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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창립]의협 94주년/광주시의사회

[2002창립]의협 94주년/광주시의사회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2.11.1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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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회 사회적 역할 충실

광주시의사회

 

빛고을 광주광역시의사회는 2,032명의 회원에 연 예산규모는 2억원. 민주화의 성지답게 의사회원들의 인식이 월등히 높은 곳으로 작은 회세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권익옹호와 회원 친목과 복지향상, 그리고 지역 봉사활동에 이르기 까지 알찬 활동을 보이고 있다.

광주시의사회는 동구·서구·남구·북구·광산구 5개구에 개원의 804명, 봉직의 605명, 수련의 623명이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80년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최악의 상황속에서 이곳 의사들은 부상자진료 등으로 시민들과 함께 하면서 여느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역 주민들과 밀착되었으나 2000년 의권투쟁과정에서 `국민의 정부'의 실패한 의료개혁정책을 낱낱이 짚어내면서 정권 창출지라는 지역주민들의 정서와 배치돼 어려움을 겪었으며, 집단행동 때 행정부서의 압력이 만만치 않게 들어오고 있다.

2000년 6월20일 6일간의 제1차 의료계 총파업이 실시되자 광주지역 의사들도 일제히 총파업에 동참하게 되는데 광주지역 소비자·시민단체들이 파업기간 내내 의사회관 앞에서 파업 철회 농성을 벌이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광주시의사회의 투쟁열기는 어느 지역에 뒤지지 않아 전남의사회와 함께 권역별 궐기대회의 첫 주자로 나서 지난 8월31일 호남권 궐기대회를 치러냈다.

2000년 의권투쟁의 빛이 강했던 탓인지 광주시의사회는 의사회 역사상 초유의 집행부 사퇴라는 아픔을 겪었다. 2000년 3월24일 제6대 회장에 최수용 회장이 선출됐으나 1차 의료계 총파업·3일 단축진료 등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일부 회원들이 회장단을 비방하고 불신하면서 최수용회장단이 8월4일 전원 사퇴해 회무 공백을 맞게 됐다.

2차 파업 투쟁은 지도부의 부재 속에 치러졌고, 원로들의 중재로 박민원 회장이 추대돼 9월1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제7대 회장에 피선됐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결단을 내린 박민원 회장은 이후 반조직까지 완전히 와해된 조직 재건에 밤낮을 뛰었고, 10월6일 5일간 계속된 제4차 의료계 총파업투쟁에 97%의 참여율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보이면서 의사회를 안정시켜 나갔다.

위기를 잘 극복한 광주시의사회의 장점이라면 회원들이 의사회의 결정을 지지하고 잘 따라주며, 결속력이 남다르다는 것. 2000년 의약분업 투쟁때 서울에서 개최된 결의대회에 1,680명∼ 2,107명이 참여하는 뜨거운 참여율을 보였다.

또 매년 재해나 불우이웃 돕기 사업에서도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내기 보다는 의사회를 창구로 해 성금을 모으고 있는데 올해도 4천만원 이상의 성금을 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박민원회장은 “광주지역 의사들은 비교적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다”며 자랑거리로 꼽았다.

의사회 구조는 박민원 회장을 정점으로 부회장 5명, 업무이사 및 무임소이사 18명이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위원회는 모두 15개가 구성되어 있다. 이번 회기 들어 눈에 띄는 변화는 윤리위원회의 위상을 크게 강화한 것. 의료정책 선도단체로서 강한 의사회나 국민과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는 의료계 내부의 순화작업이 필요조건이라는 판단 아래 윤리위원회의 체질을 크게 바꿨다.

12명의 윤리 위원 가운데 3명을 언론사 논설실장, 변호사, 윤리학과 교수 등 비의료인으로 위촉하고 비윤리적 광고나 과대광고로 물의를 일으키는 회원들을 자체 정화하면서 의사회의 신뢰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금년 상반기만 50군데에 시정조치를 했다.

의권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시민들과의 괴리를 좁히는 것도 역점을 두고 있는 부문. 의사회 사무국을 중심으로 의료상담소를 운영, 의료관련 상담에 나서 1년에 180여건을 처리하고 있으며, 취약지 의료봉사활동 등도 꾸준히 지속시키고 있다. 최근 광주교도소 의무과장의 공석이 5개월째 장기화되면서 조국현 명예회장을 중심으로 시의사회에서 한달에 2∼3번의 출장 진료로 재소자들의 건강지킴이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진료실 밖 의사상 재정립 필요한 때"

박민원 회장

 

“열심히 일했으나 특별한 성과가 없고 2000년 뜨거웠던 회원들의 열기가 점차 식으면서 동참하지 않으려는 밑바닥 정서 때문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박민원 회장은 제6대 최수용 회장단의 집단 사퇴이후 사상 초유의 집행부 공백 상태에서 2000년9월1일 제7대 회장에 선출돼 2년여 광주의사회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원로들이 최 회장 후임으로 저를 추대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구요.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결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박 회장은 8월4일 집행부 총사퇴로 조직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두달여 동안 반조직에서 부터 의사회를 재건하는데 혼신을 다해 2000년10월6일 총파업 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서 조직을 안정화시켰다.

박 회장은 “의권을 지키려는 시의사회의 노력이 지역주민들의 정서와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한다. 광주가 정권 창출 지역인지라 `국민의 정부'의 실정을 드러내는 의약분업 투쟁이 지역정서와 부합되지 않으면서 의료계 파·폐업 등 의사들의 단체행동을 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8월31일 호남권 궐기 대회의 경우 “가장 하기 힘든 곳에서 권역별 대회를 시작해야 성공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관의 각종 압력에도 불구하고 전남·광주지역이 첫 깃발을 들어 성공시켰다.

정부가 최근 각종 자료를 통해 의사의 수입을 부풀리면서 수가인하를 강행하려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박회장은 “그동안 일한 것에 비례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박 회장은 “사회, 언론, 정부, 국민, 어디를 둘러봐도 의사편은 없는 것 같다.

우리의 투쟁이 참의료와 국민 건강권의 실현을 위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으나 국민들을 설득하는데는 역부족이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진료뿐 아니라 맡은 바 사회적 역할에 더 노력할 때 명예회복이 가능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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