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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불신의 역사, 행동으로 씻습니다"

"의료계 불신의 역사, 행동으로 씻습니다"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7.2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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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의사회 대표 정상훈 회원

2000년 의쟁투 시절, 의사들은 국민을 향해 손에 확성기를 쥐었다. 잘못된 의료제도를 바로 잡고 국민의 건강과 의사로서의 직업적 자부심을 지키고자 '신성한 진료실'마저 뛰쳐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의사들은 그것이 의료계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의사들의 말 자체를 들으려 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당시 투쟁의 대열에서 흥분했던 '젊은 의사'들은, 의사들이 대화를 시도하는 것마저 원천봉쇄당하고 '돈 많은 엘리트 집단이 벌이는 거만한 투쟁'이라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의사'. 이것은 2000년을 분기점으로 모든 의사들의 절체절명의 과제이며 목표가 됐다. 당시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돼 결성한 '행동하는 의사회'는 의사와 국민과의 공유영역을 넓히기 위해 유독 '행동'이라는 실천성을 무기로 내세웠다. 국민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 오랜 불신의 역사에 종말을 고하려는 시도였다.

처음 몇 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110명으로 늘어난 거대(?) 조직이 된 '행동하는 의사회'가 내년에 요양원을 설립한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 행동하는 의사회 대표 정상훈 회원

■ "소득의 10%가 회비, 봉사활동은 필수"

건네받은 명함부터 심상찮다. 오돌토돌 돌기가 박힌 점자 명함.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시각 장애인을 배려하는 약간의 수고스러움과 풍성한 배려심이 담겨있다.

의사라면 대부분 의료봉사에서 보람을 느낀다. 국민들의 오해와 달리 '많이 가진 건 돈'이라기보다는 '많이 가진 건 의료지식과 기술'이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의사회 역시 의료봉사로 첫 번째 '행동'을 개시했다. 그러다가 2003년부터 갖고 있는 돈까지 기부하는 두 번째 '행동'을 시작했다.

"신림동 독거노인을 찾아가고 여러 장애인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장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늘 했습니다. 그들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죠. 첫째가 돈, 둘째가 의료서비스였습니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는 돈의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나눠주는 게 진정한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게됐죠"

정 대표가 하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행동하는 의사회 회원들은 돈을 '조금이나마' 기부하는 게 아니다. 무려 소득의 10%다!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라는 절대자에 대한 신성한 의무로 내는 십일조를 이들은 국민에 대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대한 어떤 신성한 사명감으로 선뜻 기부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성과가 보이지 않았어요. 단기간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절망감이 컸죠. 이왕 행동하는 젊은 의사들의 패기를 모으기로 한 이상 다시 거듭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행동'의 반경을 좀 더 넓히게 된 겁니다"

현재 행동하는 의사회에 소속된 110명의 회원들은 전원 소득의 10%를 회비로 납부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행동하는 의사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회비 납부에 동의를 해야만 한다. 강제규정이면서 누구나 자유의사에 따라 가입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모인 회비 중 다달이 절반씩 뚝 떼서 사회 곳곳에 기부한다. 1주일에 한번 꼴로 장애인 시설로 자원봉사를 나가는 것도 중요한 활동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부와 자원봉사활동의 폭과 강제성을 넓히면서부터 회원이 더 불어난 것이죠. 처음엔 이 조건이 '문턱'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의외로 그 문턱을 과감히 뛰어 넘는 분들이 많아 고마운 마음입니다"

▲ 신림동 독거노인과 함께(左), 중증장애우와 함께 (右)

 

 

 

 

 

 

 

 

■ 중증장애인 요양원, 지역사회 위한 공간

행동하는 의사회는 회원들이 일선 병원 현장에서 땀 흘려 마련한 회비, 마라톤 대회·음악회 등을 개최해 마련한 모금액을 그러모아 내년에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요양원을 지을 계획이다.

정 대표는 요양원을 '최중증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내 소규모 주거시설'이라고 정의했다.

"사실 장애인을 위한 요양원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는 요양원은 대부분 사회복귀 전단계의 경증 장애인을 위한 것 뿐이죠. 그 요양원들은 장애인들이 사회 속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쉽게 거동할 수도 없고 의료인의 도움이 시시각각 필요한 중증장애인들 중에서 경제적인 궁핍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사회엔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 주고 싶어서 요양원 설립을 기획했죠"

행동하는 의사회는 요양원이 오지에 동떨어져 말 그대로 '요양'만 하는 곳이기를 원치 않는다. 지역 사회 안에 작고 예쁜 집을 지어 그 속에서 편안하게 남은 생을 보낼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얼마간 거동이 되는 환자들은 인근 이발소에서 머리도 깎고, 수퍼마켓에서 먹을 것도 사오는 등 일상의 생활을 영위하는 겁니다. 요양원 내에서 모든 활동이 이뤄지는 기존의 요양원과 달리,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하면서 지역민들과도 작은 네트워크를 구성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공간이 되도록 말이죠"

요양원 설립을 위한 자금은 현재까지 1억 5천만원 가량 모아졌고 요양원은 내년 착공할 예정이다. 행동하는 의사회는 이번에 설립하는 요양원이 앞으로 지역 사회마다 지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희가 기획한 요양원이 지역 사회에서 가치 있는 모델로 인정되면 여러 의료 단체에 공식적으로 제안해 보다 많은 요양원이 설립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사실 생활비를 무료로 하고 지역사회 자원을 활용하는 케어홈 시스템은 이미 유럽 등지에서는 흔하거든요"

장애인들을 위한 크고 작은 '행동'들을 실천하는 행동 발전소, 행동하는 의사회. 그들의 행보가 의료계 불신의 역사를 조금씩 역사의 뒷페이지로 만들어 가는 것 같다. 혹시 '행동'하고 싶은 의사라면 www.khpa.org를 클릭하는 '실천'을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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