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4 17:15 (수)
"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날'다"

"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날'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6.06.28 10:21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기영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장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꿈은 조종사가 되는 것이었다. 덩치 큰 어른이 되고나선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멋진 제복을 입고 푸른 하늘에서 비상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조종사가 되기 위해 치른 신체검사에서 그의 두 눈은 절망을 안겨줬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방에 틀어박혀서 시련을 맛봤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다고 그는 다시 공부에 매진해 의사가 됐다.

 그는 국내 항공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선발 심사위원장에 뽑혔고, 최근 열린 국제항공우주의학협회에서는 펠로우로 선정됐다.  잿빛 제복 대신 하얀 가운을 입고, 그야말로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날고' 있는 중이다.

 

정기영 항공우주의료원장, 그는 심장내과 의사다. 동시에 군인이다. 어쩌면 직함 앞에 '공군'이나 '대령'을 붙여주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정 원장은 항공우주의학이란 조금은 낯선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항공우주의학이란 항공우주 종사자들의 안전한 임무수행을 위해 의학적으로 지원하는 특수분야를 말한다. 정 원장 아니, 정기영 공군 대령은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전투기조종사·수송기조종사·헬기조종사 등의 건강검진부터 건강관리와 질병에 대한 치료, 공중근무자 교육 및 훈련, 항공우주환경 연구 등을 담당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조종사들의 주치의인 셈이다. 그런 그가 지난 5월에는 매우 까다로운 선발과정으로 유명한 미국항공우주의학협회 펠로우에 선정됐다. 전세계적으로 1년에 10명 안팎만이 자격을 얻는데 그 중 하나가 정 원장이였다.

"펠로우는 협회의 리더그룹으로서 모든 의사결정 구조에서 핵심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 번  선정되면 평생 그 자격이 주어지죠. 이웃나라 일본에는 6명의 펠로우가 있고, 한국에선 제가 세 번째인데, 민간항공분야를 제외하고 군인으로선 처음이에요. 한국의 항공우주의학 수준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가 있죠."

 

▶ 2008년 최초의 한국인 우주인 탄생

1·2차 세계대전이 이념과 영토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세계는 항공우주 영역이 새로운 격전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따라 정부는 2015년까지 세계 10대 우주강국으로의 진입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하는 것이고 의학분야 책임자로서 바로 정 원장이 그 지휘봉을 잡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을 제가 맡았다는 건 그만큼 의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지요. 올해 말까지 우주인 후보 두 명을 뽑을 예정입니다."

우주인이 되려면 체력검사·심리검사·정밀신체검사·우주환경시뮬레이션 검사 등을 통과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1년여 동안 러시아 현지에서 훈련을 거쳐 최종 선발된 1명이 러시아 소유스호에 탑승해 우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우주 환경은 무중력·중력가속도·산소부족·소음·방사선 등 많은 비정상 상태에 노출되는 공간입니다. 당연히 인간의 정신과 몸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변화를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대책을 연구하는 게 바로 항공우주의학자들의 역할입니다."

반만년 한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주에 가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에 아직 마감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3만명이나 몰렸다. 영어실력은 물론이요, 여느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과시하는 67세 CEO는 더이상 세상에서 해보지 않은 일을 찾지 못했다며 지원했고, 변호사·교수·의사 등 남녀노소와 직업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 항공우주의학 관심과 지원 아쉬워

정 원장은 우주인 선발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항공우주의학은 항공우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수록 더욱 중요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고, 의학자들과 다른 과학자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할 일도 참 많고, 앞길도 훤한데, 정작 하려고 나서는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 원장의 마음이 늘무겁다.

"저 또한 처음부터 항공우주의학자의 길을 가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조종사가 되리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시력 때문에 포기한 것이 의사가 되는 계기가 됐죠. 예전에는 방황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항공우주의학이란 매력적인 분야를 몰랐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만큼 항공우주의학은 보람과 미래가 있는 분야랍니다."

조종사의 영원한 주치의

20여년전 조종사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포자기했던 그에게 희망이자 목표였던 의사가 되는 길, 그 길은 의연히 걸어온 그는 이제 다시 항공우주의학 분야에 대한 후배들과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는 새로운 꿈을 꾼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조종사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그의 아들 몫으로 남겨졌다. 2004년 그의 아들이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개교 이래 첫 3대 동문가족이 탄생해 화제가 됐는데, 바로 정 원장 가족이 주인공이었다. 자식이 '누구의 아들'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그도 실은 누구의 아들이었던 셈이다. 전투기 조종사 예비역 대령의 아들이 아니라, '정기영'이란 이름 석 자로 우뚝 선 그의 모습은 하늘을 나는 조종사 못지않게 빛나 보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