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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과 미국의 뚱보문화
과유불급과 미국의 뚱보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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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2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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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풍성한 음식문화 속 비만은 '전염병'

비건강식·운동부족 합병증 미국 전체 의료비 9% 차지
유럽, 패스트푸드에 '비만세금'·광고 규제 고려중


'치즈버거법안' 하원통과

근래 미국 패스트푸드업자에 대한 소송이 남발하던 차에 지난 3월 11일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국연방하원은 패스트푸드업자에 대한 소송제기를 금지하는 소위 '치즈버그법안'을 276 대 139의 다수표로 통과시켰다.

자신이 좋아해서 음식을 많이 먹고 난 결과(비만)에 대해 음식을 탓하는 풍조에 제동을 건 셈이다. 이 법안통과에 대해 하원의장(공화당)말은 "법정변호인들은 돈벌이를 할 목적으로 음식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 음식업자를 소송하라는 보복행위를 충동질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되고 경망한 소송은 법으로 금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백악관도 이 법안통과를 즉각 지지하고 법안지지성명에서 "합법적이고 품질이 보장된 음식섭취와 비만을 연계시켜 식품업자를 소송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상원에서 연내(2004년)에 통과될 가능성은 적으니, "구태여 법으로 식품업계를 보호해줄 필요까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민주당의 저항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하기 하루 전날 JAMA(2004년 3월 10일)는 연방정부 CDC(만성질환예방부처)에서 발표한 2000년도 미국의 사망원인(Actual Cause of Death in the U.S. 2000)을 게재했다(참조 표). 이 발표에 의하면 2000년도 비건강식과 운동부족으로 인한 사망자는 40만 명으로 10년 전(1990년)의 30만 명보다 10만 명(33%)이나 증가했고 표에서 보듯이 제1살인자인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43만5천명과 근소한 차이며, 알코올·자동차사고·총기사고와 약물사고로 인한 사망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숫자다. 그리고 비건강식과 운동부족으로 인한 비만의 합병증(심장병과 당뇨병 등)에 소요되는 의료비는 놀랍게도 미국전체 의료비의 9%로 추정된다.

CDC는 불원간 비건강식과 운동부족으로 인한 사망이 흡연사망을 앞서게 되리라 경고하고, 국민보건을 위협하는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에 비추어 CDC 책임자는 "비건강식과 운동부족이라는 중대이슈를 국가차원에서 다루게 될 대대적인 프로그램을 설정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비만문제 해결에 공화당의 견해는 "패스트푸드업계와 간이음식점이 책임질 일이 못 된다. 미국인은 비만에 대해 자신의 과식은 탓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고만 있다. 과거 담배회사를 소송했듯이 식품산업을 소송한다면, 경제파탄은 물론 국가의 제2위 산업을 차지하는 식품산업계 종업원 1,200만 명의 생계를 위협하게 된다"고 했다.

여기에 맞서 민주당에서는 "공화당은 무조건 대기업만 도우려 하고 있다. 그들은 건강의 제1이슈인 비만에 대해 무책임한 업자들을 방치한 채 국민 각자의 책임만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담배소송과는 달리 식품소송은 승소하는 일이 드물지만, 식품업계에 대해 건강음식제조를 강요하는 점에서 효과적이라 하겠다.

그 결과 패스트푸드업자들은 건강식을 바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소송을 피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맥도날드는 건강식 위주의 5달러 가족식사 'Go Active'를 선보였으며, 버거킹은 지방 5mg만 함유한 3달러 미만의 치킨샌드위치를 전국에 보급하고 있다.

그리하여 2002년도 시판 1,350억 달러($135B) 산업의 패스트푸드시장은 그에 대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2007년도엔 1,538억 달러($153.8B)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업계가 건강음식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비만에 관한한 문제는 남아있다. 포식하는 미국문화에서 탈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뚱보문화와 과유불급

동일한 서양문화권에 속하면서도 유럽에 비해 미국에 뚱보가 유달리 많아 Fat Land(뚱보나라)로 불리는 이유를, 하버드보건대학 심장혈관병예방학과장 Sack 교수는 '음식문화의 차이'에 두고 있다. 즉 음식에 대한 미국인의 개념은 "미국인은 맛있는 음식은 마치 칼로리가 없는 듯이 알고 많이 먹는다. 미국인들은 자기네 모두가 포식면허증(a license to gluttony)을 갖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과식(Gluttony)은 7대악의 하나'라는 전통을 지닌 유럽인에겐 이러한 미국식 정신상태가 없고, 그들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대신 그 맛을 즐기는 음식문화를 갖고 있다"고 논평했다.

