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업투쟁 큰 뒷힘 발휘
분업투쟁 큰 뒷힘 발휘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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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의사폐업'은 6월 20일 전국적으로 결행됐다.

저수가 아래서 약가 마진으로 경영수지를 맞추었던 의사들은 지난해 11월15일 실거래인하조치로 의약분업으로 인한 충격을 현실적으로 느꼈으며 99년 11월 30일 장충체육관대회, 2월 17일 여의도 대회에 이어 6월 4일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투쟁결의대회'를 거치며 한마음으로 급격히 결속돼갔다.

6월 16일 보건복지부는 보험수가 9.2%인상이라는 당근을 제시했지만 의사사회는 이는 문제의 본질을 궤뚫어 보지 못한 처사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전국회원 98.9%가 정부안을 거부하고 무기한 폐업에 동의, 20일부터 전면폐업에 들어갔다. 개원의, 병원의사, 교수, 전공의, 학생이 모두 한마음이 돼 이끈 6월 투쟁은 사태의 근원을 모른채 안일하게 대처하던 정부 당국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만나 7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개정을 약속하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26일 의협과 의쟁투는 폐업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7월 국회에서 약사법 재개정이 되면서 사실상 개악이 되자 8월1일 의협과 의쟁투는 재폐업에 돌입하게 되고 의쟁투는 8월22일까지 전면파업, 25일까지 단축진료를 결의하고, 9월 15∼17일 의협과 의쟁투는 3일간 전국의사 휴진투쟁을 벌여 개악된 약사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의료계가 기대를 걸었던 의정간의 대화도 별다른 진전없이 정부가 시간끌기에 급급하자 다시금 의료계는 10월 6일 무기한 전면파업이란 극약처방에 들어갔다.

10월 투쟁은 초기 파업율 95%라는 높은 참여율을 보였으나 오랜 투쟁과정에서 지칠대로 지치고 경영의 어려움 때문에 조금씩 이탈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7월 2일 부터 시작된 전공의들의 파업은 수련병원의 진료기능을 대부분 마비시키면서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또 투쟁 목표도 외부개혁과 내부개혁으로 이원화해 의료사태를 의권찾기에서 의사사회의 제자리찾기로 그 영역을 넓혀갔다. 이들의 투쟁은 전체 투쟁에 큰 힘을 보태주었으나 후반부에 가서는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개원가와 노선상의 차이를 노정시키기도 했다.

아무튼 4차례의 파·폐업은 약사법개정으로 축약된 의약분업 투쟁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투쟁의 주역인 의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큰 고통과 비용을 치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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