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8 11:19 (목)
[2001신년]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전공의 교육환경

[2001신년]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전공의 교육환경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1.01.02 16:0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종우(고려의대병원 전공의·정신과 3년)

전공의 교육환경 개선

 

 

여기 몇명의 초년생 의사들이 있다.

의사면허를 받고 대개 2∼3년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다. 일부 전문의가 되고 싶은 사람은 한 과에서 특수분야를 상당기간 수련하면 학회에서 자격증을 준다. 수련기간중 임금은 전액 국고에서 나온다.

수련을 마치고 원하는 근무지를 적어 국가에 내고 기다리면 국가에서 사무실과 할당된 환자를 준다. 예약환자를 주로 진료하고 그 지역의 의료사업을 관리한다. 월급이 미국의사 보다는 적지만 평균 노동자 월급의 4∼5배는 되고,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관리하는 환자를 늘려서 보면된다. 진료비 문제로 환자와 다툴일은 없다(영국과 같은 나라).

의사면허를 받고 최첨단의 의료를 배울 기회는 더 넓다. 사비도 많이 들지만 교육비는 나라에서 나온다. 수련을 마치면 자기가 알아서 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실패할 위험도 있지만 대개는 고소득을 올린다. 사무실 여는 것 외에 별다른 개원비용은 들지 않는다. 근처 대학병원의 수술실 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의 역할을 계속하며 환자를 볼 수 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전문의 재평가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미국과 같은 나라).

의사면허를 받고 나면, 병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고용계약서를 쓴 후 1년간 필름찾기 등 단순한 업무만 주로 한다. 의대시절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지원은 없다. 전공의 시절 밤을 새워가며 배운 수기들은 개원을 하면 10%정도 써먹을 수 있을까. 수련기간중 상당기간을 전문의 시험에 투자해야 하지만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나면 별다른 재교육 과정이 없다. 개원할 곳도 자기가 알아봐야 하고 큰 자본이 드는 시설과 장비가 없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나이의 젊은 의사의 출발이 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의약분업과 관련된 의료계의 투쟁은 의료환경에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를 사회에 의제로 제기했다. 전공의 교육수련 문제 또한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단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값싼 노동력으로 여겨지는 전공의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대교육과 함께 의사사회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의료환경에 적응하는 의사를 배출해야할 의사사회 전체의 생존의 문제이자, 전공의 자신과 의료계는 물론 정부와 이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풀어 가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먼저 정부는 전문의 제도를 법제화만 시켜놓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먼저 전문의의 인정, 수련기한 등의 경직성을 해소하여 전문가들이 모인 민간기관에서 자율적으로 질관리를 할수있도록 권한을 이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부터 시작해야 고급인력이 과잉 양산되고 1차 진료의사는 오히려 부족한 한국적 현실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정부에서 이번 의정협상에서 대학병원의 전공의 임금인상을 위해 15%의 수가인상을 고려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방향이 아니라 국가의 지원을 늘리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 등 사회보장이 강한 나라뿐 아니라 미국에서조차도 전공의 교육비를 국고로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지원없이 규제만을 통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려는 정책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보았는가를 정부가 경험하는 것은 2000년 의료대란을 마지막으로 했으면 한다.

의료계는 자율적으로 전문의 제도와 전공의 수련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공의를 통해 단기간의 이윤창출을 보장받는 것은 저수가체계하에서 불가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장기적으로 의료계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대변화에 맞는 새로운 제도를 총괄적으로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준비 과정이 없다면 스스로 의권침해를 방기하고 의사가 개혁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다시 한번 부딪힐 수 있다.

교육과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부당삭감이라는 의권침해의 중요한 요소 또한, 제도적으로 심사평가원이 독립되더라도 동료심사를 의사가 준비하여 자율적으로 투명하게 해나가지 못한다면 멀지않아 의사들이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공의 수련제도를 스스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정부에 의한 강제적 개혁이 임상의 현실과 무관하게 다시한번 시도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전공의 자신들일 것이다. 작년 한해가 의약분업의 한해였다면 올해는 외적으로는 건강보험의 한해가 될 것이고 내적으로는 전공의수련제도의 한해가 될 것이다. 4기 전공의협의회를 중심으로한 내실있는 실천이 요구되는 한 해이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정원 축소에서 보았듯이, 이후 1차 의료강화의 비전과 정책없이 정부주도의 숫자 줄이기가 전공의 길들이기 차원에서 계속 진행될 경우 전공의 지원자의 직접적 피해는 물론, 이미 전공의인 의사들의 노동강도 강화가 수련병원의 전문의 인력보강 등의 대안없이 진행될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미국 에모리대학 인류학 및 정신과 교수인 멜빈 코너가 자신의 임상실습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하버드대학에서 의사가 되기까지'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인턴의 경우 새로운 환자가 입원하면 한시간이면 병력청취와 신체검사를 끝내고 다시 한시간이면 의무기록 작성을 끝낸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다음 문단에서 저자는 인턴들이 바쁜 업무속에 대충 넘어갈수 밖에 없는 부분이 관심을 병에만 국한시켜 전인적인 부분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만일 이 저자가 필름찾기 등 온갖 잡무에 밤을 지새고 있는 한국의 대학병원 인턴의 하루를 보았다면 어떤 평가를 내렸을 지 사뭇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이 저자가 아니라도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바로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맡길 국민은 의료계에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