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15:21 (금)
"문화 봉사에도 힘쓰는 의료인들 많아지길…"
"문화 봉사에도 힘쓰는 의료인들 많아지길…"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6.01 10:3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후 (사)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의 이사장으로서, 신경정신과의 전문의로서, 대학교의 교수로서…, 어느 자리에서나 묵묵히 봉사로 일관된 삶을 살아온 이근후 박사. 네팔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실천하고 광민보육원에 대한 믿음을 고집부리며 지켜온 이 박사는 다른 이를 돕는 일에서 스스로의 즐거움을 찾는, 크고 넉넉한 산을 닮은 사람이었다. 이제는 단순히 의료봉사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 봉사'에도 힘쓰고 있는 이근후 박사를 만나본다.

 

▶  히말라야처럼 맑은 영혼이 있는 공간, 네팔

이근후 박사는 1982년 마칼루 학술원정대의 학술요원으로 따라간 곳, 네팔에서 시작된 봉사는 개인적인 수준에 그쳤었노라고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1986년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일 때 한국간질협회 박종철 회장과 함께 네팔의 간질환자들에게 3개월 동안 1,000명 분량의 약품을 원조하면서 그의 도움은 좀 더 구체화됐다.

본격적으로 의료봉사를 시작한 건 그로부터 3년 후. 1989년 네팔이화의료봉사단이라는 학교단위의 단체를 만들어 2001년 퇴임까지 13년 동안 매년 겨울방학을 이용해 네팔 오지의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산악인 모두가 동경하는 하얀 산, 히말라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982년 마칼루 원정 참가제의에서 팀 닥터를 맡으라는 제의가 왔는데,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히말라야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팀 닥터로 메여 있기는 싫었고 학술조사도 필수적인 일이었기에 학술대원을 하겠다고 말했죠. 그 때 네팔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어요."

숙소가 없어 텐트생활을 해야 했고 걷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문화적인 차이나 낯설음은 호기심을 갖게 했다. 히말라야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네팔 사람들이 단지 약이 부족해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귀국 후 한국간질협회의 도움으로 약품을 원조하고 이대부속병원 의사들과 이화여자대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을 결성하게 된 건 그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학은 해외봉사를 하는 데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게 해주었죠. 퇴임 후에는 규모와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더군요. 지금은 의료봉사의 범위가 축소되기는 했지만 더욱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 만족스러워요. 게다가 한국과 네팔 간 문화 교류의 한 축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 뿌듯합니다."

이근후 박사는 정년퇴임 후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만들어 연구, 조사, 교육과 더불어 사회봉사팀 '네팔캠프'를 이끌고 봉사를 지속하고 있다. '네팔캠프'에서는 이근후 박사가 네팔 간질협회와 연계해 간질환자에 대한 진료와 교육을, 이후승 박사가 치과진료를 맡아 한다. 모든 일정이 의료봉사만으로 짜여진 것은 아니고 참가자들이 네팔의 문화와 역사를 알고 현지인과 교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문화 봉사'인 셈이다. 이들의 활동이 알려지자 함께 참가하겠다는 지인들이 늘었고, 지금까지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와 소설가 박완서 씨, 시인 박노해 씨 등 400여 명이 캠프에 참가했다. 근 삼십 차례 네팔을 방문하고 도움을 준 이 박사에게 훈장을 주겠다는 네팔인들을 극구 만류하고 훈장을 받게 되면 네팔에 다시는 못 올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네팔에 닿아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는 이 박사는, 봉사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며 손을 내저었다.

 

▶ 30여 년을 이어간 광민보육원과의 인연

이근후 박사의 봉사는 비단 네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보육원 돕기에 힘써왔던 이 박사가 장흥 광민보육원과의 인연을 술회했다.

