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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6 06:00 (금)
[집중취재] 의약품 지불방식

[집중취재] 의약품 지불방식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1.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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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건복지부가 '의약품물류협동조합의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정(안)'을 공고하면서 국민건강보험법 43조를 둘러싸고 의혹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이러한 의혹과 갈등은 공급자(제약회사, 의약품 도매상)와 수요자(의료기관) 사이에 이뤄지는 거래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의약품 거래는 개인의 사적거래임에도 국가가 개입하여 의약품대금의 지불을 수요자가 아닌 공단이 공급자에게 직접 지불하도록 강제화하고 있다.

헌법 제 119조 제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제상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강제적인 지불 방식은 헌법상에 보장된 경제활동의 자유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정신을 위반하고 있다.

이는 상거래상에 보장된 계약자유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계약에 의한 법률관계의 형성은 법의 제한에 저촉되지 않는한 완전히 각자의 자유에 맡겨지며, 법도 그러한 자유의 결과를 될 수 있는 대로 존중한다는 것이 계약자유의 원칙이다. 계약자유란 상대방 선택의 자유, 계약체결의 자유, 계약내용 결정의 자유, 계약방식의 자유 등을 포함하는 개인주의적,자유주의적 원칙이다.

소위 제 3자 지불방식으로 지칭되고 있는 새로운 거래방식은 의약산업 이외에 다른 산업 분야에서는 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극히 특수한 경우란 파산,부도 등의 이유로 원 사업자가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명백한 사유가 있는 경우 등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수급사업자가 제조,수리 또는 시공한 분에 상당하는 하도급대금을 발주자가 해당 수급사업자에게 직접 지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컫는다(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 14조). 제 3자 지불방식은 하도급 대금을 떼어먹고 달아나는 악덕 건설업자의 폐해를 막기 위해 그것도 대통령이 정하는 사유가 발생할 정도의 명백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나 고려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정부는 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을 부정하고, 의료계의 반대를 무릅쓴 채 악덕 건설업자에게나 적용되는 지불방식을 차용해 오면서까지 지불방식을 바꾸려 하는 것일까?

1998년 4월 10일 김대중 대통령은 의약품 납품비리를 근절할 것을 지시한바 있다. 5개월 만인 9월 19일 유통개혁방안이 보고됐으며, 한달 후인 10월 7일 유통개혁방안을 확정하고 의약품유통개혁기획단이 구성됐다.

12월에는 의약품 유통개혁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1999년 1월 6일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약제비를 의약품물류협동조합 등에 직접 지급하도록 강제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의해 복지부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획단이 구성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연구기관에 의해 보고서가 제출되면서 불과 9개월만에 의약품 유통개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밑그림이 뼈대를 세우기 위해서는 제약회사와 도매회사의 참여가 필수조건. 의료정책을 연구해 온 학자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상거래 원칙인 의약품 대금지급 방법까지 뜯어고쳐 제 3자 지불방식을 강제화한 것은 의약품 물류조합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온 약품 공급자들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물류사업 자체만으로는 초기 투자비가 막대한 물류협동조합에 가입 유인이 없다고 하자 의약품 대금을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직접 수령하여 지급함으로써 대금결제 기간을 단축시켜주겠다는 당근 정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들 학자들은 의약품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지난해 11월 15일 실가래가제도를 시행하면서 마련됐다는 입장이다. 의약품 유통비리는 주로 의료기관 및 약국과 의약품 공급업자 사이의 비리를 뜻하는데 이는 물류센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제 개입에 의해 지불방식의 변경되고, 자금의 유통경로가 뒤바뀌면서 의약산업 분야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가장 큰 변화의 핵심은 의약품을 구매하는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의약품 납품과 대금지불이라는 거래관계의 균형이 깨어진다는 사실이다. 거래에 지불 요소가 빠진다는 것은 의약품을 비싸게 사든, 싸게 사든 아무런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인 경쟁이 배제됨을 의미한다.

이해관계의 불성립과 경쟁요인의 배재는 의약품 공급자가 제시하는 가격대로 의약품을 구매하게 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므로 의약품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그에 따른 부담은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직결될 수 있다.

