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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5년의 빛과 그늘<1>

의약분업 5년의 빛과 그늘<1>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5.06.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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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조제 여전...실패한 정책
신뢰회복 위한 특단 대책 내놔야

전국적인 의사들의 집단반발과 사상 초유의 파업사태를 불러온 의약분업제도가 시행 5년을 맞았다.
의약분업제도는 '의·약사의 직능 전문화를 통한 보건의료 인력운영의 효율성 제고와 이로 인한 의약서비스의 질 향상'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으나 제도 시행 5년이 지나도록 제도 시행의 효과는 미지수다.
그 동안 의약분업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치른 대가와 희생은 너무나 크다는데 있다. 가장 큰 손실은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과 반목을 키웠다는 점이다. 의사와 약사 간의 반목은 여전히 깊은 골을 형성하고 있고, 정부와 의료계의 불신의 그림자는 아직도 짙다. 전문직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의약분업 사태를 계기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사회 전반에 불신이 팽배해 지면서 분열과 반목이라는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의약분업제도 시행과 맞물려 건강보험 재정도 붕괴 위기 속에 허덕이다 강도높은 허리 졸라매기 대책과 담배 부담금 덕분에 최근에야 위기국면을 벗어나게 됐다.
의협신문은 사회와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 의약분업제도 시행 5년을 면밀히 분석하고 문제점 뿐 아니라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게재순서>
1. 의약분업 시행 5년 성적표
2. 의사 사회의 변화
3. 의약분업 시행 5년 빛과 그늘
4. 의약분업 평가 제대로 하자

 

1. 의약분업 시행 5년 성적표

의약분업 제도 도입에 앞서 정부는 ▲의약품 오·남용 방지 ▲약화사고 방지 ▲과잉투약 방지 ▲불필요한 의약품의 소비 감소 ▲국민의료비용의 대폭 절감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정부는 의약분업을 시행하면 처방과 조제에 대한 이중점검과 소비자의 의약품 직접 구매를 제한함으로써 의약품 오·남용을 제도적으로 예방하고, 의약품의 과잉투약 방지 및 불필요한 의약품의 소비감소 등 합리적인 의약품 사용을 유도하여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뿐 만 아니라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전문화하여 국가 의약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함으로써 국민에게 양질의 의약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러한 장밋빛 전망은 정부정책에 반발하고 나선 의사 사회의 강력한 저항과 사상 초유의 파업사태 속에서 상당기간 표류하는 양상을 보였다.한국의료는 의약분업 제도 강행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들간의 반발과 마찰에 휩싸여 여전히 비정상적인 행보를 거듭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 5년을 맞고 있는 의약분업제도에 대한 평가는 "표(票)를 의식한 정치권과 이상론적인 개혁을 앞세운 시민단체의 합작품이다", "의약품 오·남용을 막아 국민 건강을 향상시킨 역사적 결단이다" 등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의약품 오·남용 방지되고 있나?

의약분업 이전 약국에서의 임의조제 건수는 줄잡아 5억건 정도로 추정됐다.한 시민단체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의약분업 이후 약국에서 임의조제를 받던 환자의 상당수(3억건)가 의료기관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당시 이 자료에서는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약국에서 이뤄지는 임의조제의 60~85%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의약분업이 시행된 2000년을 전후해 의료기관 외래의 요양급여 청구건수를 살펴보면 1998년 2억 2851만건, 1999년 2억 6765만건, 2000년 2억 939만건, 2001년 3억 2172만건, 2002년 3억 4759만건 등으로 조사됐다.의약분업이 전격 시행된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의료기관 외래의 청구건수는 3133만건 증가에 그쳤다.1996~1999년까지 연평균 청구건수(2951만건)의 증가를 감안할 때 의약분업에 따른 순증가는 181만건에 불과하다.이러한 수치는 약국에서 이뤄지던 임의조제의 대부분이 의약분업 이후에도 의료기관으로 이동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의약분업 시행 이후 약국에서의 문진행위나 임의조제, 낱알 및 소분판매 등 의약분업 위반행위가 심심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에서 입증되고 있다.2001년 건강연대 조사에서는 약 23%가 현행법상 문제가 있는 판매행태를 보였고, 2002년 정상혁 교수 등이 실시한 약국의 임의조제 실태조사에서는 50% 이상이 낱알판매와 소분판매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 부산일보와 인제대 보건대학원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탈법행위가 무려 58%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의약분업 위반행위를 단속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한 감시단 활동에서도 약국은 9877곳 중 1030곳(2000년), 2만 4611곳 중 439곳(2001년), 1만 9710곳 중 576곳(2002년), 2만 7133곳 중 956곳(2003년)이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에서만 2003년 6월부터 2004년까지 6436곳을 점검한 결과 6.5%에 달하는 419곳의 약국이 임의·변경조제 등 약사법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의약분업 시행 이후에도 약국에서의 불법행위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2년 정상혁 교수(이화여대)는 '임의조제 변화 추이 분석'을 통해 "약사들의 임의조제가 의약분업 이전과 비교할 때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은 의사와 약사간의 직능에 의한 역할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약분업 정책의 근본적 당위성이 소멸됨으로 인하여 이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약사들의 임의진단 및 처방에 따른 약제의 조제 및 판매가 존재함을 입증할 수 있으며 이는 적어도 의약분업 이전과 같은 수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최근 들어 약국에서는 대체조제를 하기 전에 반드시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의 동의를 얻어야 함에도 이를 무시하는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생물학적동등성이 인정된 품목으로 대체조제를 했을 경우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사후통보해야 하는 규정마저 어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약사회는 한 술 더 떠 안약·연고제 등을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직접 구입할 것을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인데 이어 올해에는 의사가 처방한 약을 성분·함량·제형이 동일한 다른 제약회사의 약으로 바꿔서 조제하자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나섬으로써 의약분업의 기본 원칙조차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정책 불신 악화일로

