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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저 때문에 마음 많이 상하셨지요?

그동안 저 때문에 마음 많이 상하셨지요?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01.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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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옥 충남의대 재활의학 교수
 
마음속에 무언가 불편한 생각이 남아있으면, 특히 사람에게 서운한 일이 있거나 미움을 품고 살면, 본인의 삶이 황폐해진다. 우선 상대를 용서하고, 또 필요하면 용서 받고, 그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상대를 정말 사랑하여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면 삶이 윤택해지고 기쁨이 솟아나게 된다고 한다.


지난 해 동안 병원내외에서 장애아동 부모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일정을 바꾸어서라도 찾아가 그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15년 이상을 가까이 지내온 분들부터 처음 만나는 분들까지, 알고 지낸 기간은 다양하지만 그 가정의 아이에게 쉽게 해결되지 않는 만성적인 문제 또는 장애가 있어 만나게 된 사이인 것은 같다. 반가워 하는 분도 있고, 눈 맞추기를 피하는 분도 있다.

마이크를 건네받아 인사라도 하게 되면 "그 동안 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지요?"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그동안 마음을 상하게 해 드린 것을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면, 조금씩 술렁이다가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난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이야기가 끝나면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는다. 그쯤 되면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었는지는 문제되지 않는 듯하다.

어떤 이는 진료 과정에서 있었던 일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서운함에서부터 상대가 재활의학과 전문의라는 사실까지도 화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들 마음상한 것까지 이해해줘 고맙다고 하면서, 이후 진료실에서 만날 때는 밝아진 표정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용서와 이해가 만든 변화리라.


재활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장애인은 물론 장애아동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며, 진단하고 치료하고 사회활동과 통합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참견하며 지내온 지 20여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아픔을 남기고 있었다니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들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아픔은 이런 것들이다. 진료실에서 "아기가 단순히 발달에 늦는 것이 아니고 뇌에 문제가 있어서 생기는 여러 증상을 보이는 뇌성마비입니다"라고 진단명을 처음 들었던 때와, "수술로 치료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으니 외과 선생님께 가보시면 좋겠다"고 수술을 권유하거나 다른 치료 방법을 권할 때라고 한다.

즉 자기들의 바램과는 다른 이야기를 듣거나, 또다른 의사한테 가야한다는 말을 들으면 많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일상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당신의 아이는 평생 동안 이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전해야 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어떻게 하면 그 역할을 보다 잘 해낼 수 있는 것일까?


어디 장애아동의 부모뿐이겠는가.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며 잘 한다고, 열심히 일한다고 살아오면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속상하게 만들고 만 상대방들이…….


새로운 한해를 맞으면서 상대방의 마음도 더 많이 살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가깝고 먼 이웃들께 여쭈어 본다. 그리고 용서를 구한다. "그 동안 저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지요? 앞으로 더 잘 할테니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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