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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 의학도 인간 그 자체를 다루지요"
"문학도 의학도 인간 그 자체를 다루지요"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5.03.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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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강의 통해 인간을 이해시키는 고려의대 이영미 교수

 일견 이질적이면서도 상보적인 '문학과 의학'은 최근 의학교육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담론이다. 의학교육에서 인문사회의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 가운데도 '문학'은 가히 인문사회의학의 에피톰(epitome)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01년부터 고려의대에서 의예과정에 문학수업이 도입된 이래 2003년에는 연세의대 본과에 본격적인 문학교육이 운영되고 있다.

   가정의학을 전공한 임상의사로서 문학강의에 헌신하고 있는 이영미 교수(고려의대 가정의학과·교육학 석사)를 만나 이 시대 의학도들에게 왜 문학교육이 필요하며, 문학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바를 들어봤다.
 

- 문학 교육에 몸담게 된 계기는.

"임상강사 시절 은사인 홍명호 교수(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특히 이분이 나에게 준 '창조적인 의학교육(The creative medical teaching)'이란 책이 결정적이었다.그후 안덕선 교수가 많이 이끌어줬다."

- 의대생에게 문학 교육이 왜 필요한가.

"치료를 위해선 환자를 이해해야 한다.그런데 자신이 아프지 않으면 환자의 고통을 알 수 없다.이는 의학 교과서만을 보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예를 들어, 의사가 폐렴에 걸린 애를 입원시키라고 했을 때 엄마가 주저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그렇다고, 환자나 보호자를 이해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경험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문학은 간접경험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좋은 교육수단이다."  

- 문학과 의학은 언뜻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공통점이 있는가.

"양자 모두 '대상'이 인간이라는 점에서 서로 교차한다.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 의학이라면, 문학은 인간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또 추구하는 '효과'면에서 의사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감소시켜 환자에게 기쁨을 주는 것처럼, 작가는 문학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의학과 문학은 히포크라테스가 '환자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지식·기술의 발달로 의학은 질병과 인간을 분리시켜 동떨어진 개체로 여기게 됐고, 특히 20세기에 이르러 의료의 세분화·전문화에 따라 이런 경향은 더 심화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초부터 북미에서 '문학과 의학'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8년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의과대학 125개 중 74%(93개 대학)가 '문학과 의학'을 가르치고 있고, 39%의 학교에서는 이를 '필수'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  

- 문학 강의를 하는 의대가 전국에 얼마나 있는가.

"연세의대는 작년에 본과 학생들 중 자발적으로 선택한 20여명을 대상으로 문학 강의를 했다. 아주의대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의학과 예술'을 개설해 전시회나 음악연주회 등에 가기도 했는데, 이는 정규과정이 아닌 방과 후에, 저학년뿐만 아니라 고학년과 졸업한 의사들도 참여하는 식이었다. 그외 인제의대 등 몇개 대학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 고려대의 경우 올해부터 전체 교양과목 중 '의학과 예술'을 의과대에서 개설해 의대생 아닌 타과 학생들도 수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주제로 택했던 학생들은 소설의 배경이 된 소록도를 직접 방문해 당시의 상황을 조사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으며, 후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일부 학생들은 영화와 작품 속에 그려진 바람직한 의사상을 통해 이상적인 의료인을 그리기도 한다.그러나  사회에서 의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것에 대해 예비 의료인으로서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였다.사회의 책무를 다하는 의료인이 되어 일반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향후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또 환자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진술하는 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의료과실, 안락사 등의 윤리적 문제를 토론하면서 올바른 직업관과 윤리의식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모습을 지켜봤다.

- 요즘 의료계 사정이 어렵다.학생들도 알고 있나.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주인공 심영빈은 내과의사이자 대학교수인데,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의사의 경제적·사회적?지위가 매우 초라하게 묘사된 데 대해 학생들은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학생들은 아직까지는 돈보다 존경받는 의사상을 더 동경한다.또 '맞선' 업계에서 의사의 선호도가 하락했다가 최근 안정성때문에 다시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고, 여전히 의사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 주로 어떤 책과 영화를 다뤘는가.

"영화로는 <패치 아담스>, <The Doctor>, <로렌조 오일>, 문학작품은 A.J 크로닌의 <성채>, 에릭 시걸의 <닥터스>,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학생들이 많이 선택했다.

- 강의기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드는데, 효과가 있나.

"6주가 문학을 깊이있게 논의하기에는 짧지만, 강의 목표가 작품성을 논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의사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 그동안의 수업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있을텐데, 앞으로의 개선 방향은. 

"가능한 적은 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이 이뤄지도록 분반을 하는 일이 급선무다.강의실 여건이 되는 대로 40여명 단위로 묶을 계획이다. 또 발표하는 조의 학생들만 해당 영화나 문학작품을 읽어오다 보니 다른 학생들의 참여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이 발견된다.학생들이 같은 관심을 갖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선정하는 일도 개선할 점이다.마지막으로, 논제가 바람직한 의사상이나 의료윤리적 문제에만 편중되지 않고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 등 토론의 폭을 넓히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기계와 과학로 무장되면서 현대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간학으로서의 역할을 잃고 있다는 전세계적 자성이 깊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이러한 부문에 눈을 뜨고 있으며, 이영미 교수의 헌신은 어떤 직종보다 인간을 깊이 이해함으로써 환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전인적 의사를 만들기 위한 작지만 큰 행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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