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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9 21:53 (금)
의사의 '전원의무'

의사의 '전원의무'

  •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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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세 가지 의무'
"첫째 설명의무, 둘째 주의의무, 셋째 전원의무"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의협신문
박형욱 단국의대 교수(인문사회의학교실)ⓒ의협신문

자신이 이런 환자의 가족이라고 생각해 보자. 환자는 길을 가다 자전거에 부딪쳐 넘어졌다. 환자는 머리 부위 손상으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병원은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었고 일반외과 전문의 A가 혼자 진료하고 있었다. 

머리 손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일반외과 전문의가 아닌 신경외과 전문의의 전문 분야다. 하지만 외과 전문의 A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진료했다.

환자는 뒷 머리 부분에 외상이 있어 뇌부종 및 뇌출혈이 의심됐고 일반외과 전문의 A는 동공반사를 검사하고 머리 부위 방사선촬영을 했으나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일반외과 전문의 A는 환자를 입원시켰다. 그런데 다음날 환자가 뇌실질내출혈로 사망했다. 조사해보니 일반외과 전문의 A는 방사선 사진에서 우측 두부의 약 15센티미터 가량의 선상골절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환자의 가족은 일반외과 전문의 A가 비록 과실이 있었지만 환자를 다른 곳에 보내지 않고 열심히 진료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까? 아니면 외과 전문의 A가 자신의 전문 분야도 아니면서 환자를 붙잡고 진료해서 환자를 죽였다며 소송을 제기할까? 

이런 사건에서 환자의 가족은 일반외과 전문의 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의사의 과실을 인정했다(대법원 1989.7.11.선고 88다카26246 판결). 

"뇌를 손상한 환자는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의뢰하여 치료하는 것이 바람직한데(뇌의 손상이 중할수록 위 전문의의 치료를 받는 것이 타당함) 이 건의 경우 일반외과 전문의인 피고가 방사선사진을 정확히 판독해 최선의 응급조치를 취한 후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환자는 사망하지 않거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을 약간 변형해 보자. 119구급대에서 병원으로 연락이 왔다. 머리 손상으로 개두술이 필요한 환자를 그 병원으로 이송 중이라는 것이다. 병원에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었는데 마침 중환자실 병상이 꽉 차 있었다. 이런 환자는 개두술 후 중환자실에서 계속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였다.

하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경외과 전문의는 환자를 받아 수술했고, 중환자실은 없어 수술 후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일반 병실로 갔다. 그러다가 환자는 사망했다. 

환자의 가족은 신경외과 전문의가 환자를 다른 병원에 보내지 않고 열심히 진료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할까? 아니면 중환자실도 없는데 환자를 받아 수술해 결국 환자가 죽었다고 소송을 제기할까?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는 크게 세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설명의무, 둘째 주의의무, 셋째 전원의무. 

의사가 감당 못할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진료한 후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의사의 전원의무다. 전원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재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원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의사가 전원의무를 위반해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형사책임도 문제될 수 있다. 

3월 19일 대구에서 병원을 전전하던 환자가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언론에 따르면 119구급대가 환자를 싣고 병원을 수소문했으나 전문의가 없거나 의료진이 수술을 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언론보도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는 정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다만, 병원은 수용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환자를 받아 수술하고 진료해야 한다면 전원의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요구하고 언론이 원한다면 이런 법을 만들자. 병원은 무조건 환자를 받아 진료할 의무가 있다. 대신 병원에 전원의무라는 것은 요구할 수 없다.

설령 해당 전문의가 없어 적정 진료를 하지 못했어도, 중환자실이 없어 적정 진료를 하지 못했어도 환자를 받아 진료했다면 병원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법적 의무를 부과할 때 일관성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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