관한 한 하향평준화는 옳지 않다. 하향평준화란, 못마땅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모든 것을 맞추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환자에게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의사의 의무'가 아닐까.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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