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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신년]화해의 시대/위기의 북한 보건의료

[2002신년]화해의 시대/위기의 북한 보건의료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1.02.0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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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치(의료평론가 의료정책관리학 박사)

위기의 북한 보건의료와 통독의 교훈

 

북한 국가보건의료체계 위기의 실상


북한주민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 지금 북한주민은 식량난으로 기아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질병으로 쉽게 생명을 잃는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국제인구연구소(PRB)에서 발표한 `2001년 세계인구'의 영아사망률에 따르면 올해 북한의 영아사망률은 88명이나 돼 실로 충격적이다.

국민의 건강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건강지수로서 가장 민감한 영아사망률(출산아 1,000명 당 1세 이전에 사망한 아기 수)에서 북한은 80년 39명, 90년 31명, 94년 26.8명으로 꾸준히 감소하다가 대홍수가 발생했던 1995년, 1996년에는 28명으로 늘어났었으나 1998년에는 39명으로 늘어났고 2001년 현재 무려 88명으로 급증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영아사망률로 볼 때 북한주민은 건강상태의 위기를 넘어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단된다.

한편, 홍콩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미국제개발처(USAID)의 앤드류 냇시어스의 최근 논문 `북한의 대 기아 - 기아, 정치, 그리고 대외정책'을 인용 “북한은 수년간 지속된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로 적어도 250만 명의 기아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10년 전 2,200만 명 수준이었던 북한 인구가 약 700만명 감소해 현재 1,500만 명을 약간 밑도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최근 보도한 기사는 더욱 충격적이다.

유엔의 OCHA가 세계식량기구(FAO), UNDP, UNPF, UNICEF, 세계식량계획(WFP), 세계보건기구(WHO) 등 유엔 산하 기구와, 국제적십자연맹, 그리고 아동원조기구(CAD), CS, CFB, CW, DW/GAA, HIB, TGH 등 국제 여러 나라의 NGO들이 북한원조계획을 종합해서 2001년 11월 발표한 `Consolidated Inter-Agency Appeal for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02'가 요약한 현재 북한보건의료의 위기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즉, ▲영아, 아동, 모성 사망률의 급증 ▲아동 및 여성 영양실조의 만연 ▲공중보건 이슈에 대한 무관심 ▲지속적인 결핵 신환의 증가 ▲말라리아 급증 ▲의료기관의 필수의약품 및 장비 부족 ▲예방접종의 부실 ▲입원 영양실조 아동들의 부적절한 관리 ▲열악한 산전관리 ▲불결하고 위험한 수혈 및 수액을 포함한 주사 행위 ▲예방백신의 보관 및 운반 장비의 부족 ▲보건의료인의 낙후된 지식 ▲영양실조 예방에 대한 모델접근법 전무 등이다.

현재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과 식량난이 단시일 내에 호전될 전망이 없어 북한주민들의 건강수준은 더욱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통일 후 보건의료 분야의 경비 부담을 고려할 때 더욱 심각한 것은 우선 세 가지 이슈가 꼽힌다.

첫째는, 만성 영양실조의 후유증으로 초래되는 이른바 `세대간 악순환(Inter-generational Cycle)' 현상이 북한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양상태가 나쁜 산모가 낳은 저체중아가 성장장애를 겪고 영양실조의 산모가 되어 다시 저체중아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점이다.

둘째는, 식수공급 및 위생 인프라의 붕괴가 너무 심각하다는 점이다. 식수공급시스템과 하수처리시설의 대부분이 파손되었고 기존 시설 기구 장비 등이 너무 낡아 수리를 해야하는데도 부품과 전문 인력이 없어서 방치된 상태여서 식수 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수인성전염병이 창궐하고 급성설사 환자가 많은 이유이다. 특히 머시코 인터내셔날(MCI)의 케네스 퀴노네스 동북아시아 프로젝트 책임자가 최근 방북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복고서에 따르면 북한 식수의 60% 이상이 콜레라균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전력난에 의한 잦은 정전이 식수 생산 및 공급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셋째는, 북한의 보건의료 인프라가 전면적인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필수 의약품마저 태부족일 뿐만 아니라 의료기술 및 의료설비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낙후되어 있어 전적으로 국제구호단체들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일독일의 교훈

통독 당시 서독 정부는 동독의 낙후된 의료 테크놀로지의 수준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끌어올리고 노후 시설과 장비로 거의 마비 상태에 놓여 있는 보건의료 인프라를 회생시키기 위해 응급 및 중 장기 대비책을 마련했었다.

