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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약분업 해결방안

시론 의약분업 해결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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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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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교수(서울의대 내과)

준비 안된 의약분업으로 시작된 의사들의 대 정부 투쟁이 벌써 2개월 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 간 얽힌 문제점들이 단시일에 풀어질리 없음을 알기에 모두들 문제점에 대해서는 할 말들이 많지만 해결책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한, 현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지식인들조차도 의사들이 이번 투쟁의 목표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즉, 의사들이 진료현장을 떠난 명분을 아직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은 의료계가 무엇을 얻고 돌아오는가를 지켜보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사이의 타협점을 찾아야 할 분야는 1) 단기적으로는 의약분업과 관련된 약사법 재개정, 2) 장기적으로는 의료환경의 개선 그리고 1), 2)에 우선되어야 할 3)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회복에 있다고 본다.

1. 궁극적 목표: 의료환경의 개선

젊은 의사들의 주장은 우리나라의 현 의료제도 하에서는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할 비전이 없으니 원칙대로 교과서적 진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제도, 의료분쟁조정법 등 많은 제도들이 경제정의와 사회정의에 맞게 재정비되어야 한다.

특히, 의료수준과 비용부담문제에서 의료계와 사회가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보험료부담은 국민소득의 2.8%인 반면, 다른 OECD국가들은 10-15%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나 사회가 선진국수준의 의료를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부담을 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의료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야 성공적인 협상을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점은 장기적인 문제를 포함해야 하는 의료제도를 단기간의 합의로 보장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만든 '보건의료발전 특별위원회'에 큰 기대를 가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된다.
 
2. 협상의 전제조건: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회복

전공의들이 협상의 선결조건으로 구속자 석방, 정부의 사과 등을 내건 것은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상당히 비이성적인 접근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믿고 협상에 임할 수 있도록 정부의 태도를 확실히 해달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의료계에 많은 약속을 해 왔으나 지켜진 것은 없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정부의 편의대로 좌지우지해왔다. 의약분업문제만 하더라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시민단체를 내세워 얼렁뚱땅 법제화시킨 후 정권에 累가 될 수 있으니 약사법 재개정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 뿐 아니라 정부는 의약분업의 시행과정에서 의약분업을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축인 의사들을 '도둑'으로 몰아 여론몰이를 한 후, 강압적인 방법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접근은 信賴가 근간이 되어야 하는 의료라는 특수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의료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doctor-patient relationship)로부터 시작한다. 그 바탕은 信賴에 있다. 만약 이 신뢰의 관계가 깨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환자입장에서 믿을 수 없는 의사들에게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하고 의사는 자신을 의심하는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그 不信의 대가는 의약분업으로 기대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훨씬 웃돌고 있고, 결국 그 피해의 대부분은 국민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의료폐업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솔직히 과오를 인정함으로써 현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정부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수 있도록 원칙을 세워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의사들에게 심어주지 않고는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정부가 의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 그 첫 단계는 현안인 의약분업문제를 원칙에 입각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료개혁에 대한 현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바로 잡을 의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약속을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불신을 조장하는 일이 될 것이다.
 
3. 원칙에 입각한 醫藥分業의 해결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사와 약사사이의 업무재조정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하여 불공정하게 약사법을 개정한 것이 이 사태의 출발점이다. 의료 선진화를 위해 의약분업은 꼭 이루어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약사법의 재개정 논의와 함께 우리가 한번 짚고 넘어 가야 할 일이 있다.
 
1) '代替調劑'의 논란의 발단: 제약산업 Infra의 미비
우리나라에는 400여 개의 제약회사에서 3만종에 가까운 약제를 생산하고 있다. 성분을 기준으로 하면 1,500종의 약제만 있으면 대부분의 병에 대한 처방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 성분에 대하여 수십 종의 제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또, 대부분의 약들이 '생물학적 동등성'이 아닌 '비교용출실험'결과에 근거하여 original약과의 약효동등성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의사들은 본인이 효과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제품으로의 대체를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은 자신의 약제선택에 제약을 가하는 것을 醫權침해로 생각한다. 반면, 약사의 입장에서 쉽게 관리가 가능한 약제의 수인 600종의 약으로는 다양한 의사들의 처방을 만족시킬 수 없다.