기본적인 의약품 수요가 보장되는 시장에서 의약품 공급자는 기준약가만 잘 받으면 이윤이 최대한 보장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기에다 자금 회전기간의 단축이라는 부가 이윤도 입맛이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전국적인 조직의 거대한 의약품물류센터와 의약품 정보를 독점하게 되는 의약품물류협동조합은 유통과 의약 정보시장에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권한을 갖는 조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제약회사와 도매상의 공동출자 형태이므로 유통비용과 의약품의 가격 담합 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유통산업의 독점화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사업자의 시장 재배적 지위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부당한 공동행위를 방지하여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제정됐다.

지난해 의약분업 투쟁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의료계 지도자들을 고발, 김재정 의협 회장을 비롯 신상진 의쟁투 위원장을 비롯한 의료계 지도자들이 갖은 고초를 치른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유통시장의 독점화를 조장하는 국민건강보험법 43조 6항 및 8항과 의약품물류협동조합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8월 31일 대정부 요구안 제출시 헌법에 보장된 자유시장 경제원칙에 정면 위배되므로 물류조합 설치조항을 전면 삭제하고 자유시장 경제 원칙에 맡길 것을 요구한 바 있으며, 입법에 절대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바 있다. 특히 물류조합에 대한 세부사항은 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로 이관하여 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최근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방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치과병원협회, 대한간호협회 등 각 요양기관 단체장 간담회를 열고 약제비 지불을 의약공급자와 사용자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범 의료계가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약품물류협동조합의 구성 및 운영등에 관한 규정(안) 중 임원인 전무이사에 관한 자격가운데 1호는 '5급 이상 공무원으로 7년 이상 근무한 자'로 되어 있다. 의약품 유통개혁을 위해 설립하겠다는 협동조합이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비판은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의약품대금 지불방식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의료계는 적지 않은 불신을 갖고 있다. 일각에서는 건강보험 진료비 지불방식의 전면적인 구조개편도 요구하고 있다.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진료행위를 제공하는 순간 지불요인이 발생하므로 환자가 진료비 전액을 의료기관에 지불한 후 영수증을 발급 받아 이를 보험자에게 제출하여 본인부담금을 제외한 보험자의 부담금을 받도록 지불방식을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이 보험공단에 서비스 제공내역을 제출하고 비용을 대신 받아내는 간접지불방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의 이면에는 사회주의적인 지불제도를 강요하고 통제 일변도의 정책을 펴고 있는 정부당국의 의료정책에 대한 강한 불신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많은 희생으로 이어졌는지 지난 의약분업 투쟁에서 뼈저리게 깨달은바 있다. 의약품 물류조합을 둘러싸고 의료계 내부에서 또다시 불신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은 인정하고 바로잡는 모습을 의료계는 기대하고 있다.
 
건강보험법 제43조(요양급여의 청구와 지급 등)
⑥공단은 요양기관에게 요양급여비용을 지급함에 있어 요양기관이 약제, 검사 등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요양급여의 구성요소(이하 이 조에서 '구성요소'라 한다)를 제 8항의 규정에 의한 의약품물류협동조합, 의약품제조업자, 의약품도매상 기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자(이하 이 조에서 '공급자'라 한다)로부터 공급받아 요양급여에 사용한 구성요소의 내역을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공단에 청구한 경우에는 제3항 전단의 규정에 불구하고 그 요양기관에 지급할 요양급여비용 중 구성요소에 해당하는 요양급여비용을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급자에게 직접 지급한다.

이 경우 공단의 요양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채무와 요양기관의 공급자에 대한 지급채무는 공단이 공급자에게 지급한 범위 안에서 소멸한 것으로 보며, 요양기관이 공급자에게 이미 지급한 대금이 있는 경우에는 요양기관은 그 대금 중 공단이 공급자에게 직접 지급한 분에 대하여 환급을 청구할 수 있다.(1999. 2. 8. 법률 제 5854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4조(하도급대금의 직접지급)
①발주자는 원사업자의 파산,부도 등의 이유로 원사업자가 하도급대금을 지급할 수 없는 명백한 사유가 있는 경우 등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한 때에는 수급사업자가 제조,수리 또는 시공한 분에 상당하는 하도급대금을 해당 수급사업자에게 직접 지급하여야 한다.

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 발주자의 원사업자에 대한 대금지급채무와 원사업자의 수급사업자에 대한 하도급대금 지급채무는 그 범위안에서 소멸한 것으로 본다.

③발주자는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원사업자가 당해 하도급계약과 관련하여 수급사업자가 임금, 자재대금 등의 지급을 지체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하여 당해 하도급대금의 직접지급중지를 요청한 경우에는 당해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전문개정 1999. 2. 5. 법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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