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0 06:00 (토)
전면시행 의약분업 그 문제점

전면시행 의약분업 그 문제점

  • 오윤수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0.07.31 00: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원·인프라 구축 미비, '위험한 임상시험'

정부가 강행하려는 의약분업은 애초에 부실공사였다.

따라서 8월부터 분업이 전면 시행되면, 국민은 지금보다도 못한 건강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은 뻔하며, 잘못된 의료제도로 인한 의료체계의 재꼬임 현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의약분업이 엉망이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는 완벽한 공사를 위한 재원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제도를 수용할 만한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말로만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지적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처음부터 “분업을 시행해도 별도의 재정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방송이나 각종 인쇄매체를 통해 수십억원을 써가며 실시한 대국민 홍보에서도 당분간 불편해도 경제적 부담없이 국민건강을 위해 좋은 제도를 맛볼 수 있다고 선전했다.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역할을 올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물론, 비뚤어진 의료제도를 바로잡는 대공사(大工事)다. 교량을 건설하든, 집을 짓든 어떤 공사든지간에 이에 필요한 자금은 반드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보건복지부는 별도의 재정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이 배경에는 대충 국민을 속여 말뿐인 의료개혁에 국민을 동참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으며, 실제로 분업시행에 따른 추가부담이 발생할 경우 은근 슬쩍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속셈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분업시행에 따른 추가부담은 의료계만 일방적으로 주장해 온 것이 아니었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97년 의료개혁위원회를 1년동안 운영하면서 마련한 재정추계에서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1조3천억원 이상의 보험재정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복지부는 이를 무시한 채, 이 연구자료조차도 공개하기를 꺼렸다.

보사연이 발표한 `의약분업 시행에 대비한 적정 의사처방료 및 약사조제료 산정연구'에 따르면, 보험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시행을 전제로 했을때 보험재정 추가소요액은 어림잡아 9,690여억원이라 했다. 따라서 이를 충당하기 위한 보험료 인상률은 약 16.85%로 분업시행으로 인한 국민부담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의협과 약사회 등 관련단체에서 추계한 비용은 약 4조5,000여억원으로 정부의 산출기준 및 액수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의료계의 산출근거는 ▲매년 약 20%씩 늘어나는 보험급여비 자연 증가분(약 2조원) ▲약국의보에서 일반 의료보험으로 전환되는 부문(약 5,000억원) ▲비보험인 약국판매 전문약의 보험급여화(약 1조원) ▲진찰료 인상 및 처방료·조제료 부담(약 1조원) ▲수진자의 교통비 등 경제적 부담 및 시간 부담(약 5,000만원) 등으로 충분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잘못된 분업안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거짓말을 번복하고 추가비용을 인정했다.

보건복지부는 6월 말 분업 실시에 따른 의보수가 인상방침을 발표하면서 약국의보 폐지 등 여러가지 요인을 고려할 때 보험자 부담과 본인부담금 등을 합쳐 총 1조5,437억원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찌됐든 추가비용은 당연히 뒤따르게 마련인데,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의료계만 희생양으로 삼아 부실공사를 강행하려 했음이 확인된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추가비용 1조5천여억원이라는 금액도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시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국민건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분업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저가(低價) 의약품 사용 활성화 방안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파장이 시작되고 있다.

보험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와 의약분업 시행으로 약가마진이 완전히 사라진 마당에, 그동안 낮은 의보수가로 인한 경영난을 약가마진에서 어느 정도 보전해 온 의료기관이 굳이 카피약을 처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다시말해 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드럭에 대한 처방빈도를 늘릴 것이고, 이로 인한 재정부담은 자연히 증가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저가약을 사용할 경우 의료기관과 약국에 각각 인센티브를 주는 이른바 저가약 사용 장려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건강을 위해 의약분업을 실시하겠다는 보건복지부가 이를 감당할 만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자, 의료의 질(質)을 낮추어서라도 잘못된 분업을 끌고 가겠다는 한심한 발상을 꾸미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준비안된 의약분업이 결국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겠다는 대목임을 잘 알게 해준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이를 수용할 만한 여건이 안되면 이는 곧 `개발에 편자'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계는 넘치는 의사인력과 의료자원 편중 등 어느 하나 국민건강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의료정책이 부재한 탓이다.

90년대 접어들면서 전국에 걸쳐 우후죽순격으로 들어선 신설 의과대학으로 매년 3,000명 이상 의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한의사까지 포함할 경우 OECD가 제시한 적정 의사수(인구 10만명 당 150명)를 곧 초과할 조짐을 보인다.

병원과 병상수 등 보건의료시설도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데, 이는 대형 의료기관 위주로 재편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의료전달체계는 점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여기에 금년도 보건복지 분야에 편성된 예산을 보면 정부 전체 예산 중 3.4%에 불과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복지 분야가 제도나 경제적인 면에서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선진제도인 의약분업을 강행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말해 엉망인 의약분업이라도 이를 수용할 만한 내부적인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여·야 영수회담을 통해 합의 처리키로 한 약사법 개정안도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를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임시국회 회기내에 처리되지 못해 분업 시행에 필요한 재원확보도 불투명하게 됐다.

특히 표류중인 추경예산안은 총 2조4,000억원 규모로 이 중에는 의약분업 시행시 긴급히 투입해야 할 예산도 포함돼 있는데, 여·야 대립으로 심의조차 중담됨에 따라 보험재정에 상당한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의약분업을 시행하기 위해 차질없이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이를 수용할 만한 관련 제도의 정비나 재정확충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량 자재 사용 등으로 인한 부실공사는 건축물이 붕괴되는 것에서 그친다. 물론 생명도 앗아갈 수 있지만.

그러나 엉터리 의료정책을 강행할 경우 전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임상실험'임을 정부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준비가 덜 됐으면,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백년대계의 의료제도를 만든다는 각오로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국민을 위한 정부의 자세가 아쉬운 게 현실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