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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의 자취를 찾아서 <上>
파스퇴르의 자취를 찾아서 <上>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4.2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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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 연구소

필자는 파스퇴르라는 이름과는 이런저런 인연이 많다. 프랑스에 가기 전 집에서 파스퇴르 우유를 받아먹고 아이들을 파스퇴르 분유로 키운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우선 프랑스에 공부하러 갈 때 프랑스 정부에서 3년간 받은 장학금의 명칭이 파스퇴르 장학금이었다.

그리고 혼자 프랑스에 먼저 가서 가족들과 함께 살 집을 구하느라 한 달 동안 파리 시내를 헤매고 돌아다닌 끝에 얻은 집의 주소가 공교롭게도 루이 파스퇴르 1번지였다.

파스퇴르라는 이름과의 인연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친불주의자인(francophile) 남편을 잘못 만나 불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얼떨결에 프랑스에 따라가게 된 아내가 급하게 연수기관을 알아보다가 가게 된 곳이 바로 파스퇴르 연구소였다.

병원에서 주로 병리 슬라이드만 보던 아내가 갑자기 기초실험을 하는 연구실로 가서 고생은 했지만 내가 받는 장학금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그곳에서 월급으로 받은 덕분에 프랑스에서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집사람이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것은 내게도 영향을 미쳐 나중에 학위논문은 주로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에서 썼다.

필자가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에서 주로 공부를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곳이 프랑스의 다른 도서관(특히 오래된 대학도서관)과는 달리 매우 쾌적하고 환경이 좋으며 관료적 냄새가 덜 난다는 데 있다. 프랑스의 도서관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그 이야기는 생략하고 여기서는 파스퇴르 연구소 도서관 이야기만 하겠다. 우선 그 도서관에는 열람자가 별로 없다.

연구기관의 부속도서관이다 보니 거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이 실험에 필요한 저널을 찾거나 책을 참고하러 잠깐씩 들릴 뿐이지 나처럼 자리 잡고 앉아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필자는 널찍한 책상을 혼자 차지하고 책이나 자료들을 마음껏 펴놓고 공부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거기서는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출력도 공짜로(!) 무제한 할 수 있어 자료를 검색하다가 걸리는 논문은 무조건 출력을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필자가 전공하는 고대의학사에 관련된 책이 도서관에 별로  없다는 것인데 그것은 파스퇴르와 같은 첨단 생명과학 연구기관의 도서관에 기대할 성격의 장서는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는 갈레노스의 텍스트를 번역한다고 낑낑대고 있던 때여서 사전과 문법서만 가져가면 일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고대의학사에 관한 책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근대 의학사에 관한 책들은 꽤 소장되어 있었고, 당연하지만 파스퇴르에 관한 자료와 파스퇴르 연구소의 역사, 그리고 초창기 세균학에 관한 자료들을 잘 모아놓고 있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그런 자료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또 20세기 초 의학의 모습을 담은 시청각 자료들도 다수 소장되어 있어 식사 후에는 그런 자료들을 보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다소 학문적인 이런 이유 이외에 필자가 파스퇴르 도서관에 열심히 다닌 진짜 이유는 파스퇴르 연구소 구내식당에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는 식도락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길을 가다가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 먹어도 실망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흔히 맛이 없게 마련인 대학의 학생식당도 이삼천원이면 전채와 디저트까지 곁들여진 괜찮은 식사를 제공한다.

그런데 파스퇴르 연구소의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시내의 중급 정도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이었다. 매일 선택할 수 있는 주 요리의 메뉴가 10가지 정도 되었고 주기적으로 프랑스 각 지역과 세계 각국의 특선요리도 제공되어 미각에 관한 한 한껏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는 식당을 축제 분위기가 나게 멋지게 장식하고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고급 요리들로 식단을 꾸민 정찬을 제공한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송년회를 하는 실험실도 있다. 구내식당인 만큼 아무나 이용할 수는 없고 연구소 직원이나 초청자에 한해 식사를 할 수 있는데 필자는 매일 아내의 초청자 자격으로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나중에 직장문제로 집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귀국하고 난 후에는 처음 왔을 때처럼 혼자 몇 달을 지냈는데 그 때부터는 아쉽게도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 근처의 식당을 순례하게 되었는데 연구소 주위에는 프랑스 식당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이탈리아, 아랍 음식점 등이 있어 매일 번갈아가며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연구소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음식이 좋아 이탈리아 음식점에 자주 가서 이런저런 이탈리아 요리들을 먹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파스퇴르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파스퇴르 연구소는 파스퇴르 개인이 세운 사립 연구소이다. 국영기관이 많은 프랑스여서 당연히 프랑스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파스퇴르 연구소도 국립기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립기관이어서 조금 의외라는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정부의 지원을 상당히 받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사립기관이다.

현재의 연구소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원래 파스퇴르가 살던 집은 지금 파스퇴르 박물관이 되어 있고 그 이외에 낡은 옛날 건물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섞여 파스퇴르 연구소를 이루고 있다. 필자는 이런저런 기회에 파스퇴르 박물관을 네 차례나 방문해 박물관 구석구석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연구소의 정문을 지나 박물관으로 올라가면 아주 친절한 키가 작은 아주머니가 맞아준다. 박물관의 관리인인데 식당에서도 여러 차례 마주쳤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계속 있기 때문에 몇 명 정도 사람이 모이면 안내를 하며 설명을 해준다. 불어로만 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는 영어로 된 안내책자를 준다.

맨 처음 안내하는 곳은 파스퇴르가 실험하던 기구나 물건들을 모아 놓은 방이다. 초창기 그가 화학자로서 주로 연구한 결정에 관한 유물들이 있고 반대편 진열장에는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한 실험으로 유명한 백조목 플라스크가 여러 개 진열되어 있다.

파스퇴르 당시에 밀봉한 것이라는데 아직까지는 미생물이 자란 흔적이 없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실험기구들이 파스퇴르의 업적을 증언해준다. 거기에서 나오면 주로 파스퇴르의 생활공간을 보게 된다. 원래 이 건물이 파스퇴르가 살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박물관 여기저기에 파스퇴르가 직접 그린 그림이 많이 걸려 있는데 얼핏 보기에도 아마추어의 솜씨는 넘는다. 젊은 시절 화가를 꿈꾸었을 정도라니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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