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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붕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각시붕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5.05.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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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붕어 마니아 강석진 회원

"각시붕어 사진이 칼라로 나올 수 있을까요?"
자신은 인터뷰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한사코 만류하던 그를 오랜 설득끝에 겨우 마음을 돌려놓았나 싶었는데, 이번엔 오히려 각시붕어부터 챙기고 든다.
강석진 성빈센트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과장은 여느 민물고기와는 달리 빼어난 맵시를 자랑하는 각시붕어 마니아이다.애지중지 각시붕어를 키워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어 간다.여기에 그의 오랜 연애담을 공개한다.

 

■ 각시와의 첫 만남

첫 눈에 '내 것이구나' 하고 알아봤다는 각시붕어는 지난 1988년부터 기르기 시작했다.그는 첫 만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88년 한여름 강촌 언저리에서 고기잡이나 즐기려고 던진 어항에 지느러미 색깔이 유난히 빨간 작은 물고기가 걸려들었다.

"자그마한 몸매에 오묘한 빛깔의 지느러미와 비늘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선글라스를 벗어버리고 매혹적인 자태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습니다.민물고기는 볼품없다는 고정 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죠."

수줍은 각시마냥 단아하면서도 화사한 각시붕어 덕분에 기르고 있던 열대어와 금붕어는 찬밥신세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기르고 돌보고 아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타고난 성품인가봐요.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수원천과 서호에서 물고기 잡이를 했습니다."

천성을 버리지 못한 탓에 그의 삶 속에 들어온 것은 비단 각시붕어 뿐만이 아니었다.

 

▲ 각시붕어

■ 민물고기 우리네 삶 닮아

그는 나름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물고기의 순위를 매긴다.1위는 단연 각시붕어다.그 뒤를 잇는 물고기가 송사리, 3위는 버들붕어로 모두 민물고기다.

송사리는 날쌘 몸짓과 번뜩이는 눈매가, 버들붕어는 온 몸이 붉은 색으로 변해가는 열정적인 짝짓기가 매력이다.

"민물고기는 전국 곳곳에 있는 강이 주요 서식지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민물고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네 삶과 닮은 구석이 참 많아요."

수수하고 담백하면서도 단단하고 열정적인 멋이 한국의 미와 맞닿아 있다는 그의 설명은 그럴싸하다.

그가 물고기를 키워온지도 어언 4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그저 호기심에 책을 찾아보기 시작해서 이젠 관련 논문까지 줄줄이 꿰어 물고기 박사가 다 됐다.그가 93년도에 펴낸 '각시붕어 이야기'란 에세이집은 수십년간 각시붕어와 함께 해온 인생의 발자취와 함께, 초보자도 쉽게 각시붕어를 기를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생물학 전공자가 책을 보고 조언을 구해오기도 할 정도로 그는 각시붕어에 대해선 남다른 열정과 조예를 갖고 있다.

"각시붕어가 짝짓기하는 모습이 얼마나 이쁘던지요.커봐야 5cm에 불과한 작은 물고기들이 짝짓기 기간 중에는 극도로 긴장하고 있습니다.특히 수컷이 암컷 주위를 돌면서 몸을 정신없이 파르르 떨며 구애하는 모습은 마치 트레몰로 춤을 추고 있는 듯 합니다."

■ 살아 있는 것을 제자리에 두고 싶다

그는 요즘 생태어항에 푹 빠졌다.생태어항은 인공적으로 물갈이를 하거나 별도의 정화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수초와 플랑크톤을 잡아먹는 물고기들을 어항 속에서 길러 자연 정화작용을 통해 물고기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물고기를 기르면서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단연 물갈이가 차지할 겁니다.고깃밥을 주면 금새 물이 탁해지고 썩기 때문에 수시로 물갈이를 해줘야 하거든요.그런데 생태어항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참 좋습니다.사계절 내내 잘 자라는 붕어마름과 어항 청소기 역할을 하는 새우만 있으면 거뜬합니다.물갈이를 안한지 2년 반이 지났는데도 물고기들이 잘 자란답니다."

덧붙여 어항 주변에 항상 밝은 빛을 쬐주어야 수초가 잘 자라기 때문에 효과적인 생태어항을 만들 수 있다고 귀뜸했다.

그는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는 강에서 송사리도, 버들붕어도 자취를 감추었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처음엔 민물고기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강이며 계곡이며 민물고기의 터전을 아끼고 가꾸는 데도 열심이다.

"강에서 잠시 빌려온 물고기인 만큼 번식하는대로 제 삶의 터전에 놓아주는 일이 보람되고 즐거웠습니다.그런데 요즘은 자연이 너무나 황폐해져서 더이상 물고기들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 자꾸만 물고기를 몰아넣는 것 같아 께름직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제자리에 가만 두는 것이 보살피는 길'이라고 굳게 믿어 왔던 그가, 자꾸만 흐려져가는 강과 계곡 때문에 자신과의 약속을 깨야할 것 같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자연과 민물고기에 대한 그의 애정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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