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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4:11 (금)
프랑스 '의료폭력' 대처
프랑스 '의료폭력' 대처
  •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 (전 의료정책연구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3.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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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료폭력감독원, 자발적 보고 통해 의료폭력 현황 파악·연례보고서 발간
형사고발·진술조서 작성·법적 조치 통해 의료폭력 개선…사회병리 치료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전 의료정책연구소장)ⓒ의협신문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전 의료정책연구소장)ⓒ의협신문

의료현장에서 보여주는 폭언·폭력과 살인 등 불과 얼마 전까지 의료계를 충격적으로 빠트린 사건도 점차 망각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 등 시급한 현안 처리가 우선인 의사협회가 의료 폭력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대처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의료폭력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의 주요 관심 사안 중의 하나인 국제적인 현상이다. 

영국은 폭력적인 환자는 환자명부에서 제명하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폭력적인 환자는 일반 의료기관의 이용이 제한되고 지정된 의료기관만 이용할 수 있다. 의료계도 폭력대처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 있고 경찰과 협력 그리고 고발과 보고 등 폭력대처를 위한 구체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 프랑스도 의료현장에서 폭력 사태에 대해 국가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

의료인 폭력은 의료현장의 문제가 아닌 의료와 사회복지시설 전체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간주하고 프랑스 보건관리총국(Directorate General for Health Care) 산하에 국가의료폭력감독원(Observatoire National des Violences en Sante; 영어로 National Observatory of Violence in Health)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국가의료폭력감독원(ONVS)의 임무는 민간과 공공 모두를 포함하는 보건의료사회복지 관련 시설의 인적, 물적 그리고 재산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프랑스의 다양한 이해당사조직이 구현한 모든 정책을 조정하고 평가하는 조직이다.

이 기구는 의료폭력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의 목적으로 의료현장의 자발적 보고와 고발을 제도화 한 것이다. 폭력에 대한 예방과 대처 정책이 지속성과 전문성을 갖기 위해 우선 의료폭력의 현황에 대한 정확한 사실 파악과 충분한 지식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ONVS는 2005년부터 모든 사회복지의료시설에서 무례함을 포함하는 사람에 대한 공격, 재산에 대한 피해 등 광의의 폭력에 대한 보고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의료폭력에 대한 연례보고서도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폭력 예방과 대처에 대한 적절한 도구와 모범 사례를 개발하고 전파하며 의료현장에서 이해당사자의 개입과 조정을 촉진하고 있다. 

의료폭력에 대한 본격적인 국가개입은 2005년 8월 12일 프랑스 보건부와 내무부의 국가 의정서 서명을 시작으로, 민간과 공공 병원의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병원과 경찰 사이에 필요한 상호이해와 협력을 강조했다.

뒤이어 2010년 6월 10일 프랑스 법무부가 '건강-안전-정의 협정'의 틀에서 참여한 의정서로 수정·보완됐다. 의정서에는 병원의 의료폭력 담당자를 지정하고 피해자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시설과 폭력에 대한 응급조치에 대한 감측(monotoring), 경보시스탬 구축, 그리고 경찰과 헌병대(지방경찰 역할)의 안전진단을 포함하고 있다. 

2009년부터 보건부에 ONVS 웹페이지를 개설했고 실용적인 문서와 더불어 권장 사항이 포함된 연례보고서를 대중에게 제공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의료폭력을 전산망으로 보고할 수 있도록 전국적으로 설치했고 2023년부터 개원의도 보고를 할 수 있게 확대했다. 이 플랫폼은 최신 IT 도구로 이어져 ONVS가 점점 더 정밀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유형의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구체적 상황 등 의료폭력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조망이 이뤄지고 이어서 이를 근거로 의료폭력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까지 프랑스에서 의료폭력에 대한 보고는 자발성을 원칙으로 하고 폭력 행위의 수준과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4단계로 구분했다. 지면상 간략히 축약해 소개하자면 폭력 1단계는 모욕·폭언·차별적 또는 성적 발언·불법 약물(마약)이나 병원 내 반입이 금지된 술과 약물의 소비나 밀매·구내 점거·민폐·오염 등이다.

폭력 2단계는 개인의 재산과 신체적 위협·살해 위협·무기 소지이고, 폭력 3단계는 신체적 손상·교살·밀치기·침 뱉기·구타와 같은 고의적 폭력과 흉기가 될 수 있는 화기·날붙이 무기·메스·면도칼 등에 의한 위협과 성폭행이 포함된다.

폭력 4단계는 총기류, 예리한 무기류나 무기처럼 사용될 수 있는 메스·면도칼·식기류·필기구·램프, 차량 등에 의한 강간과 살인·절단이나 영구 장애의 손상 그리고 납치와 격리를 초래한 모든 고의적 폭력 행위를 포함한다. 

재산상의 피해도 등급화해 1등급은 무단 침입·경미한 파손·주차 차량 파손(방화 차량 제외)·꼬리표·낙서 등이고 2등급은 절도 피해다. 3등급은 IT나 고가 의료장비 등의 파손이나 건물과 차량의 방화와 무장 강도에 의한 피해로 분류한다.

사람과 재산에 대한 피해 분류로 지역적이나 국가적 단위의 의료폭력에 대한 입체적인 현황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체계적이고 제도적이며 조직적인 활동을 바탕으로 의료폭력에 대한 대처 역시 보다 과학적이고 전문성을 갖출 것으로 판단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ONVS 2020년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총 1574건의 형사 고발과 149건의 진술조서 작성이 이뤄졌고 그중 23%는 법적조치가 뒤따랐다고 한다. 그중 461건의 고발과 37건의 진술조서 작성은 의료기관이 직접 진행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조치는 우리나라 의료계도 법학자들과 협업으로 세밀하고 구체적인 후속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프랑스의 의료폭력 대처를 바라보며 우리나라와 이 분야에 대한 국가적 행정역량에 대한 차이를 느끼게 된다.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를 할 수 있겠는가?'라는 환자단체의 언급을 보면 의사는 폭력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하는 역량까지 갖춰야 하는 서글픈 의료문화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정부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면 요란한 전수조사와 무관용 원칙의 형사처벌을 강화한다는 상투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실제로 의료폭력의 개선 효과는 의문이다. 프랑스의 의료폭력에 대한 대처는 대한의사협회나 정부가 우리나라의 만성적 사회 병리를 치료하기 위한 좋은 사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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