따지고 보면 종전의 피라미드음식이 비만만 조장하여 역효과를 본 것도, 음식량에 구애받지 않고 구미를 돋우는 탄수화물음식을 대량 섭취하기 때문이다. 풍요한 사회가 되면서 시장에 음식이 넘치고 가격이 저렴해졌으며, 외식하는 일이 많아지고 가정식사가 줄어들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1924년엔 가정주부의 일과에서 87%는 집안일을 했는데, 이 숫자가 차츰 줄어들어 1977년에 43%, 그리고 1999년엔 14%에 불과했다.

1950년대 미국인은 생활비의 1/5을 식생활에 사용하고, 1/5 정도 외식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활비의 1/10이 음식비용이고, 식사의 절반은 외식할 정도로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적어졌다. 식도락 즉 먹는 재미가 미국인 생활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B. Schwartz 박사는 저서 'More is Less'에서 선택을 중요시하는 현 개인주의문화는 범람한 물질과 정보사회에서 선택의 혼동에 빠져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풍요사회에서 우리가 당면한 고민을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More is Less'라는 멋진 표현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번역해 보고 싶다.

논어에 나오는 과유불급은 '지나친 일은 부족한 일 못지않게 나쁘다'는 뜻으로, 과잉상태는 미숙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둘 다 중용의 덕에 어긋난다는 말도 된다.

과거 먹을 것이 귀했던 동양사회에서 비만은 우리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옛적 한국에서 부자들이 쌀밥(백미)을 과식하면 각기병에 걸렸던 고사(故事)나, 현재 영양과다시대의 쌀밥과식이 hyper-glycemic기전으로 당뇨병을 유발하는 일도 모두 과유불급이다.

Rand Corp.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 1인당 연간 설탕소모량은 150파운드이고, 화려한 식탁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면, 미국성인 모두가 평균체중 300 파운드의 뚱보가 된다는 통계다. 식탁음식의 절반이 쓰레기차에 옮겨지는 현시점에서도 미국성인의 64%가 체중과다고, 비만인구는 3명에 1 명(31%)이며, 이것이 미국의 으뜸가는 질환과 사망으로 이어진다. 21세기 미국보건을 위협하는 과유불급 결과는 이렇듯 가공스럽다.

풍성한 음식문화가 빚어낸 비만은 현재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한국 등 선진국에 전염병처럼 퍼져가고 있다.

소송 과다사회인 미국에서 '치즈버거법안'으로 비만에 대한 식품산업계의 책임을 덜어주고 있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은 비만문제가 미국처럼 심각하지 않은데도 패스트푸드에 대한 세금 즉 '비만세금'을 고려중이라는 소식이다. 제네바의 WHO본부는 패스트푸드 등 비건강음식에 대해 비만세를 부과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최근 영국의 식품기준청에서는 아동에 대한 광고규제강화법을 제안했다. '지구화는 미국화'시대에 즈음하여, 국민건강에 관한한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즉 과유불급하지 않으려는 유럽적인 지성이 엿보인다.

미국정부는 경제보호를 위하여 의회를 통해 식품소송을 견제하는 한편 정책면에서 비만퇴치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2002년도 CDC는 아동에게 주는 비건강식의 해는 알코올과 마약과 담배의 해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유의하고, 전국아동에게 건강식과 운동장려 홍보비용으로 1억2,500만 달러($125M)를 사용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번 2004년도엔 정부는 비만연구비 4억 달러($400M)와 함께, 4,400만 달러($44M)를 일부지역사회의 운동과 학교건강식 프로그램에 할당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 국민건강식 가이드라인이라 할 '새로운 피라미드음식'을 작성중이다(참조 필자칼럼 62, 63, 64).

이렇듯 백악관을 위시한 공화당 정부는 정책면에서 운동을 장려하고, 건강식을 통한 비만퇴치에 전력을 기울이는 한편 의회를 통해 식품소송과열로 오는 국민경제의 파탄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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