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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오는 형사소송감이 아니다

의료과오는 형사소송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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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2.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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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훈(재미의사/의학칼럼니스트)


소생 위한 '부당한 치료' 살인혐의 "무죄"


한국 S대학병원 의료사고

지난 5월 27일자 의협신문에 난 S대학병원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와 관련'전공의 희생양 삼지 말라'라는 기사를 읽고 안타까웠다.

면허증을 가진 전공의의 의료과오에 대해 무슨 죄명으로 형사소송을 해서 1심에서 금고형처벌을 내렸는지 의심이 갔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4년 4월 1일자 칼럼에서, 잘못된 형사판결 때문에 고생한 미국의 E의사 케이스를 소개한 바 있다. 이 케이스는 신장투석튜브를 통한 급식으로 환자를 사망케 한 큰 과오사건인데 담당 검사는 '과오'만으로는 형사소송이 불가능하므로, 사고 후 의사가 자기과오를 은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병원전원을 지연시켰다는 억지이유를 들어 형사입건했던 것이다.

S병원 사고는 의도적이 아니고 사후 기록조작이나 은폐행위가 전혀 없는 과오라고 볼 때, 과오 자체가 범죄가 된다면 의사치고 교도소 가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위의 E의사 경우는 AMA와 뉴욕의사회 등이 총동원되어 그를 변호했고, 결국 뉴욕주지사의 특별배려가 있었음을 알린다.

전통적으로 의료과오소송은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거나 위독한 환자를 악의적으로 방치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적으로 민사소송에 속한다.

그런데 일부 과격한 검사들이 사망 또는 불구가 된 결과에 치중한 나머지 민사법과 형사법 한계를 혼동하는 경우가 미국에서도 가끔 있다. 최근 들어 의료사고 사망케이스를 범죄행위로 취급하여 해당의사를 형사법으로 제소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시적이나마 실형이 집행된 피해자는 지금까지 오직 E의사 뿐이다.

형사사건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다음 3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1. 위반행위(Infraction)〓교통규칙위반이 흔한 예이고, 대개가 벌금형 처벌이다.

2. 비행(Misdemeanors)〓좀도둑과 사기행위와 음주운행 등이며, 음주운전의 경우 처벌은 그 결과의 경중에 따라 벌금(무사고 일 때) 또는 징역 1년까지(사망자 발생시)다.

3. 중죄(Felony)〓의사의 예를 들어, 환자 강간이나 의도적인 환자 살인행위 등이다.

의도적이 아닌 의료과오는 그 결과의 경중에 관계없이 범죄행위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현재 의사에 대한 민사소송 남발과 보험료 급등이 미국의사들을 괴롭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찍이 AMA는 의료사고에 대한 범죄처벌주의가 의료과오의 은닉을 조장시키며, 결과적으로 AMA가 주창하는 자발적인 사고원인 검정을 통한 사고예방노력에 역행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닥터 Wood 케이스

의료과오에 대한 형사소송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난 다음, 2심에서 형사소송제기의 잘못을 지적하고 원심을 파기한 미국의 닥터 W(Wood) 케이스를 타산지석으로 소개해 본다.

1994년 2월 5일 84세 남자환자 D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M시 연방재향군인병원에 입원했다. 이 환자는'십이지장파열로 인한 복막염'이란 진단을 받고, 담당의사 닥터W의 집도로 성공적인 수술을 받았다. 중환자실에서 계속 치료를 받았으며 수술 8일 후 아침회진에서 심한 폐부종과 혈중 K가 낮아, KCL과 Lasix를 투여했다. 그러나 폐부종이 계속되고 K수치가 여전히 낮아, 닥터 W는 Lasix를 주사한 다음 KCL 40meq를 식염수에 담아 천천히 주사하라는 오더를 내렸다. 이에 대해 간호사는 "병원 규칙과 약전에 따라 KCL 40meq 혈관투여는 적어도 1시간 이상 천천히 주입해야 한다"고 경고했으나, 닥터 W는 응급치료라는 이유로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그가 직접 KCL 식염수 주사를 시작했다. 주사하는 도중 환자의 심장모니터가 심장정지를 알리고 잇따라 D의 호흡이 멈추었다. 닥터 W는 즉시 심장소생법을 몇 번 시도했으나 얼마 후 환자는 사망했다. 닥터 W는 1급(의도적) 및 2급(난폭한 의료행위에 의한) 살인죄 혐의로 입건되고 1심에서 유죄로 판결되어, 징역 5개월에 3년간 집행유예를 언도받았다. 그러나 항소심(2심)에서 고등법원은 "검사가 기소한 살인죄에 대해, 1심법원에서 닥터 W의 무죄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고 판정했다.

