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29 (목)
"우린 책속에서 정을 읽어요"
"우린 책속에서 정을 읽어요"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5.03.21 11:3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읽는 사람들' 운영자 임성식 원장

  의사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아니, 적어도 과거에 많이 읽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런데 또 책을 읽겠다고 모인 동호회가 있다.
  과연 활동이 활발할까 싶었다. 이들은 끈끈한 인연으로 뭉쳐 노후에는 한 곳에 모여 같이 살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메디게이트 '책 읽는 사람들' 시삽(운영자) 임성식 원장(경기도 강화·인성의원)을 지난 7일 만났다.

▲ 작년 대전 계룡산으로 MT를 갔을 때 책사회원 가족들과 함께.

"의사들이 생각보다 책 안 읽어요. 전공서적만 읽죠." 임 원장은 3년 전 메디게이트 구인구직란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책 읽는 사람들(책사)'이란 동호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임 원장은 오프라인 모임에 한번 나갔다. 강원도 삼척에 있다가 서울로 옮기면서 시삽까지 맡게 됐다.

동호회 회원은 430여명.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이 많지만 50대 회원 중에도 열심히 나오는 분들이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경기와 대전이 많지만 비교적 골고루 분포돼 있다.

"오프라인 모임을 자주 합니다. 최소한 한달에 한번 이상은 모이죠. 워낙 친해지다 보니 굳이 번개가 아니더라도 자주 모여서 함께 어울립니다. 사실 동호회라는게 책 같은 매개체를 통해 모이게 되지만 만나다 보면 가족들이 함께 모이게 되고, 회원들 속 사정까지 서로 모르는 게 없어요."

모임 장소는 서울 신촌이나 광화문, 대전에서 자주 모인다. "대전에 있는 선생님들 중 '열혈회원'이 있어서 서울에서 번개할 때 꼭 올라오고 대전에서 하면 서울에서 내려가고 합니다." 대전의 정용민·서기열·이은희·황지빈 회원이 그 열성파라고.

■ 책도 서로 바꿔보고 어려운 애들도 돕고

'책 읽는 사람들' 홈페이지에는 여러 코너가 있다. '내가 아끼는 책'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하는 곳이다. '창작의 방'에서는 소설이나 시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습작을 한다. 최근 동호회 회원 중 세 명이 책을 내는 경사가 있었다. 이 중 김현숙 회원은 동화작가로 등단할 정도로 실력파다. 또 영화쪽으로 조예가 깊은 하지현 회원과 '책사' 1대 시삽이자 행동장애 분야에 정통한 김지연 회원이 그 주인공. 우연인지 세 명 모두 정신과 전문의다.

'책사'는 책만 읽는 모임이 아니다. 좋은 일도 한다. '나눔방' 코너 속 '공부방'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한달에 60만원씩 기부를 하고 있다. 벌써 1년 가까이 됐다. 이상희 회원을 주축으로 '공부방연합회'에 전달한 돈은 아이들 동화책을 사는 데 주로 쓰인다. '나눔방'에서는 또 책을 돌려읽는다. 서로 필요한 책을 우편으로 보내주고, 책 받은 댓가로 독후감을 써서 홈피에 올린다.

요즘 의과대학에서는 문학과 의학을 연계하는 수업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우리 세대로서는 아쉬운 점이죠. 예과 교육이라는 게 없다시피 했고, 고등학교 연장선상에서 교양과목이 없었어요. 교수나 선배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혼자 할 수밖에 없었죠. 저도 대학 신입생때 문과대 교수님에게 가서 읽어야 할 책을 물어보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의사들은 인문학적인 소양에 대해 열등감 같은 것이 있어요. 회원 중에는 철학 분야에 굉장히 심도 있는 부문까지 들어가기도 합니다."

■ 시삽 맡은 것은 외모 덕분

시삽을 맡게 된 과정을 물었더니, 할 사람이 없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직전 김 원 2대 시삽이 공중보건의로 있다가 학교로 가는 바람에 바빠져 누군가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활동하는 사람들 중 제가 거절하지 못하게 생겨서 저에게 줬을 겁니다. 하하하."

최근 읽었던 책 소개를 부탁했더니 곤충학자에 대한 책 두 권을 내놨다. 마르틴 아우어가 지은 '파브르 평전'과 이병철 저 '석주면 평전'. "파브르 평전은 파브르의 일생을 다룬 것이죠. 그냥 곤충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려운 상황에서 인생을 개척한 훌륭한 스승이자 과학자더군요. 그가 쓴 보고서는 무미건조한 리포트가 아니라 하나의 문학작품입니다. 또 '석주면 평전'은 나비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마 6·25로 죽지 않았다면 파브르보다 더 뛰어난 학자가 됐을 겁니다. 나비 연구를 위해 우리나라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스승도 책도 없이 홀로 연구한 분이죠."

그는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우리 어렸을 때 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했잖아요. 그게 석주명 선생 때문이랍니다. 그분이 방학 때 아이들에게 나비를 잡아오라고 해서 자신의 연구에 사용했어요. 그게 아직까지 이어져 온 거죠."

■ "동호인 주택 짓고 함께 살재요"

임 원장은 강남 논현동에서 개원하다가 강화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의 직장인 인성의원은 내과·일반외과·가정의학과 전문의 각각 2명씩 6명의 원장이 공동개원을 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창밖을 보면 논이 쭉 펼쳐져 있어서 마음이 푸근합니다. 강화에서는 환자와의 유대가 깊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환자들도 대학병원에 가기 전에 갈 수 있는 시설 좋은 병원으로 인식하고 있어요. 저도 여기서 진료할 수 없는 환자는 대학에 전화해서 예약까지 해주고, 안 되면 교수한테 직접 연락을 합니다. 진료 끝나면 다시 환자에게 전화해서 확인하구요. 그래서인지 환자들도 병원에 와서 다른 선생님께 진료받을 수 있는데도 담당 의사에게 받으려고 한두 시간씩 기다리곤 합니다."

그는 공동개원에 대해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만 양보하면 단독개원보다 장점이 많다고 했다. "평일에 하루씩 쉬어요. 혼자라면 꿈도 못 꾸죠. 휴가 때도 부담이 없구요. 안식년 같은 것도 할 수 있는데 차마 그 말은 못 꺼내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는 재주가 많다. 산악회와 레고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있고, 집에서 민물고기도 키운다. 차를 '덖는'(가마솥에서 만드는) 취미도 있다. 잡지 '굿모닝 닥터스'에 매달 서평도 연재하고 있다.

"나중에 동호인 주택을 짓고 같이 살자는 얘기가 나와요. 나이 들어 자식들 떠나면 친구가 중요한데, 책도 같이 보고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여행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농담처럼 합니다. 서울 근교가 좋겠다며 강화에 있는 저에게 알아보라고 하더군요(웃음)." 동호회는 역시 매개체보다는 구성원 간의 관계와 분위기가 결정적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아무쪼록 이들이 바람이 이뤄져 훗날 '책사마을'이 생기기를 기원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