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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건 나를 돕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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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3.2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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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보령의료봉사상 수상자 유루시아 수녀

  '케냐의 어머니' 유루시아 수녀

"한 인간이 절망에 빠졌을 때 도울 수 있다는 건 제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평생을 아프리카 케냐를 비롯, 국내외 소외된 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펴온 유루시아 수녀가 의협신문과 보령제약이 공동으로 시상하는 '보령의료봉사상'의 스물 한번째 주인공이 됐다.

케냐에서 20년간 의료선교 활동을 한 게 계기가 돼 '케냐의 어머니'로 불리는 유루시아 수녀는 1965년 필리핀 메리놀수녀회에 입교한 후로, 필리핀·케냐·미국·중국 등지에서 끊임없이 의료선교활동을 펼쳐 왔다. 현재는 영등포 소재 요셉병원에서 노숙자·행려환자·외국인 노동자·알코올 의존증 환자 등을 무료 진료하면서 여전히 의료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 케냐에서 20년 그리고 필리핀·미국·중국에서…

"요셉병원에서 일하는 게 가장 기쁘다"는 유 수녀는 행여 환자들에게 위화감이나 소외감을 안겨줄까 싶어 병원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사진 찍는 것을 극구 꺼렸다. 그만큼 유 수녀는 남을 배려하는 이타심이 몸에 배어 있었다. 수상 소감을 묻자 다른 사람 칭찬부터 한다.

"저보다 더 좋은 일을 많이 한 분들도 많은데 (이런 상을 받게 되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사실은 저보다 요셉병원의 선우경식 원장님이 이 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분은 요셉병원을 운영하며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나보다 훨씬 힘써 오셨어요."

유 수녀가 아프리카에서 오랜 의료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57년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근무한 부산 일신병원에서 닥터 매킨지를 만나면서다. 당시 어렵게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진료하는 닥터 매킨지에게 큰 감화를 받아 종교에 뜻을 뒀다.

"독실한 불교 집안인데다 교육열이 대단했던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어요. 부산에 개원할 터까지 봐뒀는데 수녀가 된다니, 식구들의 반대는 당연했죠. 하지만 의료봉사·의료선교에 대한 제 의지는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니까요."

그 후 레지던트 수련을 위해 미국에 갔을 때 메리놀수녀회의 머시 수녀로부터 케냐에서의 의료선교 제의를 받았다. 당시 의료인이 턱없이 부족했던 케냐 정부와 독일주교회가 함께 케냐에 병원을 짓는데 의사 1명과 간호사 3명이 필요하단 거였다. 선뜻 제의를 수락하고 나니 불안하고 겁도 났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20년간을 케냐에서 지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생활이었다.

"하루에 세 시간밖에 못 자면서 하루 300명 이상의 환자를 보고, 전기도 물도 없는 곳에서 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무척 견디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케냐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겪는 정서적인 괴리감이었죠. 일부다처제 문화 속에서 내팽개쳐지다시피 한 여성을 진료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죠."

■ 삶을 지탱해 온 이유…"소외된 이웃과 함께"

이렇게 유 수녀가 정신·육체적인 고통을 참아가면서 평생을 의료봉사에 몸 담을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종교 때문이 아니라 유 수녀만의 굳은 믿음이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인도주의입니다. 인술을 펼친다는 각오와 직업정신이 저를 의료봉사의 길로 이끌었죠. 하지만 물질적인 욕구, 제 자신만의 안위에 대한 욕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휴머니즘을 초월한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산다는 메리놀수녀회의 기본정신이 저의 삶을 지탱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요셉병원의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해주고 있지만 실은 그들로부터 얻는 게 더 많다는 유 루시아 수녀. 묵묵하고 푸근하게 의료봉사의 길을 걸어온 유 수녀를 이제는 '의료봉사의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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