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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와인
보르도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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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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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구<이종구심장클리닉 원장>

   와인을 얘기할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보르도 (Bordeaux)이다.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 그것도 대서양에서 가까운 도시인데, 인구 88만 명으로 프랑스에서 6번째 가는 도시이다. 와인이 제일 큰 산업이고 그걸 빼면 항공 산업이 좀 있을까 할 정도이다. 그 외로는 우수한 대학이 있고 또 그 중에서도 양조학은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

 보르도 와인 만들기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보르도가 영국의 영토였던 12, 13세기를 통해 영국과의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보르도 와인은 국제적인 상품이 되었다. 영국인들은 그 이후로 언제나 최대의 와인 애호가이자 와인의 이해자이기도 하다. 영국에선 아직도 보르도의 레드와인을 클라렛(Claret)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 시대의 보르도 와인들이 색깔이 엷어서 그 색깔을 클래레 (Clairet)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보통 레드 와인은 루쥬(Rouge)라고 부른다.

 지롱드 강 왼쪽 메독지구, 오른쪽 쌩 떼밀리옹

 보르도 지역은 크게 두개로 나뉜다. 보르도시에서 대서양으로 흐르는 지롱드(Gironde)강 왼쪽에는 메독(Medoc), 그라브(Grave), 쏘테른(Sauterne)이 있고 강 오른쪽에 있는 쌩 떼밀리옹(Saint-Emilion), 포머롤(Pomerol)지구가 있다. 보르도 지역에서는 와인을 만들 때 주로 두 세 종류의 포도품종을 섞어 쓴다. 쌩 떼밀리옹, 포머롤 지구에서는 메를로(Merlot)가 주종이 되고, 메독지구에서는 캬베르네 쏘비뇽(Cabernet Sauvignon)이 주종이 된다. 그 이유는 지롱드 강의 왼쪽과 오른쪽의 토질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약 7년 전에 파리의 학회에 참석했다가 보르도지방의 와인 샤또들을 들러보기 위해 테제베(TGV)를 타고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가본일이 있다. 와인대학을 다니는 현지인의 안내로 보르도지방을 둘러보았는데 와인 애호가로서는 꼭 한번 해봐야할 여행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이 출발하여 그림 같은 중세기마을 St. Emilion을 둘러본 후 마르고, 메독, 포이약, 세인트 에스테프에 있는 전설적인 샤또들을 들러보았다.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샤또들도 있지만 유명한 샤또를 방문하려면 사전예약이 필요하다. 이런 샤또에서는 무료로 시음을 할 수도 있고 물론 와인을 현지가격으로 살수도 있다. 오메독에 있는 무리스에는 와인박물관이 있는데 이것은 방문했을 때 수십명의 초등학교 또는 중학생들이 단체로 현지 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보르도 사람들이 와인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았으며 또한 와인산업이 그들의 밥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드러움, 강한 개성을 위해 섞는다

 두 세 종류의 포도를 섞는(blending) 이유는 포도마다 개성과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medoc지구에서는 캬베르네 쏘비뇽의 강하고 무뚝뚝한 성격에 부드러움을 더하기 위해 메를로를 섞고, 쌩 떼밀리옹, 포머롤 지구에서는 메를로에 좀 더 강인한 개성을 주기 위해 캬베르네 프랑 (Cabernet Franc)을 섞는다. 이 섞는 비율과, 또 5%에서 10%정도 섞는 제 3의 포도품종에 따라 맛은 많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 섞는 비율은 언제나 일정하지는 않다.

 어떤 해는 캬베르네 쏘비뇽이 잘 안되는 해도 있고, 또 어떤 해는 메를로가 잘 자라지 않는 해도 있다. 잘 안된 포도품종의 비율을 약간 줄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포도의 수확에서부터 즙 짜는 것, 제 1차 발효, 제 2차 발효의 과정, 숙성기간, 숙성방법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모두 완벽하게 하면 한 병에 몇십만원을 받기도 하고, 하나라도 틀리게 하면 한 병에 몇만원도 못 받을 수 있다.

