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흔한 위인전을 보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금도 좀 인생이 건조하다고 느낀다. 깊은 감동이나 희로애락의 감정의 변화가 별로 없다. 항상 일정 수준의 감정상태를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어려서부터 책 보다는 공부하는 게 더 좋았고- 좋게 얘기해서- 지금은 인터넷으로 많은 의학저널을 보는 게 더 익숙해져 있다. 집에 읽고 싶은 저널을 카피해가서 저녁식사후 TV 보면서 읽는 때가 많다. 4살짜리 딸애가 "아빠 공부하지 말고 은지랑 놀아줘" 하는 얘길 자주 한다.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책 소개를 제안받고 할인매장 서점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 의 '해변의 카프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가 '상실의 시대'란 책을 읽으면서 설명할 수 없는 감동 - 정확히 표현하면 감정의 동요 - 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자살로 결론이 났던 것 같기도 하고… 하루키가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작품이므로 소개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평범하게 성장해서 지금의 위치에 있는 나로서는 15세 소년이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가출을 통해 겪게 되는 여러 사건과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소개가 맘에 들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 저주를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된 카프카는 15세 자신의 생일에 가출을 하게 된다. 생각할 수 있는 아주 먼 지방으로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를 범하게 된다'는 저주를 갖고 태어난 카프카는 자신의 운명에서 탈출하고자 방황하게 된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어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의식과 무의식, 현실세계와 환상의 세계 등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의 여러 경계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 카프카는 방황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모르겠어"라는 말로 인생의 난해함을 말하고 끝을 맺는다.
홀수 장(chapter)엔 카프카란 소년의 행적을 그리고 짝수장엔 나카타란 노인의 행적을 그리고 있다. 한장 한장 읽어갈수록 등장인물간에 서로 교묘히 연관되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데 대단한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중간중간 나오는 신화나 소설가, 음악가 등이 등장하는 건 나같이 문화적 소양이 짧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난 지금 내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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