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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력'대신 '건강' 권해야
'정력'대신 '건강' 권해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5.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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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2년 전의 일이다.

한 다국적 제약사에서 조루증 치료제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했다. 종전의 약이 거의 바르는 제품이었던 반면 이 약은 간편하게 먹는 약으로 개발돼 환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글로벌 임상시험 참가자의 자격요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사정에 걸리는 시간이 2분 이내인 조루증 환자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졌고 부인이 임상시험 동의서에 직접 서명을 한 뒤 남편이 사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스톱워치로 일일이 측정하고 기록해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임상시험 참가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은 달랐다. 11개 임상시험센터에서 160명이 넘는 참가자가 쇄도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1개 센터 당 평균 3명이었던 데 반해 우리나라는 15명을 웃돌았다.

이 결과를 두고 "부끄럽게 여겼던 성기능 장애를 당당하게 치료하려는 긍정적인 변화다"라는 해석이 있었다. 그러나 "남성의 섹스 능력을 지속 시간과 연결하는 분위기가 유달리 강한 우리 문화를 반영한, 대표적 사례다"라고 해석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력, 또는 섹스능력에 대한 남성의 집착은 놀랄 만큼 강하다.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규모가 어느 덧 1000억 원에 이르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점은 입증됐다. 물로 '진짜 환자'들의 고통은 클 것이다. 그들에게는 발기부전 치료제가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 판매된 680만 정의 적지 않은 분량이 단지 '정력'을 키우려는 남성에 의해 소비됐다.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구할 수 있는 이 약들이 인터넷이나 밀거래를 통해 멀쩡한 남자들에게 들어가고 있다.

일부 유흥주점에서는 '가짜 환자'를 병원에 보내 처방전을 받은 뒤 약을 구입하고, 그 약을 단골고객에게 서비스로 제공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약의 부작용보다 '정력'이 더 중요한 것일까?

정력이 남성들의 '꿈'이라면 날씬한 몸매는 여성들의 꿈인 것 같다. 인터넷 검색 창에 '비만치료제'를 입력해보면 금방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너무나 많은 비만치료제들이 검증이 되지 않은 채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의사들도 이 유혹에 한 몫 거들고 있다.

필자가 동네의원에 갔을 때다. 환자 대기실 옆 구석에는 다이어트 약들이 진열돼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건강식품에 불과한 것들이 의원에서 '신뢰도'를 확보함으로써 '믿을 만한 다이어트 약'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의약품들도 남발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이른바 '합동단속'을 할 때면 으레 향정신성의약품인 식욕억제제를 비만치료용으로 오남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 나온다. 물론 의사들이 보기에 반드시 필요한 처방일 수 있다.

향정신성의약품이기 때문에 신경정신과에서만 조제 판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내과·가정의학과·산부인과·피부과는 물론이고 소아과에서도 이런 약들을 사용한다. 이런 약들을 복용함으로써 당장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부작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처방전도 발행하지 않고 이런 약이 소비자에게 들어가기도 한다. 때로는 식욕억제 효과가 없는 약까지 비만치료제로 둔갑한다. 천식치료제가 살 빼는 주사제로 둔갑했다는 보도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많은 의사들이 "나는 그런 치료와 무관하다"고 말할 것이다. 필자 또한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많은 의사들이 비만치료의 수익성을 고려할 때 유혹에 흔들리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은 약 권하는 사회가 돼 버렸다. 그것을 바로잡으려면 소비자들이 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의사들부터 노력해야 한다. 정력과 다이어트가 아니라 건강을 환자들에게 권해야 한다. 그것이 실추된 의료계의 명예를 회복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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