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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메스는 멈추지 않는다

나의 메스는 멈추지 않는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7.02.1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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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굉보 회원(영남의대 외과 교수)

<권굉보 회원>

이름

권굉보(66)

소속

영남의대 외과 교수

경력

1965

경북의대 졸업

 

1970

계명대 동산의료원 외과 전공의 수료

 

1979~1983

미 뉴욕 마운트사이나이의대 부속병원 외과 조교수, 중환자실장

 

1983~

영남의대 외과 교수

 

1993~2005

영남대병원장, 의과대학장, 의료원장 겸 의무부총장, 대학원장

 

1998~2000

대한내시경복강경학회장

 

2001~2002

대한혈관외과학회장

 

2005~2006

대한외과학회장

 

"영남권 외과학의 큰 축을 이룬 Great Surgeon"
박경철 회원(경북 안동 신세계연합의원장)
외과의사로서 요즘처럼 좌절감을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 외과를 지원하는 전공의가 정원의 60%도 채 안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마음 한켠이 씁쓸합니다.
일의 강도와 노력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가와 의료사고의 위험성, 부정적인 사회 인식 등으로 외과의사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한국인 의사에게 수술받을 수 없는 날이 올 지도 모릅니다.
권굉보 교수님은 평생을 외과학에 바쳐오셨습니다. 미국에서 수련 받으시고 영남대병원 개원과 함께 한국에 오셔서 발군의 실력과 지식을 바탕으로 외과학의 성장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더구나 대학교수란 직위에서 느껴지는 권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제자에게 보내는 저서에 '혜존'이라는 말을 쓰실 정도로 매우 겸손하신 분입니다.
영남대 대학원장 재직 시절 IOC위원장인 J. Rogge(사진 가운데)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는 권굉보 교수(사진 왼쪽)

그런데도 현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기자가 대학병원 모 외과교수를 만나 “요즘 TV에 외과의사가 참 많이 나온다”고 말하자, 대뜸 “그걸 보고서라도 외과의사 지원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네” 한다.  

#1. 대한민국의 외.과.의.사.

외과의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힘들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흉부외과나 심장외과는 둘째치고, 일반외과도 이제 마음 놓을 시기가 지났다. 이대로라면 정말 수술할 수 있는 의사를 손에 꼽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외과의사의 역할은 대개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수술을 통해 삶과 건강을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외과의사가 열심히 배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적절한 의료수가가 받쳐주지 않아 외과 지원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기형적인 의료시스템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과의사로서 한 평생을 살아온 권굉보 교수는 오늘날 외과의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잠 못자고 밥 못먹어 가며 힘들게 배운 제자들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스승의 안타까움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가 영남대학병원장을 맡으면서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이 ‘개방병원 시스템’이다.

“지금은 많은 병원에서 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죠. 지역에 나가 있는 외과 개원의들이 대학병원의 최신 시설을 활용해 자신의 환자를 수술할 수 있도록 병원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환자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의사도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십분 활용할 수 있습니다.”

#2. 외과의사 권굉보

 ‘Great Surgeon’ 시대에 외과의사가 된 권 교수. 바늘구멍 통과하는 수준이었다던 전문의 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권 교수는 그 자부심을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권굉보 교수가 대한외과학회장으로서 학술대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외과의사는 환자가 입원해서부터 퇴원하기까지, 끝까지 책임지고 돌볼 수 있어 좋습니다.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회생시키는 다이나믹함도 큰 매력이고요. 흔히들 외과의사는 남보다 손이 섬세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봐요. 그때그때의 판단력이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내시경 수술의 권위자로서 복강경 부신적출술*비장절제술 등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시행한 수술이 여러 건이고, 그의 열정적인 강의와 거침없는 수술에 반해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배들도 숱하다. 그 자신이 지식과 술기를 갖춘 문무겸장이 되어 후배들의 본보기가 됐던 셈이다. 자만할 법도 한데, 생명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겸손하다.

“전공의 시절 선교사로부터 수술 전 기도하는 것을 배웠는데, 이제는 습관처럼 몸에 베었습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최선의 컨디션으로 만드는 겁니다. 지금도 후배들에게 종교에 관계없이 기도를 많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3. 하얀거탑을 뒤로하고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최신 술기나 지식이 결코 미국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만큼 한국 교수들과 당시 한국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의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던 겁니다. 저도 한국 학생들에게 최신 지식을 공급하면서 의학 발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권 교수가 영남대병원 개원과 함께 잘 나가던 미국 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한국으로 온 지 20년, 환자를 위한 최고의 병원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으로 전공의들이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동안 전공의 시험 수석자도 4명이나 배출했다. 그런 그가 오는 2월말로 정든 상아탑을 떠난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제가 병원 그만둔다는 게 아쉽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병원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요. 벌써 마지막 강의도 했고.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거나 큰 업적을 남긴 건 없지만, 나보다 나은 후배를 양성하기 위해 혼과 열을 다했다는 점은 자랑스럽습니다.”

그를 만난 기념으로 "논문집이나 하나 주십시오"했더니, 의외로 줄 게 없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240여편의 논문과 6권의 단행본을 냈지만 자신의 업적을 남기는데 급급하기는커녕, 불필요한 일을 벌이는 게 싫어 흔하디 흔한 논문집도 못 만들게 했단다. 대신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외과 의국 가족 앨범'을 꺼내어 보였다. 후배들이 의국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아꼈던 권 교수의 뜻을 받들어, 두고두고 서로의 근황을 알 수 있도록 사진 앨범을 만든 것이다.

이제 막 ‘외과의사 전성시대’의 1막을 접은 권 교수에게 앞으로 펼쳐질 2막의 줄거리를 슬쩍 물어봤다.  

“당분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동안 미뤄둔 책도 읽고 공부도 하고요. 사람들이 3개월도 못 버틸거라고 하긴 하데요? 허허. 모르긴 몰라도 천직을 어디 버릴 수 있겠습니까. 체력이 닿는다면 칼을 다시 들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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