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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의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여의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공동취재팀 kmatimes@kma.org
  • 승인 2006.01.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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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의사회 창립 50주년 기획 특집
사회적 약자 지킴이로 지평 확대 기대

한국여자의사회가 14일로 50주년을 맞았다. '벌써!'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듯. 하지만 세계 최초의 여자의사가 탄생하고, 반세기만인 1900년 한국사회에도 여자가 의사라는 전문직에 진출한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여의사라는 전문직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2006년 현재  여의사는 20%에 달한다. 의대생 비율 50% 육박.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몇년후엔 '여의사회'가 아닌 '남자의사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여의사회 50주년을 맞아 그대들의 딸과 아내와 혹은 선배, 후배, 그리고 동료들일 수 있는 한국 여자 의사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그래서시간내 꼭 읽어보시길 간곡히 권한다.

여성의 의료전문직 진입 50년만에 한국 여의사 탄생
 

남자, 여의사를 말하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란 말이 있듯, 여의사와 여의사회의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아야 한다. 본지는 한국여자의사회의 창립 50주년을 맞아 다음 50년을 기약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한국여의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기로 한다.

근대적인 개념에 해당하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는 김점동(박에스더) 여사이다. 1900년 한국 최초 여의사의 등장은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했던 조선시대를 막 벗어난 국내 정황으로 볼 때, 1895년에 의사가 된 서재필 박사와 1849년 세계 최초의 여의사인 엘리자베스 블랙웰과 비교해도 매우 선구적인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 여사가 활동하던 때는 여성병원으로 보구여관과 제중원 부인과, 광혜여원 등이 있었고, 이후 1916년 일본 유학에 의존하던 여의사 양성이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생겨나면서 소수의 여학생을 배출했으며, 1928년에는 경성여자의학강습소가, 1937년에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문을 열었다.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는 해방 후 한 차례 이름을 변경한 다음 1971년 고려의대가 되었고, 1945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 의학부와 약학부가 생기면서 초기 여의사 양성의 주역이 됐다.

그렇다면 한국여자의사회는 어떻게 생겨나게 됐을까?
손치정 한국여자의사회 초대회장은 여의사회가 설립되기 전 상황에 대해 "국제여자의사회가 한국에 여의사회가 있는 줄 알고 매년 학술지와 서신을 보내왔는데, 우체국에서 이들 우편물을 처리할 방법을 몰라 수소문한 것이 당시 나의 병원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여자의사회의 전신인 대한여자의사회는 6·25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하고 있던 여의사들의 친목 모임을 모태로 한다. 1956년 창립총회에선 당시 전국 여의사 650명 중 75명이 회원으로 참가했으며, 그 해 국제여자의사회 제1차 동남아지역회의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국제 교류를 벌여 2년 뒤인 1958년 국제여자의사회 회원국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지난 50년 동안 여의사회는 AIDS 퇴치운동·가족계획운동을 주도하며 사회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는 한편, 각종 학술상과 장학금을 제정해 후배 양성에 힘쓰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불우이웃을 보듬어 왔다. 여의대상 길 봉사상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봉사활동가를 발굴해 시상한 것은 여의사회의 큰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여의사 1만2780명, 전체의 18.7%

■ 전문과목별 성별 전문의 현황

 지난 1970년대 초 전체의 13% 수준이었던 여의사가 2004년 현재에는 18.7%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의대생의 경우 여학생이 3001명으로 전체의 32.4%에 달해, 앞으로 여의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의사회 창립 당시 650명에 불과하던 여의사 수가 현재 1만2780명으로 늘어나,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여의사의 양적 증가는 사회적 인식 변화와 맞물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늘어나는 사회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 3대 고시로 불리는 행시·외시·사시 수석 합격자가 모두 여성인데다 여성 합격자의 비율도 40%대에 접어들었다.

