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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詩로 환자의 아픔 달래고 싶어요"
"詩로 환자의 아픔 달래고 싶어요"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3.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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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경계' 시부문 신인상 김연종 원장

 "낮게 드러누운 풀밭 사이로 더욱 몸을 낮춰/여시같은 역무원의 날카로운 더듬이를 피해야만/극락으로 향하는 길은 있었다"(「극락강역」중) 
  극락강역에 다다르기를 열망하던 소년은 이제 중년의 의사가 되어 "애시당초/극락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쓴다. 소년에서 중년으로 건너오는 긴 시간동안 그에게 한 문장의 깨달음을 얻게 해준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 사연이야 어찌됐든 이제 그는 감히 '극락강역'이라고 부를 만한 간이역에 도착한 듯하다. 《문학과 경계》 제6회 시부문 신인상을 받음으로써 당당히 시인이라는 직함으로 문단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연종 원장(김연종 내과)에게 이번 상은 '극락강역행 기차표'라는 선물이 아니라 '극락강역행 조종사'라는 의무를 안겨준 것 같다. 시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설렘과 동시에 그에 못지 않은 강한 책임감으로 뒤섞인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 시창작 동호회 '마로니에'회원들과 함께 시를 읽고 있는 김연종 원장<가운데>.

■ 백지상태에서 문학을 접하다

시를 공부한 지 2년밖에 안 됐다는 말에 귀를 의심한다. 물론 시란 '공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며 '공부'한 시간에 비례하여 작품성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감성적인 표현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비춰볼 때, 2년 공부한 김 원장의 시가 지나치게 수작이다.

"문학에 관한 한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수용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의사라는 직업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집중력을 가지고 문학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큰 보탬이 됐지요."

백지와도 같았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는 그는 혹시나 학창시절에 문학소년(혹은 청년) 축에 속하는 전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예측도 뒤엎는다.

"군대에서 책을 많이 읽으면서 독서의 재미를 알았습니다. <토지>, <태백산맥> 등 대하소설들을 섭렵했지요. 차츰 시에도 흥미를 느끼면서 2년 전부터 시창작 동호회에 드나들며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동호회 '마로니에'는 8명이 매주 금요일 저녁에 모여 문학 공부도 하고 창작한 시 합평도 한다. 그는 전남의대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천년완골' 동호회에서도 꾸준히 활동해 왔다. 역시 수려한 시가 어느날 갑자기 종이 위에서 탄생한 것은 아닌 듯하다.

■ 詩란 감성으로 삶을 어루만지는 것

"이른 아침 염소를 끌어본 사람은 알리라/앞에서 끌어당길수록 염소는/무조건 뒤로 버틴다는 사실을"(「염소」중) 그의 시에는 삶의 경험이 녹아 있다. 일상을 담담히 얘기하면서도 삶을 관통하는 그만의 인생철학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높은 경지의 시작법을 그는 터득하고 있다. 시를 쓰는 기법이 출중해서라기보다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이미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시를 접할 때는 감상조의 사랑타령시를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동호회에서 시공부를 하면서 시에는 단순한 감정 이상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저는 제 삶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그리고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꾸 유년시절부터 시작해서 저의 삶을 헤집어보죠."(웃음)

동호회에서 공부하는 것이라며 보여준 노트에는 단정한 글씨로 수많은 시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백지와도 같았던 그의 감성의 공간에서 섬세한 촉수들이 손을 뻗는 듯하다. 하얀 가운이 상징하는 차가운 이성의 영역과 이제 막 뻗기 시작한 감성의 영역을 어떻게 조화시켰을까.

"감성과 이성은 상충하는 게 아니라 어울리는 것입니다. 극과 극은 통하게 마련이지요. 사실 의사들의 글쓰기훈련은 많이 돼 있습니다. 조금 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성찰을 한다면 숨겨져 있는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대답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다.

■ 詩가 읽히는 세상 됐으면

시를 통해 그는 환자와의 심리적 간극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아픈 사람은 외롭다. 시는 외로움을 달랜다. 그는 아픈 사람들의 가녀린 마음을 이해하는 통로를 시에서 찾았다.

"시는 내면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성찰할 기회가 많습니다. 나와 타인의 내면을 깊이 생각하다보면, 환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요. 시를 읽고 쓰다보면 저 역시 새로 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삶 속에서 시를 찾고 일상 위에 시를 짓는 그. 앞으로는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시로 옮기고 싶다고 말한다. 의료현장을 시 속에 반영하는 것은 '의사 시인'이 꿈꾸는 가장 훌륭한 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의료현장은 척박한 곳입니다. 생사를 드나드는 아픈 환자들의 내면세계는 메말라 있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그 속에 바로 삶이 있습니다. 그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생사. 살아있음과 죽음이라는 극과 극이 만나는 단어. 이제 시인이 됐다는 데에 뿌듯할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시쓰는 '의무'에 충실해야 될 것 같다는 그는 생사를 다루는 깊이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첫번째 시집이 기대된다.

주변에서 던지는 "시 쓰는 게 돈이 되냐"는 농담에 "시가 돈 되는 세상이 됐으면"이라는 소망으로 화답한다는 그. 문인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문학계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앞날까지 걱정하는 정도라면 그는 죽는 날까지 시인으로 남을 듯하다.

"잠자는 아이들의 아늑한 잠자리를 지키기 위해/그는 제가 하는 일을/제가 가장 잘 알고 있다"(「거미」중)

"시가 읽히는 세상"을 꿈꾸는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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