 보르도 지역에선 대개 9월 초에서 약 한 달을 사이에 포도를 수확한다. 고급 샤또에서는 8월 말이 되면 매일 매일 포도송이의 상태를 점검한다. 제일 잘 익은 상태에서 하루도 늦추지 않고 따기 위해서 이다. 설익으면 포도 속의 당분이 낮아지기 때문에 신맛이 더욱 강해지고 body가 없어서 매력이 없는 와인이 된다. 반대로 너무 무르익으면 당도가 너무 높아지고 신맛과 함께 향기를 일부 잃게 된다. 산도는 와인의 필수적 성분의 하나인 탄닌의 텁텁한 맛을 감싸 주고 입안에 산뜻한 자극을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텁텁한 탄닌 성분과 신맛, 알코올 성분과 과일향의 조화가 잘 되면 위대한 와인(Grand Vin)을 만들 수 있다. 프랑스 와인이 세계적으로 군림하는 것은 이 절묘한 균형을 지닌 와인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향기의 지속성, 여러 가지 과일의 맛과 쵸콜렛, 카카오, 아카시아, 계피 등의 복잡하고 미묘한 맛이 시간을 두고 혀끝과 입천장을 자극하는 것은 최고의 프랑스 와인의 자랑거리다.

 쌩 떼밀리옹 지구의 포도 수확은 메독지구 보다 더 빠르다. 그 이유는 메를로가 좀 더 빨리 익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정부 기관이 많은 것을 통제를 하는데 특히 와인은 품질 관리가 철저해서 외국인한테도 그 등급 매김이 신뢰가 가게 한다.

 보르도 와인의 정부에 의한 품질 관리는 더 엄격하다. AOC 보르도, AOC Margaux, AOC St-Estephe 등, AOC법이라는 게 있어서 포도밭 1헥타아르에 대해서 포도나무를 몇 그루 이상을 심으면 안되며, 몇 백 리터 이상을 생산해도 안되고 알코올 도수는 최소한 얼마가 되어야 하고, 산화방지를 위한 SO2는 리터 당 몇 밀리그람을 써야 하고 숙성은 이렇게 해야 한다 등, 끝이 없다. 옆집 포도를 얻어다가 섞어도 안되고, 병입은 꼭 샤또 안에서 해야 된다. 수확 기간까지 정해 두었다. 늦게 수확하는 건 자유이지만 너무 일찍 수확하면 안된다. 아무리 빨리 와인을 만들어 빨리 팔고 싶어도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겁을 내는 것은 한번 스캔들이 나면 수습할 수 없는 결과가 오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전문가 몇몇이 제일 빠른 수확 날짜를 정해 공시한다. 그러면 그보다 이르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가 가장 좋은 날을 택한다. 가장 좋은 날이란 포도가 가장 잘 익었으면서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다. 수확 직전에 비가 온다면 이것은 샤또 주인한테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타격이다. 포도가 물을 빨아 먹으면 물 탄 와인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진장 날씨가 좋아지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도 없다. 잘못하면 다 익은 포도에 회색 곰팡이가 생겨 썩어버린다.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귀한 곰팡이가 아닌, 반갑지 않은 회색 곰팡이이다. 그래서 때론 밭에서 썩히기 보다는 조금 일찍 수확을 하는데, 양을 철저하게 줄이지 않으면 정말 재미없는 여윈 와인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포도수확을 와인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본다. 최고의 샤또에서는 아직도 포도 따기는 숙련공의 손에 의지한다. 100∼200명씩 일주일 이상 먹이고 재우면서 최고의 수확일에 일제히 덮쳐서 포도를 딴다. 우리가 일류 와인에 비싼 값을 지불하는 이유는 이러한 장인정신에 대한 존경을 지불하는 것이다.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의지와 노력은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이자 전통의 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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