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립대학병원 복지부 이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시론 국립대학병원 복지부 이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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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0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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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행정체제 개편 대학 자율성 침해
'의학교육의 질' '공공의료의 질' 동시 하락
▲ 허대석 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장

국립대학병원의 관리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한 뒤, 국립의과대학은 교육부, 국립대학병원은 복지부에서 이원화해서 관장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7월 29일 보건복지부 주관의 '국립대학교병원 발전위원회' 관련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복지부의 의도는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을 통해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보건소로 연결되는 공공보건의료체계를 구축키로 한 바 있다"는 정책추진과정 설명에 잘 요약되어 있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가 실패한 공공의료의 책임을 국립대학병원에다가 떠넘기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이 같은 정부의 정책변화가 국립대학교병원과 국립의과대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우려와 함께, 복지부가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공공의료 강화'에 갑자기 동원된 국립대학병원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왜 '국립의료원'이 아닌 '국립대학병원'이 동원되어야 하는가? 각 지역마다 설립된 국립대학병원은 기존의 공공의료기관 중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렇다면, 그 경쟁력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 답은 국립의료원과 달리 국립대학병원은 국립의과대학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한 의학교육과 연계되어 있고, 대학의 경영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립대학병원보다 교육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교수진의 자율성이 보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국립대학병원의 설립 취지와, 운영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정부의 이러한 시도는 正道를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대학소속의 병원이 설립된 이유는 의과대학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공의, 전임의 등 평생교육이 필수적인 '의학교육'의 특수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의과대학의 부속기관으로서 대학병원이 출발하였으며 그 역할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변함이 없다고 본다.

국립대학병원의 역할에 진료지침의 개발 등을 포함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 관리체계로 일단 귀속된 이후 국립대학병원의 기능을 '의학교육'의 場보다 보건소 관리를 우선하게끔 정책을 정하고 각 국립대학병원내에 신설될 '공공보건의료 사업부'를 통해 이를 추진한다면, 행정적으로 따르지 않을 방법은 사실 없다. 그뿐 아니라, 교육부 산하의 국립의과대학들은 교육병원을 잃고, 복지부 산하의 병원시설에 의학교육을 위탁해야 하는 기형적인 체제가 될 것이다.

대형 민간병원들이 의과대학 신설을 원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대학병원과 의과대학을 따로 구분해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더욱 명백하게 알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진료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육 기능이 필수적이고, '교육-연구-진료'는 의학발전에서는 분리할 수 없는 대명제이다. 임상의학을 기초의학과 분리할 수 없듯이, 임상의학 교육 및 연구의 場인 국립대학병원을 국립의과대학과 분리하는 것은 선진국의 의학 발전전략과는 역행하는 정책이다.

의료시장개방-영리법인허용 등 세계화의 물결 속에 예상되는 의료환경변화를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재투자가 가능한 사립대학병원과 경직된 행정 체계 속의 국립대학병원의 격차는 점점 더 커져 갈 것이고, 국립대학병원뿐 아니라 국립의과대학들의 하향평준화는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복지부 소속으로 운영되어 왔던 국립의료원의 과거 위상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국립대학 교수들의 우려가 근거가 없다는 주장을 펴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정책은 임상의학연구의 場으로서의 국립대학병원의 역할은 의과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학대학 등과 연계되어 생명과학의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다. 종합대학 내에서 대학병원의 역할을 점점 증가시키고 있는 선진국의 대학과는 달리, 국립대학 병원을 정부의 하부기관으로 아예 분리해버리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국립대학병원을 복지부와 같은 행정기관의 관리하에 두고 보건소와 지방의료원을 맡기는 곳이 있는지 정책 입안자에게 묻고 싶다. 나라전체가 공공의료체계로 운영되는 영국에서도 대학병원은 국가 기관과 대등한 위치에서 '자율성'을 존중 받고, 정부의 의료정책 및 연구기능에 자문을 끊임없이 할 수 있도록 의료정책에 대하여는 NICE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 Clinical Excellence)와 같은 협의기구를, 의학연구정책에 대해서는 MRC (Medical Research Council)와 같은 조직들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즉, 현 체제에서도 정부가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국립대학병원은 고유 기능의 손상 없이  공공의료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 동안 국립대학병원들이 공공의료의 틀에서 적합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 그 점을 개선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 국가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까지 무리한 행정체제 개편을 시도하는 일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접근이다. 2000년에 제정된 공공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국립대학병원은 이미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공공의료기관으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굳이 소관부처 변경까지 요구하는 무리한 정책으로 국립 의과대학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련 병원을 잃고, 교수들은 진료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의 자율성을 잃게 될 것이다.

정부가 표방하는 '공공의료 강화'에 국립대학병원을 교육기능과 분리해서 행정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정책은 정부가 단기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립대학병원의 경쟁력의 근원인 교육기능, 대학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모순된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국립 의과대학의 '의학교육의 질'과 '공공의료의 질'을 동시에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국립대학병원을 복지부 산하로 귀속시키는 시도가, 자칫 대학병원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오인하고, 그 거위의 배를 가르려는 접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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