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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의 생활 40년 이제야 마칩니다"

"개원의 생활 40년 이제야 마칩니다"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7.05.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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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용 강내과의원장

대한민국 서울 중구 광희동. 을지로 6가 동대문운동장이 터를 잡고 있는 곳이다. 동대문운동장 옆 골목에 1966년 개원한 이후 40년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강내과의원이 지난달 문을 닫았다. 수 십 층짜리 대형 매장이 우후죽순 늘어서 있는 광희동에 뿌리를 내린 채 천직을 지켜온 유당(柚堂) 강형용(87) 원장(서울 중구·강내과의원)은 "아직 몸도 성하고, 환자들과 소소한 정을 나누고 싶은데 (제발  편히 쉬시라는)아이들 성화에 못이겨 병원 문을 닫게 됐다"며 여전히 아쉬운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를 진료하고있는 강형용 원장.

"돌이켜 보면 저의 청진기는 환자의 심장과 닿는 마음의 통로였나 봅니다. 서로 잔잔한 정을 주고 받으며 신뢰를 쌓은 세월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없다고 할 순 없지요."

인터뷰 중간중간 낡은 진찰실 문은 자주 여닫혔다. 환자와 의사로 만나 아버지가 되고, 혹은 큰 오라버니가 된 이들이 "원장님 얼굴 한 번 보려고 왔다"며 무시로 얼굴을 내밀었다.

오랜 단골환자에 밀려 잠시 구석으로 나 앉고 보니 그제야 병원 이곳저곳이 눈에 들어왔다.

진료실 책상이며, 진찰대와 앉은뱅이 의자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금박 글씨로 '축 개업'이라고 쓴 대기실 거울도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등포병원장을 그만두고 개원했을 때 들여온 것들이니 병원 나이와 똑 같습니다. 이 것도 40년, 저 것도 40년…."

서울 한 복판에 변하지 않는 것들 중 하나를 꼽으라면 강내과의원도 빠지지 않을 듯 싶다. 간호는 물론 원무와 총무 업무까지 도 맡고 있는 김정희 씨도 20대 고운 나이에 들어와 30년 넘게 강 원장과 손발을 맞춰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는 일 없이 병원 문을 열었다는 강 원장은 개원 당시 20평 남짓한 대지에 4층 건물을 단 한 평도 늘리지 않은 채 유지해 왔다.

"개원을 했을 땐 1층을 진료실로, 2층을 입원실로 쓰고, 아홉식구가 3, 4층에서 생활했습니다. 이북서 빈손으로 월남해 이곳에서 7남매를 길렀고, 환자들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좋은 친구와 후배들 만나 정을 쌓을 수 있었으니 큰 축복을 받았지요."

슬하의 1남 6녀 중 장남(강대희 서울의대 교수·예방의학)과 사위 2명(첫째 사위 이숭공·미국 성야곱병원 방사선과장, 둘째 사위 이명철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핵의학과)이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개신교의 거목 강원용 경동교회 목사는 생전에 고희를 맞은 친동생 강형용 원장에 대해 "형이 목사라는 이유 때문에 항상 정면에 서지 않고, 숨어 일하다가 그 일도 이제는 정년이 되었으니 모든 면에서 나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형님의 영향을 받으며 서울의대 재학시절부터 매주 토요일이면 기독학생들과 함께 의료봉사에 나섰다는 강 원장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경동교회에서 의료봉사팀을 만들어 봉사하는 삶을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이러한 봉사정신은 강내과에서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돈이 없는 환자들은 나중에 생기면 갚으라고 했지요. 형편대로 놓고 가는 환자들도 많았고, 한 밤중에라도 환자가 있는 곳이면 왕진가방을 챙겨들어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환자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돈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예술가와 음악가들 사이에 강내과의원의 씀씀이(?)가 입에서 입으로 알음알음 전해졌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생명을 보듬고, 사랑을 나누는 의사를 만나고 싶어하는 정·관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강내과의원의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개원 당시 병원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미뤄 짐작할만 했다. 강 원장은 환자 주머니 사정까지 기분 상하지 않게 헤아리다 보니 40년 동안 남은 것은 '정'과 '잘 자라준 아이들'이라고 내심 뿌듯해 하는 듯 했다.

"나이를 잊고 환자와 서로 잔잔한 정을 주고 받으며, 신뢰를 돈독히 쌓아 가느라 시간이 이렇게 훌쩍 지났는지도 몰랐습니다."

환자 한 명이 문을 밀었다. 만성병을 앓고 있다는 이 환자는 "강 원장님 그만두시기 전에 진료 한 번 더 받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낡은 청진기를 귀에건 강 원장은 이내 "술 조심하고, 담배 피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다. 꾸벅 인사하며 진료실 문을 나서는 환자의 눈가에 잠시 아쉬운 눈길이 흔들거렸다. 진료실 문틈 사이로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기다리는 아줌마 팬들의 모습이 잡혔다.

강 원장은 "문을 닫는다고 하니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문득 진찰대 밑에 담배와 라이터가 가득한 플라스틱 용기가 눈에 들어왔다.

"흡연은 자식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담배와 라이터 내 놓으라고 해서 모아 둔 것"이라고 했다. 애연가로 유명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최창봉 전 MBC 사장·홍성유 전 중앙일보 편집인 등이 꼼짝없이 금연을 하게 된 것도 강 원장과 금연 담판에서 손들었기 때문이라고.

강 원장은 개원의로서는 드물게 대한소화기병학회장을 지냈다. 대한기생충학회 초대 총무부장과 대한내과학회 서울지부장 등 학계 일도 맡았고, 의협 편집위원과 보험위원 등 한 동안 의협 회무도 지원한 이력이 있다.

2000년 의약분업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계속되는 와중엔 펜을 들어 '환자 선택분업'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모 정당에 '의료대란에 대한 응급 처방'을 제공할 정도로 의사 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진료만 하지 말고, 폭넓게 독서도 하고 세상 일에도 관심을 갖고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요즘 젊은 의사들은 '풍류'와 '비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개원가가 어려워졌기 때문이지만…."

강 원장은 젊은 후학들에게 "넓은 식견을 갖춘 '가슴 따뜻한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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