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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산다는 것은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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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1.2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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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회원(국립재활병원 척수손상재활과장)

<이범석 회원>

이름

이범석(43)

소속

국립재활병원 척수손상재활과장

경력

1988

연세의대 졸업

 

1992

연세의료원 재활의학과 전문의 과정 수료

 

1992~1995

국군수도병원 재활의학과장(군의관)

 

1995~

국립재활병원 척수손상재활과장

 

1997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사 학위 취득

 

2001~2002

미국 토마스제퍼슨의대 척수센터 연수

 

"참 의사를 고민하고 몸소 실천하는 의사"
김민철 회원(전주예수병원장)
이범석 선생을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면서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것은 아니지만, 곁에서 볼 때 '이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실 완벽한 인간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선생은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삶과 목표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다하기 때문에 가치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활의학이라는 범상치 않은 전공을 택했던 것만 봐도 이 선생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겠죠?
알고보니 제가 한국을 잠시 떠나있는 동안 많은 좋은 일들을 했더군요. 하지가 마비된 환자나 팔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환자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어, 부부성치료·사회적응훈련 등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그동안 국내에서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 일들을 의욕적으로 시작하기도 했고요.
참 의사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선생은 비록 젊지만 후배 의사는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의사에게 귀감이 되지 않을까요.
척수손상과 관련한 방광검진 결과를 환자·보호자와 함께 이야기하는 개별상담시간. 이범석 과장은 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어서오십시오, 저희가 함께 하겠습니다'

어럽쇼? 병원 입구에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는 순간, 대놓고 사람들에게 어서어서 병원에 오라고 하는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주고객이 환자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문까지 열어주면서 인사하는 직원들조차 보통 '안녕하십니까'나 하지, 어서오라고는 잘 하지 않는 데 말이다. 고개를 갸우뚱한지 얼마 지나서야 재활병원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다리를 절어가며 바지런히 복도를 가로지르는 환자, 휠체어를 밀어주는 보호자와 함께 산책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재활병원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또다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이범석 과장의 방에 있는 휠체어였다. 휠체어에는 반듯하게 '이범석'이라는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웬 휠체어? 방금 전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범석 과장은 성큼성큼 걸어나와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가.

"아, 이 휠체어요? 제 것 맞습니다. 병동 회진을 돌 때 타는 건데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 척수장애인이다보니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휠체어를 탔을 때 그들이 느끼는 고민과 어려움이 뭘까 생각하게 돼요. 한번은 젊은 환자가 지나가는 말로 '왜 나는 선생님을 꼭 올려다 봐야만 하나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생각해보니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의료진을 포함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위로 올려다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일까 싶어 마음 한켠이 무겁더군요. 휠체어를 타고 환자와 눈높이를 맞추면 서로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아요."

유별나다면 유별나다고 할 수 있는 그가 유별나게 고집을 피우는 게 또 있다. 바로 환자와의 개별상담시간. 환자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이 과장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재활환자들은 여러 병원을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까지 한번도 자신의 엑스레이를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궁금한 점이 있어도 차분히 앉아서 질문을 하고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거죠. 환자와 보호자가 궁금증을 해결할 때까지 충분히 설명을 해주면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결국 치료에도 도움이 됩니다."

멀쩡히 걸어다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고로 휠체어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창문을 깨거나 욕을 하는 등 분노에 찬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단다. 그럴때마다 그들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줌으로써 환자들의 고통과 분노를 보듬는 친구가 되어주어서인지 그에게는 남에게 내색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는 환자가 유난히 많다.

"늦은 저녁 복도에서 환자를 면담하다보면 마지막으로 나오는 주제가 성(性)에 대한 문제입니다. 또 머뭇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내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성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장애인들에게 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정답은 '장애인도 누구나 성을 누릴 수 있고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국내 최초로 '척수장애인 부부를 위한 성재활 교육'을 매달 실시하고 척수장애인 부부를 모델로 한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고 토론하게 하는 등 환자들이 성생활에 확신을 갖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또 최근에는 가장 심각한 손상을 입어 목 이하를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을 중심으로 '경수4번 척수장애인을 위한 모임'을 조직해 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휠체어를 탄 환자들을 이끌고 백화점에 가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회적응훈련' 프로그램도 이 과장의 아이디어다.

"진료하면서 환자가 어떤 점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지에 주안점을 두고 해결책을 계속 고민하면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생소한 분야이고 처음하는 일이다 보니 자료를 찾고 프로그램을 꾸리는 데 애를 먹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병원이나 민간병원에 있었다면 이런 일들을 시도나 해볼 수 있었을까 싶어 이내 즐거운 생각이 듭니다."  

본과 시절 온몸의 80%에 화상을 입고도 운좋게 생명을 건졌지만 온통 붕대를 두르고 꼼짝없이 누워 평생을 보내야하는 어린 소녀를 보면서, 장애인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일깨워주고 싶어 재활의학과 의사의 꿈을 키운 이범석 과장. 그가 대학에 남으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친 채 야간당직을 각오하고 국립재활병원을 선택한 것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재활환자들이 많은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의사란 자신의 일을 신이 나서 즐겁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야 열성적으로 일할 수 있고, 환자들을 친절하게 돌볼 수 있으며, 진료나 연구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요. 신나게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의사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기나 성적, 돈벌이 같은 것들이 사명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사명은 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왔고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행복하게 일하면서 더불어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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