▲ 의사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처방한 가루약을 빼 놓고 조제하는 한편 다른 제약 회사의 약을 대체해 조제한 어느 약국의 불법조제 증거물. 최근 들어 이러한 불법 사례가 더 대담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의약분업의 성과로 항생제·주사제 등의 사용지표가 감소되고 있다며 의약품의 오·남용이 예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하지만 항생제·주사제의 감소는 의약분업 자체의 효과라기 보다는 정부의 약제 적정성 평가와 강도높은 삭감정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확한 분석이다.

정부는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이)이제는 정착단계이므로, 의약분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제도의 내실화 방안을 발굴·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약제 적정 사용의 지속적 평가 및 관리 ▲성분명 처방제 도입 및 대체조제 활성화 ▲복약지도의 내실화 ▲국민의 합리적 의료이용을 위한 홍보 강화 등을 세부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내실화 방안은 의료대란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야기한 끝에 가까스로 봉합한 타협의 결과물을 부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성분명처방을 도입하고, 대체조제를 보다 손쉽게 하려는 정부의 후속 대책은 국민의 건강보다는 약국의 재고약 문제를 해소하거나 경제성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민의 불편을 해소해 보겠다는 명분이라면 진통제·해열제 등 단순의약품을 슈퍼에서 팔도록 허용함으로써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의료계의 줄기찬 요구와 국회의 권유로 정부는 최근 '의약분업 평가 및 발전위원회'를 구성·운영하겠다고 밝혔으나 객관성을 의심받고 있는 '의약분업 성과평가를 위한 기초연구 계획안'을 토대로 복지부 주도하에 의약분업을 평가하겠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또 다시 지탄을 받고 있다. 의료계는 "객관성을 잃은 자의적인 평가는 정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뿐 아니라 이로 인해 국민 건강에 해악을 끼치게 되어 있다"며 "국회 차원의 객관적인 평가기구가 구성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사들만 의약분업 하냐?"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에 따른 허리띠 졸라매기가 의료계에 집중되면서 정부 정책 뿐 아니라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신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으로 인상된 수가(35.4%)는 진찰료 및 처방료 통합·차등수가제·야간 가산율 적용 시간대 변경·일반의약품 비급여 확대 등 재정안정화 대책으로 2001~2003년 사이에만 약 1조 6434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다. 최근들어 건강보험 재정이 상당히 호전됐음에도 정부는 의료계의 희생은 그대로 방치한 채 보장성 강화라는 선심성 보험정책에 집중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03년 약사회장의 선거과정에서 제시된 의약분업의 쟁점이자 원칙적인 합의사항 중 하나인 성분명 처방의 실시와 생물학적동등성 품목의 확대 공약이 2004년 정부의 의약분업 내실화 과제로 선정되면서 의료계의 불신은 더 깊어지고 있다.

특히 약계의 오랜 숙원인 임상약학과 약료(藥療)의 구현을 위한 약대 6년제 개편안이 오는 7월 5일 공청회를 거쳐 고등교육법 개정이라는 수순을 밟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은 악화될대로 악화된 상황이다.

신뢰회복 대책 제시돼야

의료계의 이러한 불신은 약국에서의 임의조제와 오·남용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떠한 정책도 의료계의 박수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객관적인 의약분업 평가를 통한 강력한 불법행위의 단속, 의료계의 희생을 요구하며 강압적으로 추진한 건강보험 재정안정화 대책의 원상 회복, 약료·임상약학과 의료의 명확한 관계 설정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계가 끌려오기만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정부와 의료계간의 신뢰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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