1심의 유죄판결을 뒤엎은 2심 논고요약은 다음과 같다.

<1심 재판은 환자 D의 사망과 관련해서 닥터 W가 예비음모를 했거나, 그와 원한관계가 있었거나, 살해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를 살해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환자 D의 종말치료 때 닥터 W의 치료행위가 지극히 난폭했다거나, 환자를 진료하는 태도가 정상을 벗어난 난잡한 태도였다고 추정한 배심원은 아무도 없었다…다만 닥터 W가 약물투약방법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는 검사의 논고는 인정한다. 생명과 심장활동에 불가결한 KCL투약에서 아무리 응급상황이라 할지라도 닥터 W의 급속한 주사가 치명적이었음은 사실이나, 환자를 살려보겠다고 서두른 '부당한 치료'에 대해 의도적이고 예비음모한 살인행위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 그리고 1심에서 D환자에 대한 닥터 W의 소생시도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잘못이다…>.

위와 같이 고등법원은 닥터 W에 대해 의도적인 1급살인과, 환자를 등한시한 2급 살인죄를 모두 부인하고 1심에서의 유죄판결을 파기했던 것이다.


의료사고 범죄적용은 부당

민사재판이 개인의 제소에서 비롯되는 반면, 형사재판을 제기하는 재량권은 전적으로 검찰관이 독점하고 있다. 즉 형사소송은 검찰관이 '사회적 공익' 이라는 입장에서 기소여부를 판단·결정하며, 따라서 소송제기를 '제소' 대신 공적인 '공소(公訴)' 또는 '공소제기'라고 부른다. 그만큼 검사의 권한이 크므로, 과욕한 검사는 결과(환자사망)에 대한 자기 편견에 따라 '이현령비현령'식 억지논리로 제소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최종판결은 재판관(판사)의 양식에 달렸으며 의학교육이나 임상경험이 없는 재판관으로서 더구나 '사적지식의 배제'라는 판결원칙에 따라, 의료소송은 전적으로 3대 기본사항 즉 1. 차트기록내용, 2. EBM 실천여부, 3. 통고된 동의 등에 좌우된다.

위의 닥터 W케이스의 문제점은 2의 EBM이고, 약물투여에 있어 과학적으로 명시된 안전한 방법을 의도적으로 거역한 결과의 비극(환자사망)에 대한 살인죄 적용이었다니 공소사유가 있다고도 하겠다. 만일 잘못된 투약방법이 고의 아닌 실수로 인한 과오였다면 수천만 달러청구의 민사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나, 닥터 W케이스는 의도적인 과실이기 때문에 1심에서 형사소송이 성립된 것이다.

그리고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형사재판 2심에서 원심(1심의 유죄판결)을 파기한 재판관의 지성과 양식을 필자는 높이 평가하고자 한다.

재판관은 2심 판결에서 닥터 W가 말기환자의 소생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사실을 1심에서 묵과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그의 의도적인 투약과오가 살해의사와는 정반대로, 환자를 살려보겠다는 호의적 과욕행위였음을 인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재판은 환자를 해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의료사고를 사회범죄사고와 동일시하려는 일반견해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는 점에서, 의료계를 위해 역사적이라 하겠다.

한국의 S사건이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 되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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