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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사이비의료, 어떻게 할 것인가

[2000창간]참 의료를 위한 개혁과제/사이비의료, 어떻게 할 것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0.03.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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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대구·김병준내과의원)

만병통치는 과연 가능한가? 대답은 한마디로 “아니다”. 그렇다면 왜 만병통치약은 가능한 것처럼 선전되고 유통되는가. 일반인들은 여기에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잘못을 밝혀야 하는 전문인들이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사이비 의료의 천국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이비 의료 또는 유사 의료행위가 사회에 끼치는 부작용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불법 의료는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일이 그 예를 들 필요도 없다. 물론 그러한 유사행위들이 이 사회에서 의료 부분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다. 총체적 부패국가로 낙인찍힌 이 사회 곳곳에서 모든 종류의 사이비 행위는 판을 친다. 그러나 왜 이 사회는 그런 행위들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고 감시 감독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인가. 한마디로 뭉뚱그리면 우리 사회의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전반적인 사회적 부패와, 의사나 정부의 감독의지 부족과, 의료의 경제적 유인 요소들이 함께 얽혀 있다.

우선 사이비 의료의 태생 기점은 의료의 높은 재화(財貨) 가치에서 출발한다. 사이비가 판을 치는 모든 곳에 재화라는 보편적인 유인자가 있음과 같다. 그러나 재화가치에 대해 올바른 사회적 개념은 정착되지 못했으며, 이에 관계하는 통제장치는 비효율적인 동시에 소극적이라는 점이 우리사회에서 사이비가 판을 치는 또 다른 이유들이다.

여기에는 또 적극적 행위자와 소극적 방관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적극적 행위자란 사이비 의료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범법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소극적 방관자 특히 의사나 정부 또는 관련단체들이 이들을 방치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다양화된 의료의 방법론과 급변하는 의료발전은 정상과 사이비를 구분하는 대중들의 능력을 오히려 둔화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정보사회의 무분별한 정보 배포는 이들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인터넷 최다 사이트가 포르노 사이트라는 정보 시장의 흐름이 의료에 어떻게 대입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들은 아직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20세기 초반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의료가 중요한 경제적 재화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던 이유는 의료의 기여도가 낮았기 때문이며 사실 당시의 의료는 거의 대부분 사이비 수준에 가깝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직후 전염병 만연기를 거치면서, 과학발전과 동반 발전한 의료의 기여도와 재화가치는 급상승했다. 국가 노동력과 사회 안전을 확보하는 중요한 방편이 된 의료가 우리 국민생활에 필수적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수십년간이다. 그러나 의료가 국민 생활과 사회 안전에 필수요인이 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개입은 강화되었다. 국가는 수요의 지속적 증가와 급격한 비용 상승에 의해 중요한 경제 요인로 자리잡은 의료에 대해 통제를 행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복지와 의료는 현대정치의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대 한국에서 사이비 의료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한국전쟁 전후의 사회 혼란기부터였으며 당시 일간지들은 연일 사회면에 사이비 의료업자의 고발과 피해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으로도 근절되지 않던 사이비 의료는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고 난 후 급격히 줄어들고 피해 상황 또한 심각도가 낮아졌다. 많은 수요가 의료전문인들을 통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의료보험제도는 사이비 의료를 근절시키는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속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증가하면서 사이비 의료는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증가하고 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대중들의 높아진 의식과 소득을 바탕으로 1990년대의 페러다임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에 편승한 수많은 민간처방과 비방들이 우후죽순처럼 언론과 전단지를 장식하면서 현대의학에 불만족한 수요자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사이비 종교가 의료에 개입하는가 하면, 기공법·단전호흡·천도선법·선·요가 등도 질병 치료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한방도 아니고 현대의학도 아닌 수많은 방법들이 대체의학의 이름을 걸고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이 기존 의사들이나 한의사 또는 약사들의 수입보전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건강식품들이나 한약제들이 만병통치약이나 암 또는 에이즈 치료제로 둔갑하고, 언론들은 검증 없이 마구잡이로 기사들을 쏟아 내고 있다.

수년 전 힐러리를 중심으로 한 의료개혁이 미국 의사들의 반발로 좌절된 후 미국도 대체의학 또는 보완의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급속도로 불어나는 의료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보자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 유사한 시기에 한국에서도 대체의학과 민간처방의 방법론들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한국의 의료정책도 의료일원화에서 이원화로 급선회하기에 이르고 있다. 미국과 비슷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치나 방관의 주된 이유들은 무엇인가. 한국의 경우 의료의 중요한 부분은 의료보험제도 속에 편입되어 있어서 국가 의료정책의 관심이 의료보험제도 속에서만 주로 부각되는 때문이다. 의료수요의 절대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국가가 주도하는 의료보험재정은 상대적 한계성을 지니는 현실이 관계한다. 현대의학이 의료보험제도의 통제 속에 편입된 것은 역설적으로 현대의학의 가치를 반증함이나 현실은 오히려 그 가치롤 통해 현대의학의 목을 죄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목조인 의사들은 편법을 개발하는 동시 불합리한 제도를 면죄부로 삼으면서 도덕적 정체성을 조금씩 상실해 가는 경향이 있다. 사이비가 판을 치는 한국의 현실에서 의사들이 적극적인 감독행위를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 있게 사이비 의료를 감독할 자기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며, 사이비 의료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반면 의료보험의 틀 속에서만 의료를 바라보는 정부는 제도권 밖의 유사 의료행위를 수수방관 한다. 겉으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운운하지만 제도권 밖의 욕구들이 제도권으로 편입될 경우 증가하는 보험재정의 부담과 국가의 책임을 우려하는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의료보험제도 도입 초기 보험제도가 사이비 의료를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 것과는 정반대로, 지속적으로 열악한 보험제도권 속에 편입된 한국의 현대의료는 의료욕구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대적 정체 현상을 드러내면서 수요자들의 외유를 방관한다. 그리하여 정부와 의사들의 방관 속에 만족하지 못한 의료욕구들은 제도권 외부에서 해소책을 찾게되며, 이에 무임승차한 사이비 업자들은 불간섭의 온상 속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종횡무진 불법행위들을 일삼게 된다.

의료의 가치를 제한된 보험재정의 틀 속에서만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근시안적인 시각, 스스로의 도덕적 정체성의 확신과 노력이 적은 의사들의 방관자적 자세,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의료의 재화 가치―그 3자가 변화하지 않는 한 한국의 사이비 의료행위는 근절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3자의 얽힌 매듭을 푸는 것은 바로 도덕성과 책임감으로 재무장한 의료인들이 시작해야 할 일이다.

한자리 숫자에 달랑대는 의료보험 수가 인상에 온 관심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거대한 보폭으로 의료 시장을 잠식해오는 사이비 의료를 근절시키는 일은 한국 의료의 앞날과 국민 건강을 책임진 의료인들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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