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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미용사 된 의사 유덕기 원장
미용사 된 의사 유덕기 원장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5.11.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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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청진기, 주말엔 가위손

■ 서울시·한국일보 선정 2005년 서울사랑시민상 대상 수상

▲ 유덕기 원장

"의사가 미용사 자격증을 따서 미용봉사를 한다니까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전에는 쉽게 마음을 터놓지 않던 분들도 스스럼없이 다가오고, 금방 친해지다 보니 진료도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의료봉사로도 모자라 미용사 자격증까지 따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미용봉사까지 해 온 유덕기(49·서울 도봉구 방학 1동 유덕기내과의원) 원장이 최근 서울시와 한국일보사가 공동으로 만든 서울사랑시민상(봉사부문) 대상을 받았다.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 뿐 인데 생각지도 않았던 큰 상을 받고 보니 마음에 부담이 갑니다. 아마 의사가 미용을 한다니까 눈여겨 본 모양입니다."

16년째 이곳에서 내과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유 원장은 독거노인을 비롯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무료로 진료도 해 주고, 형편이 어려운 소년소녀가장들에게는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금도 내놓고 있다. 도봉구 건강실천협의회 위원을 맡아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계몽활동도 빼놓지 않고 있다.

 

■ 미용봉사 하면서 이웃에게 더 가까이

유덕기내과의원에 들른 환자들은 '독거노인 분들을 위해 이발봉사 해 드립니다. 접수에 신청하세요'라는 안내문과 마주치게 된다. 처음 이 안내문을 본 환자들은 "병원에서 미용실까지 하나보지" 하다가도 유 원장이 미용봉사를 위해 미용사 자격까지 취득했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몇 해 전에 의료봉사를 하러 간 곳에서 미용봉사자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노인들이 모처럼 환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의료봉사를 하면서 의약분업 여파 때문에 약 봉투 하나 변변히 못 들려 보내는 현실에 답답해하던 유 원장은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에 들어온 이화미용학원에 신청서를 내밀었다.

"처음엔 '무엇 때문에 미용기술까지 배우냐'며 의아하게 바라보더라고요. 지금은 이러한 시선에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더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 편견과 고정관념 깨는 일이 더 힘들어

외우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필기시험까지는 일사천리로 내달았다. 문제는 실기. 커트에서 파마, 핑거웨이브, 신부화장에 이르기까지 4단계를 마스터 하는 일은 부단한 인내와 노력을 요구했다.

"네 번 떨어지고 나니까 오기가 더 생기더라고요. 얼마나 힘들게 미용학원까지 다니며 노력하고 연습을 했는데,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진료를 끝내자마자 미용학원으로 달려가 문을 닫는 밤 9시까지 그렇게 꼬박 1년을 매달렸다.

2004년 6월 23일. 유 원장에게는 더 각별한 날이다. 권투선수 홍수환처럼 마침내 4전 5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용사 국가기술자격증을 딴 후에도 보다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미용학원 연구반에 등록했습니다. 지금은 미용 초보자들에게 커트 기술을 한 수 지도하고 있다니까요."

유 원장의 유별난 미용사 자격증 취득기가 미용전문잡지와 공중파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미용업계에서는 '스타 미용인'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문득 덥수룩한 머리카락으로 손이 갔다. "머리를 맡겨볼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 4전 5기 끝에 미용사 자격증 취득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주변을 돌아볼 줄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의 풍요와 시간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유 원장은 뜻하지 않은 수상을 계기로 다소 나태해졌던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스르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유 원장은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이 서초구보건소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할 때 한 켠에 마련된 공간에서 가위손으로 힘을 보태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지역사회 복지관이나 치매병원을 찾아 미용봉사도 계속하고 있다.  

"머리사랑참의료봉사모임이 기동력을 갖출 수 있도록 중고 승합차를 한 대 구입할 계획입니다.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순회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도봉구의사회 부회장을 맡아 의사회 활동도 열심인 유 원장은 "주변을 둘러보면 나름대로 의료봉사와 함께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을 사는 동료 회원들이 많다"며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회원들이 더 많아지다 보면 더 큰 봉사운동으로 커지고, 그만큼 국민의 신뢰도 더 커지는 것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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