선진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의약분업을 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면 답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나라는 10개정도의 대형제약회사로 구성되어 있고, 복사제품의 허가는 생물학적 동등성에 근거한다.

따라서, 한 성분의 약에 대해 유통되고 있는 제품의 수는 몇 개에 불과하고, 어느 제품으로 대체될지라도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약사와 의사의 이권다툼이전에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즉, 제대로 된 의약분업의 전제조건은 난립되어 있는 중소제약회사들을 정비하여 믿을만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회사들로 구조조정 하는 일을 먼저 하는 것인데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
 
2) '任意調劑'의 뿌리: 왜곡된 醫藥品 流通構造
약을 流通構造면에서 검토하면, (1) 병원에서 의사들이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약, (2) 의사의 처방에 의해 약사가 조제하는 약, (3) 환자가 증세완화를 목적으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번 의약분업논쟁에서 대상이 된 약제는 주로 (2)의 약들이다. 그런데, 의약분업을 하고 있는 나라는 (3)에 해당하는 약은 환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일반약의 슈퍼판매'를 제도화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분업안은 (2)의 약에 대한 강제분업을 규정한 반면 (3)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즉, 모든 약이 약국으로 집중된 것이다. '임의조제'의 위험성이 고조되리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일반 의약품의 獨占權을 현행같이 약국에만 국한시키는 경우 처방전 없이도 자유로이 팔 수 있는 일반 의약품을 늘리려는 약계의 요구가 계속될 것이고 이는 의약간의 이견과 약품 오남용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형 의약분업의 시작이 '일반의약품 수퍼판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의조제'에 대한 논란은 법적 해결도 중요하지만 의약품 유통구조의 정비가 전제되어야 한다.
 
3) 文化的 抵抗
東洋에서는 전통적으로 '醫藥'은 구분된 개념이 아니다. 진단하고, 처방하고, 약제를 준비하는 것까지 치료자의 일관된 업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까지 약사들의 임의조제가 불법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도 약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치료자였던 문화에 우리 국민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약의 약국으로의 독점현상은 의료제도자체의 왜곡을 초래할 높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갑자기 시행된 강제분업은 의사 및 환자에게 모두 혼란스럽게 받아들여 질 수 있다. 특히, 개원의의 경우, 진단 후 약을 사용한 뒤 환자상태의 변화를 관찰해 나가는 것이 의사로서의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진료장소에서 갑자기 모든 약제를 뺏는 것은 일종의 '武裝解除'처럼 받아 들여질 수 있다.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전'만 발부해 줄 수 있는 의사와 약을 손에 쥐어줄 수 있는 의사를 동일한 치료자로 환자들이 받아 들일지에 대해서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약을 환자에게 준다는 것은 단순한 유통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상실하게 된 의사들이 치료자로서의 존재가치(identity)에 심각한 손실을 받을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4. 어떤 原則으로 문제를 풀 것인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약분업안은 지극히 기형적인 안이다. 원칙 없이, 관계되는 이해단체의 주장을 적당히 들어 주는 식으로 법을 고쳐나간 결과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의약분업 안에 국민의 입장은 없고, 어느 한 이익집단의 주장을 수용하게 되면 다른 집단이 반대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의료현장에 있을 때, 환자, 보호자, 의료진들의 의견이 각기 다른 경우가 있다. 이를 해결하는 원칙은 환자입장에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의료적 결정도 궁극적으로는 환자를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약분업의 문제도 환자의 입장에서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단기간에 합의를 도출해 낼 자신이 정부에 없다면, 의약분업의 시행을 중단하고, 제도를 보완한 뒤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先施行 後補完 이라는 무책임한 말로 국민건강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현정권에 累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국민의 健康權보다 앞선다면 의료계뿐 아니라 국민의 信賴도 잃게 될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특히 고통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의약분업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의료계와의 信賴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 같은 信賴가 바탕이 되어야만 의사들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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