1990년 8월 31일 서독과 동독 사이에 `통일 조약'이 조인되면서 동독의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는 숨쉴 사이 없이 서독 자본주의 체계로의 전환이 진행됐다. 조약 조인 4개월 만에 서독형 의료보험조합 `Krankenkasse'(Sickness Fund)가 조직되었고 치료비 지불 시스템이 예정대로 완결되었다.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고 일하는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사회사업가, 지원 인력 등으로 구성되었던 국가보건의료 체계가 거의 모두 민간 부문으로 대체되는데 2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통일 이전 서독에서는 통일 독일의 보건의료 체계의 모델 선정을 둘러싸고 정부,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이 치열했었다. 비록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서독 모델을 그대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서독 모델의 장점과 동독 모델의 장점을 접목시킨 통합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었다. 한편 이번 기회에 아예 다른 나라, 예컨대 영국이나 스웨덴, 핀란드, 심지어는 미국식 보건의료 체계를 도입하자는 주장마저 난무했었다.

그러나 헬무트 콜 수상 정부는 사회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결국 서독 모델을 그대로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1990년「통일조약」조인 즉시 기능마비에 빠진 동독의 보건의료 인프라를 회생시키기 위한 긴급원조계획을 신속히 실천에 옮겼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응급 대책: 긴급원조계획(Soforthilfeprogramme)

2억4,800만 달러 규모의 긴급원조계획 가운데 중요 내용은 ▲240대의 특수 장비 차량을 포함한 장애자 운송차량과 5,000대의 휠체어, 그리고 1,300대의 아동용 청각 보조기 (2,660만 달러) ▲85대의 앰뷸런스 (500만 달러) ▲200대의 신장 투석기와 5군데의 인공신장 치료센터 (1,100만 달러) ▲요양원의 병상, 소모성 의료용구, 기타 장비 (2,820만 달러) ▲의약품 (1,710만 달러) ▲병원의 의료기기 (7,000만 달러) ▲1,305명의 동독환자의 서독병원으로 이송 치료 (1,200만 달러) 등이었다.

2. 중기 대책: '비상하는 동독' 계획(Aufschwung Ost)

동독의 병·의원 및 노인·장애인 복지 시설의 개보수, 응급 식수 공급 시설 등에 5년 동안 24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획이었다. 당시 동독 의료기관의 20% 정도가 지붕이 새고 상하수 처리가 망가져 있었으며 난방 시스템이 파손되어 있고 배전 시스템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낙후, 손괴를 입은 상태여서 완전히 새롭게 지어야 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는가 하면 병 의원에는 소독 주사기나 고무 장갑 같은 기본적인 의료 용구와 기기가 거의 없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청진기와 혈압계, 그리고 진찰경(head mirror) 뿐이었다고 하니 오늘의 북한 실정과 너무나 흡사하다.

3. 장기 대책: 보건의료 인프라 재건 계획

붕괴된 동독의 보건의료 인프라를 서독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재건하기 위해 10년에 걸쳐 총 120억∼134억 달러를 쏟아 붇는 야심 만만한 계획찬 보건의료 인프라 재건계획이었다.

이렇듯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비책의 실행이 가능했던 것은 정책 결정자의 강력한 실천의지와 이를 뒷받침해 주는 풍부한 재정, 그리고 국민들의 합의 도출에 성공한 탓이기도 했지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서독은 통독 이전에 동독의 보건의료에 관련된 정보와 통계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독일 통일 2년 전(1988), 서독이 파악한 동독의 노후 병원은 총 360개로 건축된 지 평균 61년이 지나 이중 17.3%인 63개의 병원은 완전히 재건축을 요했고 38개의 정신병원의 경우 지은 지 80년을 훨씬 넘어 30.2%인 12개의 병원은 헐어버리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북한 보건의료의 붕괴위기가 단순히 자연재해 때문만이 아니고 이른바 `사회주의 기근' 때문이라고 한다면 독일통일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남북한 통일도 뜻밖에 실현될 개연성이 충분한 오늘의 시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현재 생존의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다각적인 보건의료 지원 대책과 함께 북한 보건의료 관련 정보와 통계 자료 수집에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재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국제구호단체들과의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긴요하다. 아울러서 남북한 보건의료계의 교류와 협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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