일부에선 여의사·여변호사 등 전문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한국 사회가 점점 양성평등화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남성들 사이에서도 세심함·논리력·배려심 등 여성성을 요구하는 직업에 여성이 적합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추세다. 산부인과 여의사가 여자환자를 보기 때문에 선택 우위로 일정부분 상대적인 이익을 얻어 왔듯이, 최근에는 피부과·내과·소아과 등을 중심으로 여의사 특유의 따뜻한 이미지와 친화력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

임필빈 강남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병원의사(비뇨기과)는 "예전에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여의사를 꺼리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여의사를 더 좋아하고 오히려 찾아오기까지 한다"며 "아무래도 친절하고 자상해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학술 부문에서 여의사의 활약상도 간과할 수 없다. <2004년 전국회원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전체 회원 중 박사학위 취득자는 전체의 19.8%로 지난해 20.7%에 비해 줄어드는 등 점차 그 비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여성박사학위자의 비율은 오히려 12.3%로 2003년 11.8%에 비해 증가했으며 매년 약간씩 증가하는 추세다. 뿐만 아니라 주요 학술상과 각종 학회에서 주는 논문상 수상자에서 여의사들의 이름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이상 금녀의 구역은 없다?

 2004년 지역별 회원 현황을 살펴보면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여의사가 전무하던 군진 분야에 2명의 여의사가 진출한 것이다. 산부인과·소아과 등에 몰렸던 여의사들이 비뇨기과·흉부외과 등 금녀의 성역으로 여겨지던 진료과에 진출하는 것은 더이상 화제거리가 아닐 정도다. 2004년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는 전년도에 비해 50% 증가했으며,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전문의 수도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의사로서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C병원 출신 모 여의사는 "노동법에서나 공식적으로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전공의 수련 기간 중 임신이나 출산을 하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공공연히 존재한다"며 "주위에서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임신·출산 등으로 몇 달 동안 병원을 비워야 하는 데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남자 선배나 교수가 전공의 선발시험 전에 여의사는 뽑지 않을테니 지원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거나, 여자를 뽑았더니 문제가 많다는 식의 성차별적인 언행이 오간다는 게 여의사들의 설명이다.

높아진 위상과 현실 간의 괴리는 젊은 여의사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여의사들이 학술연구 및 진료부문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과대학 및 병원 보직, 의사회 등 의료계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선 아직까지 여의사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의협 회원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전국 의과대학 기초의학 교수 및 임상의학 교수급(전임의·조교수·부교수·정교수·명예교수 등 포함) 5603명 중 여의사는 768명으로, 전체의 13.7%에 불과하다

 또 그동안 2명의 보건복지부 장관(당시 보건사회부)과 3명의 국회의원 등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여의사 출신 리더를 배출했지만, 소수의 인사 중심에서 벗어나 탄탄한 조직력과 리더십을 앞세워 여의사의 정치적·사회적 뿌리를 다져야 할 시기에 직면해 있다.

반세기 여의사회, 미래로 세계로

대부분 여의사가 늘어났고, 여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졌으므로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녹록치 않기 마련이다. 무리하더라도 사회가 요구하는 씩씩한 수퍼우먼이 될 것인가, 혹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순수한 본성과 의지를 관철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의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고민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동료의사와의 생산적인 경쟁보다는 비의사 여성과 비교, 상대적 우월감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기엔 여의사로서의 자긍심이나 위상, 여의사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여의사는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발휘하는 한편, 여성성과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아동폭력·성폭력 등 사회의 약자를 대변하고, 나아가 여성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해야 한다"는 한 회원의 말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여의사회는 이번 창립 50주년 기념 행사를 마련하면서 '50th 반세기 여의사회 미래로 세계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캐치프레이즈는 여의사회가 50세기를 넘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의사회의 미래를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현숙 한국여자의사회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의사의 역할과 위상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여의사회는 여의사가 세계 속으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주인의식을 갖고 진취적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의사는 창립 당시 75명에 불과하던 회원수가 창립 50주년을 맞은 현재 3500명의 회원을 확보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반세기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중대한 시점에 여의사회의 새로운 역할 정립을 생각해야 할 때다.

여의사회는 지난 1980년대 의료사고로 숨진 강숙경 회원의 추모식을 거행하고 여자 수련의에 대한 채용 차별 호소문을 발표하는 등 부분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젊은 여의사들이 점점 늘어가는 만큼 후배들을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역할 모델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여의사회는 앞으로 회원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환과 불합리한 처우에 귀를 기울이고, 여의사는 물론 전문직 여성의 선구자로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가 처한 열악한 환경이나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젊은 여의사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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