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곤 회원>
이름 |
김신곤(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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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고려의대 내분비내과 조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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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1993 |
고려의대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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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고려의대부속병원 내과 전문의 과정 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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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5 |
고대안암병원 임상강사, 임상조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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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고려의대 내과학 박사학위 취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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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고려의대 내분비내과 조교수 |
"실력 만점, 인기 만점, 보기 드문 모범 의사" 이범석 회원(국립재활원 척수손상재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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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곤 교수는,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벽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있는 중이다. 강북복지관과 함께 독거노인들을 돌보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가 입원했을 때는 원무과로 사회복지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문제를 해결하는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일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환자의 경제적인 상황이에요. 아무리 좋은 약을 처방하고 좋은 처치를 해도 환자들이 따라오지 못할 때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검사를 최소화하고 아예 제가 검사비를 빌려주거나 대신 내기도 하고. 이건 편법인데, 특진비라도 아껴 드리려고 일반 외래로 예약을 잡아 꼭꼭 챙겨 봐드리기도 합니다."
하루 100명에 육박하는 환자들을 볼 때도 '벽에 균열내기'는 여전하다.
"지금처럼 왜곡된 의료시스템에서 3분진료는 어쩔 수 없는 벽이죠. 그렇다고 질병과 검사수치만을 본다면 의사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어요. 나름대로 생각해 낸 방법이 미리 환자기록을 봐두는 겁니다. 화요일 외래면 금요일부터 차트와 검사기록을 훑어봐요. 주로 당뇨환자가 많으니까 혈당을 잘 관리하는 사람은 격려해주는 선에서 시간을 단축하고, 관리가 잘 안되는 사람은 따로 메모를 해두었다가 진료 시간을 길게 잡고 이야기를 듣죠."
<지난 달에 남편이 실직을 당했어요...시어머님이 몸져 누우셔서 간병하게 됐어요...> 그럴만한 속사정이 있는 그들에게 앞뒤 안묻고 '앞으로 식사조절을 좀더 열심히 하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다.<그런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니 안타깝다, 그럴수록 힘을 내서 약이라도 잘 드셔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자녀에 대한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시라...> 이런게 김 교수의 모습이다.
"한번은 사업에 실패한 뒤 자포자기해서 혈당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환자가 있었어요. 아무리 식사 조절에 대해 설명해도 잘 안되기에, 가족들의 도움을 좀 구하라고 조언했죠. 그런데 알고보니 그 환자는 가족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아무도 문병을 오지 않았던 거에요. 그래서 혈당을 올리지 않는 오이를 사다가 드렸어요. 제 돈을 내고 사온 거니까 공복감을 느낄 때 다른 것 대신 꼭 드시라고요. 이후엔 환자가 굉장히 의욕적으로 혈당을 조절했죠. 삶에 대한 자세도 달라졌고요."
당뇨처럼 평생 꾸준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질환을 주로 보는 터라, 그는 환자의 습관을 바꾸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집요하게 설득하는 걸로도 유명하다.
"필요하다면 회진을 돌다가도 30분씩 설명합니다. 그러다가 안되면 다시하고 또 다시하고. 내 어머니 같으면 이렇게 하겠다고 하기도 하고. 식습관을 바꾸거나 술 담배 끊기를 어려워하는 분에게는 '나는 당뇨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웰빙식이라 당뇨식을 한다'고 하거나 아버지라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는 식이지요. 중요한 건 진심이에요. 단순히 내가 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로서 안타까워한다는 그 마음이요."
그의 이런 노력들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그는 2005년 말 병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투표한 결과 설명 잘하는 의사로 꼽혔다. 그런가하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습 평가에서는 여러 진료과 중 종합평가 1위, 실습 책임교수 평가 1위를 차지했다.
"쑥스럽습니다만, 학생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의학을 공부할 때는 환자와의 거리를 두되, 의학을 의술로 적용할 때는 다시 환자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그래서 학습목표를 의학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떤 의사가 될 지 스스로 정리해보는 것으로 잡았어요. 예전에는 영화 '패치아담스'를 봤는데 요즘에는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따로 가져요."
휴~유. 저렇게 하려면 얼마나 피곤하고 지칠까 싶은 순간, 그는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학 시절 의료시스템을 바꾸는 데 투신할까도 했어요. 그런데 임상의사가 된 건 환자를 진료할 때 느끼는 보람과 가치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목사님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소외된 이웃,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왔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뿐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질병 뿐 아니라 총체적인 건강을 향한 여정에서 평생의 벗이 될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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