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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21:36 (금)
[기획] 의약분업(5) 바른 분업보완책
[기획] 의약분업(5) 바른 분업보완책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0.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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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시행을 위한 정부의 약사법 개정안은 지금까지 약사에 의해 자행돼 왔던 불법 진료 관행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적으로 불법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약사의 불법 진료행위를 법적으로 양성화하는 약사법을 막기 위해 의사들이 폐업이라는 강경책을 들고 나온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약사에게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로 위장된 약품 선택권 즉, 진료권을 허용하는 한 의약분업은 더 이상 시행해야 할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지금까지 약사의 불법 진료행위를 묵인해 온 배경에는 의사 수 부족에 따라 손이 미치지 못하는 일차적인 의료 서비스를 약사들이 일부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기본적인 보건의료의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었던 후진적인 보건의료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당장 의료의 질 보다는 접근성이 절박한 시기였다. 1990년대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간 한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 원조를 받아야 나라가 유지됐던 후진국에서 OECD 가입국이라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서는 경이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정부가 강행하려는 의약분업 제도는 겉만 선진국 제도로 포장하고 실상 내면은 후진적 의료제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괴리가 있다. 한국형 의약분업의 이론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는 보건 경제학의 논리도 여전히 질 보다는 양의 후진적 경제학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적 오류를 발견할 수 있고, 또 이를 비판 없이 현대 한국의료에 접목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전망이다. 약사의 진료행위가 질 보다는 양을 중요시한 후진국 상황에서는 묵인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

보건경제학자들은 지금까지 감기에 걸린 환자를 두고 약사가 1천원 어치 감기약을 처방했을 때와 의사가 5천원 어치의 감기 치료를 행했을 경우 최소한 의사가 행한 치료의 질이 약사보다 5배 이상은 돼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해 왔다. 치료의 질이 5배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약사에게 진료를 받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논리를 펴왔다.

이러한 논리를 펴 온 한국 보건경제학자들은 의사와 약사를 동일한 의료인으로 설정한 기초 단계부터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건경제학이 바로 서려면 약사의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부작용과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 비용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한다.

정부가 강행하려는 의약분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의료인이 아닌 약사에게 일차 의료를 분담하도록 하는 것이 보험재정을 아낄 수 있다는 잘못된 보건경제학적 논리를 비판 없이 차용하고 있다는데 있다. 국민 건강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의약분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은 보건의료를 질적인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라야 가능하다.

의약분업의 원칙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부적인 시행 절차와 내용은 판이하게 나타난다. 올바른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목적의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운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초가 부실하다보니 세부적인 시행방안을 조정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의약분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보완책은 기본 원칙을 세우고 이에 합당한 세부안을 마련하는데서 출발한다.

올바른 의약분업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의약분업 제도를 올바로 이해하고 제도 시행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형 의약분업이라는 제도가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르고 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을 약사가 다른 약으로 바꾸어 조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료의 총체적인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의사와 상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약사가 의사의 처방과 다른 약을 바꾸어 주어야겠다는 판단을 하는 것 자체가 진료행위다. 의학을 공부하지도 않고, 임상실습도 하지 않은 약사가 의료인의 면허 없이 진료를 하겠다는 것은 환자를 우롱하는 행위이자 범법 행위다.

일반약 혼합판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약사들의 일반약 판매행위의 형태는 환자가 의약품 설명서를 읽고 선택할 수 있도록 의약품 진열장부터 다시 짜야 가능하다. 현재의 약국은 환자가 약을 직접 살펴보고 설명서를 읽어볼 수 없도록 카운터라는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할 수 없이 환자는 약사에게 질환을 설명하고 약사가 판단하여 권유하는 약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약사의 다른 약 끼워팔기나 건강 보조식품·한약 얹어팔기가 보다 수월해 질 수 있다. 환자가 포장 설명서를 읽어보고 필요로 하는 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일반약 선택권을 줄 것인지, 아니면 카운터라는 장벽을 이용해 약사의 끼워팔기 구조가 가능하도록 약사에게 일반약 처방권(?)을 줄 것인지의 문제도 냉정하게 검토해야 한다.

환자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일반약의 낱알 포장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면 환자가 약품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구입할 수 있는 수퍼나 편의점에서의 진열 판매가 보다 설득력이 있다. 의약분업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뤄지는 비처방약(일반약) 판매 방식이 진열판매라는 사실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약국이 조제 및 판매기록부를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사협회의 요구는 국민 입장에서 무척 바람직한 요구다. 약사가 기록부를 작성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안전한 약이라면 수퍼나 편의점에서 판매하도록 해야 한다.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약화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무슨 약 때문에 부작용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조제 및 판매기록부다.

더욱이 의사의 처방에 의해 전문의약품을 조제해야 하는 약국에서 조제 및 판매기록부를 작성한다는 의미는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하나의 의무기록이다. 의무기록 없이 조제행위를 하겠다는 것은 전혀 전문인다운 행동이 아니다. 탈세를 위한 무자료 거래를 염두에 두고 조제 및 판매기록부를 작성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뿐이다.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사와 약사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며 그 전제가 의사와 약사의 제자리 찾기일 것이다. 현행 약사법이 후진적인 약사의 불법 진료행위를 양성화하는 의악(?)분업이 된다면 의사와 약사의 제자리 찾기와 상호 신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개정 약사법은 의,약인 상호 불신을 부채질하고 폐업과 의사 면허 반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기름을 붓는 개악안에 다름아니다.

보건당국과 정부당국이 의료 공급자의 주체인 의사 사회에 회복하지 못할 지경의 불신을 조장해 놓고 올바른 의료정책을 펴 나가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의료계가 의약분업 투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하나 둘 의료 외적인 한계점과 내적인 불협화음의 문제점이 드러난 바 있다. 내부적으로 결속을 다지기 위한 대동단결의 성숙한 자세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의료계의 '적전분열'과 이로 인한 파장의 엄청난 피해는 의료계 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적정수가, 적여급여를 위한 국민적 합의 도출 문제,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보험 재정 확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에 따른 수가계약제 문제, 의료분쟁조정법 문제, 의학교육의 개혁과 전공의들의 처우 개선 문제 등 의료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한 전체 청사진을 펼쳐놓고 볼 때 의약분업이 의료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그나마 이러한 문제는 단시간에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일부분에 불과한 의약분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부터 불협화음이 도출되고 의사 사회가 자중지란에 빠진다면 한국 의료는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유사이래 한국의 의사 사회가 이렇게 결집되고 하나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가에 대한 재평가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의사 사회가 모래알 집단이 아니라 언제든지 하나로 결집하고 단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의사 사회가 잘못된 의료관행의 틀을 깨고 의료개혁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잘못된 관행이 자리잡은 만큼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염두에 둬야 한다. 지금은 무엇보다 먼저 의사 사회의 결속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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