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8 17:57 (목)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이후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이후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0.07.31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11월15일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가 도입되면서 30.7%의 약가 인하조치가 이루어졌다. 의사의 노동력을 인정하지 않고 싼 품을 팔아서 약가 마진으로 근근히 진료활동을 유지해 오도록 한 저수가체계에서 서로서로를 `약장사'라는 비하의 말로 씁쓸함을 달래던 한국 의사들에게 그 충격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욱이 언론이나 일반인들(주로 시민단체)은 의사들의 절망감을 이해하기 보다는, 약사와의 밥그릇 싸움 쯤으로 간단히 치부하고 약값으로 그동안 얼마나 배를 불려왔나 하는 시선에 의사들의 현실적 절박함과 분노는 터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현실적 절박함이 분노로 표출

좀처럼 진료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던 의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왔고 의약분업의 허구를 목청 높게 외치게 됐다. 약사들의 임의조제와 무면허 진료행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으로 촉발됐지만, 그 뿌리에는 77년 시작된 의료보험제도로 인해 시작된 저수가 의료정책과 미비한 의료전달체계 등 우리나라 의료제도 전반에 대한 불만에서 부터 파생돼 급속히 의식화되는 계기를 이루었다.

지난해 11월30일 장충체육관에서는 전국 3만여 의사회원이 운집한 가운데 `올바른 분업 쟁취를 위한 범의료계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주최측이나 참석자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우고도 넘쳐 서울 회원들은 장외에서 대회를 진행했으며, 대회 후 종묘공원까지 2.8㎞를 행진하며 완전분업과 수가현실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국민건강 수호를 위해 임의조제 근절과 진료권을 보장받겠다는 의사들의 투쟁은 이렇게 불이 붙었다.

장충체육관 결의대회대회는 `뭉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의료보험으로 인한 잘못된 과오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의지를 확인함으로써 그 자체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약품의 혼합판매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약사법이 대회 3일전인 11월26일 통과됨으로써 임의조제의 확실한 근절책이 보장되지 못하자 회원들의 불만은 높아졌고 대회장에서 이것이 산발적으로 표출됐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한 젊은 회원들의 위기의식은 기존의 틀에 만족할 수 없었고, 민주의사회와 동네의원 살리기 운동본부와 같은 자생단체를 낳았다. 이러한 민초의사들의 움직임은 의권수호비상대책위원회로 이어져 의약분업과 의보수가 현실화 문제에 중점을 두고 의료계 입장을 널리 알리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보다 강력하고 지속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의쟁투)를 12월21일 공식 출범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의쟁투의 탄생은 의약분업 투쟁에 탄력을 주게 됐으며, 개원의에 국한됐던 투쟁을 전공의, 학생, 봉직의, 심지어는 교수까지로 그 지평을 넓혀가게 됐다. 이런 과정에서 12월27일 의협집행부 총사퇴에 이어 김두원 회장 직무대행체제가 출범했으며, 의쟁투는 김재정 위원장을 정점으로 투쟁의 폭을 넓혀갔다.

2·17일 여의도대회는 장충체육관 대회 때보다도 많은 전국 회원들이 몰려 열기를 더했다. 병협과 의협이 공동으로 결행한 `잘못된 의약분업 바로잡기 의사전국대회'에서 대체조제 및 임의조제에 대한 법적 보장들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 정부의 의약분업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천명했으며, 김재정 의쟁투 위원장과 시도지부장들의 삭발, 전국 6만5천여 의사의 의사면허증 반납에 이어 3월2일부터 3일간 전국 휴진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대회에서 결의된 3월휴진은 몇차례의 고민 끝에 철회됐으며, 이 와중에 제3기 의쟁투(위원장 신상진)가 출범했다.

5월28일 서초 구민회관에서 열린 전국 의사 대표자 결의대회는 의약분업 투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개원의 중심에 전공의들이 참여하던데서 의대생, 봉직의, 나아가 교수들까지도 가세함으로써 의약분업 투쟁이 범의료계로 확산된 것이다. 물론 이들은 의약분업 단일의 사안에서 더 나아가 한국 의료제도의 모순점을 타파하겠다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해 들어갔다. 16개 시도의사회장, 시군구 의사회장 및 의쟁투위원장, 병협, 의학회, 개원의협의회, 전공의협의회, 의대생 대표 등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17여의도대회의 결의사항을 재확인하고 의료계의 충언이 무시되고 잘못된 의약분업이 강행될 경우 7만여 의사는 성스런 의사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천명했다.

이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 치러진 6·4 과천 결의대회는 의대생에서 부터 전공의, 개원의, 봉직의, 교수까지 모두 한 마음이 돼 77년 의료보험제도 실시 이후 왜곡되어 온 한국의료제도의 대수술을 요구했다. 이들은 의약분업으로 인해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을 치유하는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을 다스리는 병인(病因)요법을 원했고, 이러한 배경 때문에 6월20일 폐업 투쟁이라는 극단적 처방이 결행됐다.

장충동, 여의도, 과천에서의 피맺힌 절규

의약분업 관련 10개항의 요구사항에 대한 정부 답변 내용 수용여부를 전회원 투표에 붙인 결과 99%가 반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예정대로 6월20일 한국의료사상 초유의 폐업에 돌입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전국사립대의료원장협의회 등의 지지성명이 잇달은 가운데 의협은 19일 자정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투쟁선포식'을 가졌고 전국의 의료기관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 전공의들은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부터 병원문을 나와 투쟁에 돌입했으며, 학생들은 동맹휴업에 들어갔다.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떠난 자리에서 환자진료를 담당했으나 사직서를 제출하고 올바른 의약분업이 되지 않을 때 진료를 포기할 수 도 있음을 천명, 정부를 압박했다.

다급해진 정부와 여당은 6월23일 긴급당정회의를 열어 6개월 시한의 의약분업평가단의 운영과 의료보험수가의 단계적 인상안 등을 발표했으며, 이한동 국무총리가 긴급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처방들이 23년만에 터져나온 의사들의 분노를 삭히기에는 미흡했으며,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24일 여야 영수회담을 열어 7월 임시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약속함으로써 6일간의 폐업투쟁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이후 약사법 개정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으나 국회 6인 소위에서 합의돼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합의개정안은 의사의 사전 동의를 외면하고 대체조제를 허용하는 등 분업의 대원칙을 무시한 짜집기에 급급한 졸속 안으로서 의사들은 또다시 분노하고 있다.

改惡 약사법에 또다시 투쟁길로

지난 11월이후 가열된 회원들의 투쟁 정서에서 볼 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없다는 푸념이 나올 수 있다. 한편에서는 그동안의 투쟁과정에서 잃는 것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월1일 부분적으로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국민들은 많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지만, 왜 의사들이 목청 높여 이 제도의 허구성을 지적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폐업기간동안 자신들이 필요할 때 진료를 받지 못한 사실만이 각인되어 있을 수 있다.

이번 투쟁과정을 거치면서 진료실의 영역에 갇혀 있던 의사들이 급속히 의식화되고 의료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을 소득이라면 소득일 수 있다. 지난11월30일 장충체육관에서 대회를 마치고 나온 한 회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터무니 없이 낮은 수가일 망정 약마진으로 보상받은 방법은 적어도 법적으로는 원칙이 아니며 이것조차 결국은 통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칙을 견지하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논리만이 의권을 수호할 수 있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고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일 수 있다. 의약분업 단일의 사안이 아니라 우리나라 의료제도 전반의 모순 해결에 의사들이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해결하려는 긴 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