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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신년]화해의 시대/남북간 화해의 물결
[2002신년]화해의 시대/남북간 화해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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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1.02.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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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남북간 화해의 물결 어디까지 와 있나

 

 

2000년 6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 갈등과 대립을 화해와 협력으로 변화시켜 나가겠다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이후 2001년 11월의 6차 장관급회담에 이르기까지 남북간에는 장관급회담, 국방장관회담, 특사회담, 군사실무회담, 남북경제실무회담, 적십자회담, 금강산관광 당국간 회담 등 20회 이상의 회담이 개최되었다. 세 차례의 이산가족 교환방문 및 상봉행사가 있었다. 민간차원에서도 학술·언론·종교·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 협력이 이루어졌는데, 2001년 5월 1일 남북노동자대회, 6월 15일 민족통일대토론회, 7월 18일 남북농민 통일대회가 금강산에서 개최되었고, 8월 15일에는 평양에서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남북관계는 소강국면에 처해 있다. 북한은 6차 장관급회담의 결렬을 두고 남한의 협상대표를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일반적인 국제관례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1970년대 초반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남북관계는 많은 굴곡을 경험하였다. 1990년대 초반 쌍방의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을 때, 우리는 세계적인 탈냉전 추세에 발맞추어 한반도에서도 화해와 협력의 물결이 도도히 흐를 것으로 기대하였었다. 곧이어 등장한 북한 핵문제로 인해 그러한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경험한 것이 엊그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남북관계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1988년 7.7선언으로 남북교역의 물꼬가 트인 이래 그 규모는 1989년 1,800만 달러에서 2000년 4억2,500만 달러로 20배 이상으로 증대되었다.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남북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도의 0.28%라는 매우 미미한 수준에서 2000년도에는 21.6%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증가하였다. 북한의 전반적인 대외교역이 위축된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지만, 현 북한의 경제수준에서는 남북교역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인적교류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국민의 방북을 기준으로 할 때, 1989년 1건 1명에서 2000년에는 804건 7,280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는 금강산관광객이 포함되지 않는다. 특히 1998년 이후 사회문화분야의 교류·협력이 양적인 측면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남북을 왕래하는 형태로 진행된 체육·문화예술·학술분야 등의 교류가 성사되었다.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남한의 대북정책과 민간부문 교류.협력 요구의 증가, 북한의 실리 추구적 자세전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존재 양식은 대립과 갈등 중심으로부터 갈등과 이해 및 협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2000년 7월의 1차 회담 이후 장관급회담은 양측 지역을 번갈아 가며 6차 회담까지 개최되었다. 5차 회담이 북측의 일방적 연기에 따라 6개월 지체되어 열렸고, 6차 회담은 2001년 9월 11일 대미 테러사건 이후 조성된 환경 변화를 이유로 우여곡절 끝에 금강산에서 개최되고 결국 성과 없이 끝났으나, 장관급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중심적 협의체로서의 기능을 부여받고 있다.

물론 합의사항들에 대한 북한측의 이행이 담보되어 있지 않고, 또 북한측의 일방적인 입장 변화에 따라 회담의 개최 여부가 결정되거나 회담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과거의 남북회담에서 남북한이 보여주었던 갈등과 대립의 협상 양태에 비추어 본다면, 그 동안 장관급회담에서의 합의사항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양측이 점진적이고도 축차적인 방식으로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입장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방향에서의 변화의 다른 한편에는 여전히 남북관계의 본질적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 측면이 지속되고 있다. 즉 상호 체제의 불인정으로부터 오는 서로에 대한 불신의 거울 이미지(mirror image)이다. 남북한 공히 자신의 정책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와 궁극적인 통일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상대방의 정책과 의도는 회의와 의심을 가지고 본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남북한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지만 통일을 우선 순위로 추진하고 있지는 않다. 북한의 경우 당면한 체제유지의 어려움 극복이 주된 이유이며, 남한의 경우 최소한 통일이 남한의 안정적 발전에 부정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 모두 상대방의 존재 현실에 대한 인정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 서로의 체제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이 관계 개선이나 통일을 가져오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음을 우리는 동 서독의 경험에서 보았다.

북한은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며, 남한은 북한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와 사고를 버려야 할 것이다.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나름대로의 국가경영을 모색하고 있으나, `우리식 사회주의'를 명분으로 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정상화 노력은 이미 동구사회주의체제에서 실패로 끝난 지난 시대의 유물이다. 북한은 같은 아시아 사회주의체제의 일원인 베트남이나 중국이 걸어온 길조차도 자신의 체제유지에는 회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외부사조의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동요를 우려하고 있고, 교류·협력에서 단기적인 경제적 실익을 얻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별적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 입각한 대남 접근이 남북관계의 본질적인 변화, 즉 신뢰 있는 화해에 도움을 줄 수는 없다. 그런데 남한정부는 그러한 북한의 대남 접근을 자신의 정책에 부응하여 다가오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젠 북한을 볼 때 현실과 신화를 분리해야 할 때다. 그리고 2001년도의 8·15 방북단 파문사건에서 보여지듯이 교류·협력의 확대에 따른 문제점들이 발생하였으며, 남북교류가 여전히 남북한의 냉전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남북한은 각각의 정책 목적에 상관없이 정치·군사관계의 교착상태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사회문화분야에서의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데 공통의 이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화해와 상호성을 쌓는 진실한 교류·협력은 정치·안보 차원의 남북관계 개선을 동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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