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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5>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5>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7.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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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죽음 맞이' 연구 시작할 때"

연명치료로 인해 환자는 고통 속에 죽음의 과정을 연장해야 하고, 이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은 정신적인 고통과 함께 막대한 의료비 문제로 경제적·사회적·심리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3차 의료기관의 병상을 차지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환자들로 인해 정작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신속한 입원치료를 받지 못한 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병을 키우기도 한다.
<의협신문>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 그리고 의료진들과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최준식 (한국죽음학회장.이화여대 대학원 교수·한국학과)

한국인들은 죽음 문제에 관한 한 매우 소외되어 살고 있다. 그것은 한국인에게 적합한 죽음 문화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문제도 한국에 바람직한 죽음 문화가 없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한국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는 여러 가지 경우의 예로 설명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는 매우 정형화 되어 있다. 대부분 죽음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혹은 금기시한다.

한국인이 심히 늙거나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고통은 시작된다. 이 경우 한국인들은 무조건 생명의 연장만을 생각할 뿐이지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생을 마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살아가는 동안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사는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

만일 어떤 환자가 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하자. 이 경우 다시 건강을 찾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라도 죽음을 준비하면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있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살 수 있다는 헛된 꿈에 강력한 치료에 돌입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대단하지만 본인은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나중엔 정리고 뭐고 그저 사경을 해매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을 마감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생명이 단 6개월이 남아 있다고 해도 생을 품위 있게 마감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빈둥빈둥 30년을 살다 실속 없이 죽음을 맞이하느니 6개월이라도 단단하게 죽음 맞을 준비를 하고 떠나는 게 더 유효할지도 모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미리 생전 유언장이나 사전의료지시서 같은 것을 작성해 준비하는 것일 게다. 유언장에서는 재정적인 문제나 장기기증 등과 같은 문제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의료지시서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수 있게끔 치료 방법을 미리 확실하게 해둔다. 한국에는 이런 일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 안타깝다. 그런가 하면 임종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 이런 이들을 어떻게 응대해야 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어떤 의사는 한국에는 의사나 간호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對)임종 환자 지침서 하나 없다고 통탄해 했다.

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들도 임종 환자를 어떻게 돌보고 그와 어떻게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하는지 거의 모르고 황망하게 대처한다. 한국인들은 거개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병원에서라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이른바 영면실 혹은 임종실 문제이다. 이 문제는 서울대의 허대석 교수가 누차 이야기한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그렇게 하다 환자가 임종하면 이번에는 장례 문화 역시 빈약하기 짝이 없다. 물론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장례식은 문제가 많다. 갈수록 영안실은 화려만 해져 가는데 앞에서 본 영면실은 보험이 안 된다는 이유로 갖추고 있는 병원의 숫자가 손을 꼽는다. 영안실 문화는 어떠한가? 고인에 대한 추모는 거의 없고 문상객의 숫자나 조화의 리본 숫자로 세를 뽐내려고만 한다. 고인의 영정 앞에서 잠깐 추도하는 척하다가 응접실로 가서 저들끼리 웃고 떠들다 시간이 좀 되면 돌아간다. 그렇게 하려면 뭐 하러 문상 와서 시간 낭비하고 돈을 허비하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 결혼식이나 장례식에는 온갖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 그 다음에 고인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통일된 바가 없다. 화장이 이제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다행이긴 한데 인구가 1000만이 훨씬 넘는 서울에 화장장 하나 없다. 만들려고 해도 혐오시설이라고 주민들이 결사반대하기 때문에 만들지 못한다.

그렇게 고인을 보내고 난 다음에 남은 가족들의 슬픔에 대해서도 방치 상태이다. 특히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슬픔은 상상을 절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사회는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성수대교 사고 때 중학생 딸을 보낸 아버지는 결국 3년 뒤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 이런 후(post) 비극은 이들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기관이 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 모두가 죽음 문제는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외면하고 있으니 위에서 말한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국인들은 죽음에 관한 한 내팽개쳐 있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곤 했다.

▲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1931년 작 <기억의 영속>.

위에서 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죽음 문화를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죽음에 관한 문제는 종교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한 사회가 한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면 죽음에 대한 생각도 이 종교를 중심으로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는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에 입각해서 죽음 프로그램을 만들면 되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기독교는 내세관이 뚜렷한 종교이기 때문에 진실 되게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세에 대한 희망과 함께 훨씬 편안하게 죽음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현재 다종교 국가처럼 되어 있고 교리가 사뭇 다른 불교와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새로운 죽음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어떤 종교에 초점을 맞추어야할지 난감해진다.

상황이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관은 그들이 신봉하는 종교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유교(와 샤머니즘)적인 세계관에 입각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다른 지면을 빌어 이미 피력한 바 있어 여기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현대 한국의 사회문화는 여전히 유교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 그것은 마지막 왕조인 조선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유교적인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교는 주지하다시피 내세관이 없다. 죽으면 인간의 육체(魄·백) 는 썩어 없어지고 정신(魂·혼)은 공중에 흩어져 사라진다. 따라서 유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현세에만 집착하게 된다. 중환자실 에서 보이는 유난한 한국인들의 현세 집착성은 이런 데에 연유하는 것이다. 사후생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무조건 현세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적합한 새로운 '죽음맞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인들이 죽음과 그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어떤 하나의 학문적인 접근법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의학이나 간호학, 인문·사회학, 장례학 등이 포함된 학제간의 접근이 아니면 힘들 것이다. 연구가 이루어지면 그것을 가지고 죽음의 각 단계에서 우리 한국인이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가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결코 녹록치 않은 사업이다. 나는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이 연구를 해야 된다고 오래 전부터 주장했는데 아직은 호응이 미약하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을 일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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