"중 3 때였을 거야. 대구가 고향인데 6·25 사변이 나고 피난 중에 마찬가지로 피난 온 광명보육원을 보게 되었는데 그 보육원생들의 참담한 모습이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그때 어머님도 적십자 활동을 하셨는데, 난생 처음으로 막연히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1968년부터 군의관 시절을 광민보육원 옆에서 보내면서 틈틈이 아이들을 만났다. 제대 후 교수가 되면서 광명보육원 이사직을 맡았고 이화대학교 강당을 기증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1995년 <가족아카데미아> 내에 '무하문화사랑방'을 만들어 월 1회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보육원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것 역시도 이근후 박사의 의지가 컸다. '무하문화사랑방'은 자연과 예술, 그리고 문화와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보육원생들의 정서를 함양시키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육성하기 위한 문화프로그램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박사는 "버림 받고 상처받은 어린 영혼들에게 문화를 알려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곧 있을 무하문화사랑방 시공모전 행사인 '제7회 미래시인들의 잔치' 준비에 한창이었다.

 

▶ 네팔 문화교류의 물꼬를 트다

<가족아카데미아>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를 모토로 해 1995년 만들어진 가족연구를 위한 연구모임으로 해당 연구 분야의 현역교수들을 중심으로 출발했다. 공신력 있는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단법인을 신청했고, 객관적으로 이끌어가고자 노력해왔다. 가족과 연관된 일관성 있는 연구를 하는 연구조사팀, 가족 상담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사이버교육팀, 교수와 전문인으로 구성되어 강사를 파견하는 사회교육팀, 광명보육원을 위한 '무하문화사랑방'과 '네팔캠프'로 구성된 사회봉사팀, 가족아카데미아를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영상물, 기록물을 정리하는 멀티미디어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잖아요. 하지만 한정된 시간이라도 쪼개어 도움의 손길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평소에 텃밭을 가꾸어야 한다는 거죠. 어려울 때 다른 이들을 돕다 보면 시간에 자유로워지면 더욱 깊이 있는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네팔의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며 문화 봉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박사는 현재 한국과 네팔의 화가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오는 6월 14일부터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설치미술가 이경형 대덕대학교 교수를 통해 네팔의 그림들이 선을 보인다. 네팔에서 한국의 설치미술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오는 10월 11일부터 24일까지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네팔 화가를 초청해 스페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이 박사가 선물받거나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는 네팔 화가의 그림은 총 1,000여 점 정도로 삼청동 <가족아카데미아> 지하에서 매월 바꾸어가면서 전시되고 있다.

"의료 봉사를 하려면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근후 박사. 앞으로 한국사회 안에 네팔인의 자긍심을 높여줄 수 있도록 소개에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고 싶어 하는 일, 멈추지 않겠다

이근후 박사는 퇴임 후 결혼한 2남 2녀의 가족과 구기동에서 함께 살고 있다. 구기동에 모여 살기로 한 건 할아버지 세대의 모습이 손자손녀들에게 어떤 귀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육십여 년 전 어머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3년 전에 혈관 협착으로 큰 심장 수술을 했지만 현재는 매우 건강한 상태. 가족의 도움이 컸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집에서는 새로 태어난 셈 치라고, 그러니 이제 세살이 된 거라면서 장난을 쳐요. 하하. 무리하지 말라고 걱정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게 재미있어서 하는 거니까. 왜 십시일반이라고 하잖아요. 십년이 넘게 친구들과 모여 조금씩 힘을 모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멈출 수가 없는 거지."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자 그저 헤엄을 못 치기 때문에 산이 좋은 거 아니겠냐고 농을 건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인 이근후 박사. 산에 미쳐서 산에서 텐트를 치고 공부를 했을 정도로 골수 산악인이었다는 그의 말에, 문득 산의 넉넉함과 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참 닮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봉사를 지속해나가는 그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정신과를 전공한 이 박사는 퇴임 후에도 화, 수, 목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시간을 내어 상담을 하고 있는데(이근후열린마음의원), 주로 지인들의 소개로 환자를 받는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상담을 통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기분은 봉사 후에 얻는 만족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봉사의 시작은 자기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넘쳐서 다른 사람까지 이롭게 만드는 것이지. 자기를 희생한다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 비로소 전달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도움이자 봉사입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