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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4 18:30 (수)
엉터리 법…법…법에 의료체계 엉망

엉터리 법…법…법에 의료체계 엉망

  • 오윤수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0.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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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기본법조차 의약분업의 기본 정신을 위반

의약분업 시행과 맞물려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 법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의 `틀'을 새롭게 다지는 중요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법과 약사법의 모법(母法)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는 `보건의료기본법'은 의약분업을 비롯, 의료보험통합 등 의료체계의 대변혁에 근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는게 관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 정부가 유독 의사의 진찰권(診察權)을 위축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지만, 보건의료기본법에서 조차 의약분업의 기본 정신을 위반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 제3조(정의) 4항을 보면 “보건의료기관이라 함은 보건의료인이 공중 또는 특정 다수인을 위하여 보건의료서비스를 행하는 보건기관, 의료기관, 약국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3항 `보건의료인'에 관한 규정은 `보건의료 관계 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자격·면허 등을 취득하거나, 보건의료서비스에 종사하는 것이 허용된 자'로 명시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입법예고 과정에서 “약사법에 의한 약국을 보건의료기관의 범위에 포함시킬 경우 현재의 보건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국민의 정서나 약사들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사의 불법 의료행위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어 약국을 삭제하라”고 주장했다.

의협은 특히 “보건의료기본법이 다른 보건의료 관계 법령의 상위에 있다는 취지에 따라 약국을 보건의료기관에 포함시켜야 한다면 보건기관·의료기관·약국을 분리하여, 그 역할과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정부는 의료계의 주장을 묵살하고, 보건의료기본법 시행령까지 만들어 7월 27일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의료사태의 원인은 미래에 대한 대안(代案)없이 정부가 객관적이지 못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집약할 수 있다.

의약분업 시행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엉터리 정책을 시행할 경우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그나마 부실투성이 의료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전국 7만 의사가 강한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의사와 약사의 협업(協業)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 약사의 역할이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협업은 커녕 양 직종간의 불신과 갈등만 초래할 수 있다.

의사의 분노가 폭발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현행 약사법이 의사의 진찰권은 크게 위축한 반면, 약사의 임의·대체조제의 범위와 그 사후관리 대책은 허술하게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하물며 약사법의 상위법이며,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기본을 다루는 보건의료기본법에서 조차 약국을 보건의료기관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에 포함시킨다면,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시행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불분명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북의대 정책연구팀이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자격을 규정한 `의료법'에는 약사가 의료인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약국도 법적으로 의료기관이 될 수 없으며 약사가 약국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정책연구팀은 “현행 약사법에 의하면 약사는 의약품의 제조·조제·감정·보관·수입·판매를 담당하는 자(者)로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 따라서 약국에서 환자의 증상을 묻고 치료약을 조제하는 것은 분명히 법을 위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약국과 약사가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아니라고 분명히 법에 명시돼 있는데도 탈법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인데, 난데없이 정부가 이들을 `보건의료인'과 `보건의료기관'으로 본다면 의료체계의 혼선은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정부는 의약품 오·남용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원인을 차단시켜 국민건강을 향상시킨다는 목표를 의약분업 시행으로 충족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엉터리 분업으로 촉발된 의료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없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의지와 태도가 확고한 반면, 이를 뒷받침 해줄 법구조는 한마디로 엉성하기 짝이 없다.

새로 제정돼 시행되고 있는 국민의료기본법, 의료법, 약사법, 국민건강보험법 등 보건의료 관계 법령에서 수많은 모순을 찾아 볼 수 있다.

법에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해도 각종 편법을 동원해 독버섯 처럼 번지고 있는데, 불법에 대한 기준조차 정부가 무너뜨린다면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효과는 커녕 탈법적인 행태만 양산될 것이다.

약국을 보건의료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료기본법. 또 의사의 처방 범위를 600품목으로 제한하고 약사의 대체조제를 대폭 허용하고 있는 현행 약사법. 여기에 복지부가 마련해 시행중인 엉터리 의약분업 등 삼박자가 뒤범벅이 돼서 잘 어우러진다면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그야말로 엉망이 될 것은 뻔하다.

의료계가 흥분하는 것은 정부가 자존심을 짓밟았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을 시행한다면서, 약사의 위상은 높여주는 대신, 의사의 권한을 제한하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의료사태를 해결하고 국민건강을 위한 의료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법(法)부터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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