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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의사단체의 자율권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집중취재]의사단체의 자율권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
  • 승인 200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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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윤리성 담보 사회적 공인 과정 거쳐야

현대사회의 전문화와 탈규제 추세와 맞물려 전문가단체의 자율권 확대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와 동시에 사회에서도 전문가단체에 대해 높은 윤리와 책임을 요구하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다. 지난 18일 의협 중앙윤리위원회가 주최한 '의사단체의 자율권에 대한 심포지엄'은 전문가단체의 자율성 확대와 더불어 윤리성과 책임성 강화라는 사회적 요구가 비등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고, 구체적인 대안과 실현방법론을 모색한 의미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지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제기된 의사단체의 자율권에 관한 다양한 논의 가운데 눈여겨봐야할 쟁점에 초점을 맞춰 소개한다. 편집자


■ 자율규제 세계적 추세

우리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민간주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대해 심포지엄 토론자들은 예외 없이 동의했다. 시민단체 토론자로 참석한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김자혜 사무총장은 "작은 정부를 표방하면서 일방적인 규제를 완화하여 민간주도형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여러 영역에서 규제가 풀리면서 자율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협 정효성 법제이사는 일본·독일·스위스·뉴질랜드 등 세계 각국은 '의사회 직업규칙'을 제정, 직업의무나 윤리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의사회가 자체적인 징계 뿐 아니라 정부의 행정법률상의 효력까지 위임받아 자율적으로 행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 이사는 "정부에 의한 규제에서 민간위임에 의한 자율규제가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는 정부로 하여금 전문가단체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처분 등 제반에 투입되는 업무를 경감시켜 정책결정 등 본래의 업무에 충실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보건향상과 국가의 보건정책 수립에 이바지 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의료계 또한 사명감을 가지고 스스로의 자정노력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국민과의 신뢰회복에 더욱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이사는 "변호사협회는 자율규제시스템 운영 경험을 축적ㆍ강화하면서 법무부의 힘을 받고 있는 반면 의협의 경우 자율징계권의 실질적인 내용이 형식과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고, 복지부로부터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강민규 서기관(보건의료정책과)은 "의사단체에 대한 규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있을 뿐 아니라 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정부도 중장기적으로 의사단체의 자율권을 신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서기관은 "의사단체의 자율권은 국민의 이익과 공익에 반하지 않으면서 전문성과 윤리성을 향상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며 "자율징계권을 한꺼번에 이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강 서기관은 우선 의협 산하에 구성된 의료광고심의특별위원회, 의사보수교육 강화 방안, 신의료기술의 범위·안전성 평가 등 실현가능한 부분부터 정부와 의사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의사의 품위 손상 행위의 경우 무엇이 품위를 손상한 행위인지, 품위 손상 행위에 따른 제제방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의협이 자율적 판단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법적인 시각과 접근

이날 '의사협회의 자율권-반성적 법의 모델에 따른 의협의 자율권에 대한 구상' 주제발표를 맡은 이상돈 교수(고려대 법대)는 국가주의는 의료영역에서 시장의 실패를 경계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사회보장적 기획의 조정센터로서 행정관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의료법은 국가주의, 정부주의(비시장주의), 윤리주의, 평등주의, 공화주의를 관철하는 도구로 자리매김된다고 이 교수는 꼬집었다. 그 결과 의료영역에서 과잉규제를 초래하고, 의료시장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약화시키며, 의료인을 공공선의 경직된 윤리적 틀 속에 감금시키고 있다고 혹평했다. 이 교수는 국가주의는 의료인의 직업적 인격을 침해하고, 관제된 규격의료의 현실을 초래하여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가져온다고 비판했다.

반면 의협의 자유주의적 의료규범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경계의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이 교수는 자유주의는 의료영역에서 과소규제를 초래하여 자칫 과도한 불평등 속에서 사회적 분열을 가져오기 쉬우며, 의료인의 직업윤리마저 경제적 이익의 한 단위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의료영역의 규율을 국가와 법에 전부 맡기거나 의사 사회와 법외의 규범(윤리·사회규범·도덕)에 전부 맡기는 법정책을 피해야 한다며, 의협의 자율권은 국가주의와 자유주의의 이율배반적 대립을 지양하는 법제화 모델 위에서만 제대로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제화 모델에 대해 이 교수는 의료영역의 규율은 1차적으로 의료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의 상호 이해지향적인 행위들 사이의 '대화적 방식'으로 자기규율을 형성하고, 국가와 법은 이러한 자기규율이 권력남용이나 이해관계 타협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외곽을 관리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 자율권 확보 방안

이상돈 교수는 현행 의료법상 의사단체의 구성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을 뿐 아니라 가입까지 강제되어 있으면서도 자치권한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의사단체의 구성이 정부정책의 집행촉매제가 아니라 의료사회의 자기규율을 실현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의협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협의 자율권은 의료영역의 자율화를 촉진하는 기반이 되고, 의료영역의 자율화는 의료사회와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심각한 분열과 대립을 지양시키는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의협의 자율권은 국가의 의료영역 관리비용을 현저하게 축소시키고, 국가의 규율역량을 넘어선 의료문제의 복잡성을 의료의 논리에 적절하게 장악하는데 불가피한 규율기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특히 법적 합리성과 의료적 합리성 사이의 균열을 메우고, 과잉규제와 탈규제 사이에서 반성적으로 움직이는 법체계의 구축을 위한 기반이 된다며 의협의 자율권에 무게를 실었다.

'자율권의 헌법적 근거와 자율권 침해에 대한 구제방법'에 대해 이은희 변호사(법률사무소 민)는 "결사의 자유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다수인이 자발적으로 계속적인 단체를 조직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며 국가로부터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율권이 인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변호사는 "결사의 자율권 보장은 '결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해당한다"며 "의협과 같은 전문가단체의 내부적 자율권은 당연히 헌법적으로 보장된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특히 "의협의 자율권이 과도하게 침해되고 있다면 이는 헌법 위반"이라며 "현재의 의료법은 자율권 보장에 있어 충분치 못한 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 해석상 자율권 보장이 가능한 경우라면 의협의 회칙 제정 혹은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자율권 관련 법규가 불충분하여 자율권을 침해하고 있거나 국가의 입법부작위가 위헌적이라면 헌법소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법 개정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효성 법제이사는 실질적인 자율권의 내용이나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의협 내부적으로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자율규제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정부당국에 대해서는 행정력의 부족으로 인한 규제의 형식화와 저효율성을 피하기 위해 중앙회의 자율징계권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일보 김철중 의학전문기자는 법적인 자율권 확보를 위한 노력과 별도로 동료심사를 비롯한 질적인 관리에도 치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 기자는 가능한 한 정보를 시민사회와 공유함으로써 투명성을 유지해야 궁극적으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토론자들은 의사단체가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의사단체 스스로 전문성과 윤리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데 무게를 실었다. 아울러 자율성 확보를 위해 국민적인 동의와 사회적인 합의과정은 물론 법적인 대응방법도 강구하는 등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참석자들은 국민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에서 의사단체가 자율권을 위임받을 수 있도록 긴밀한 의·정 협의를 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현실적인 접근 아니냐는 시각을 나타냈다. 아울러 의협 스스로 자체적인 기준을 정립, 실천해 나가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종욱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장은 주제발표에 앞서 "자율권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부 규제의 민간위임을 위해서는 스스로 능력을 축적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언급, 의협 자율권 확보를 위한 중앙윤리위 차원의 행보가 빨라질 수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송성철기자 songster@km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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