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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과실 '형사 기소' 연간 영국 1 vs 한국 750 이유는?
의료과실 '형사 기소' 연간 영국 1 vs 한국 750 이유는?
  • 김미경 기자 95923kim@doctorsnews.co.kr
  • 승인 2023.02.0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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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미 전 재영한인의사협회장 "'정직한 실수' 처벌 아닌 재발 방지 교육 중점"
환자에게 안전한 의료 제공하려면 실수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육·공유 시스템 필요
생명 살리려는 의사 기소→한국 젊은 의사 '필수의료 기피' 현상 '발로 하는 투표'
의료윤리연구회가 2월 6일 의협회관에서 '영국에서 의료과실 다루기'를 주제로 월례모임을 가졌다. (사진 오른쪽부터) 박현미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문지호 의료윤리연구회장,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사진=김미경 기자] ⓒ의협신문
의료윤리연구회가 2월 6일 의협회관에서 '영국에서 의료과실 다루기'를 주제로 월례모임을 가졌다. [사진=송성철 기자] ⓒ의협신문

우리나라의 의료과실로 인한 기소(업무상과실치사상죄) 건수는 연평균 750건 이상으로 매일 2명이 기소되는 데 비해, 영국은 한 해에 많아야 1~2건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의료 및 복지 선진국인 영국은 의료분쟁 처리에 어떤 체계를 갖추고 있을까?

의료윤리연구회는 2월 6일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열린 2023년 새해 첫 월례 모임의 주제를 '영국에서 의료과실 다루기'로 선정, 박현미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전 재영한인의사협회장)를 초청했다. 박현미 교수는 오랜 기간 영국에서 의사로 일하고, 현재 한국에서 의학교육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의료에 대한 관점과 의견을 활발히 공유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해외사례로 많이 드는 편이지만, 나라의 크기와 GDP 등을 고려했을 때 영국이 적절한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운을 뗀 박 교수는 "영국은 세금의 절반을 보건복지분야에 할당하고, 그 중 4조원을 의료분쟁을 위한 비용으로 떼어두고 있다"며 영국의 의료체계를 설명했다. 

특히 "영국은 의료과실이 발생하면 의료인을 처벌하기 보다는 의료행위 과정을 기록하고 교육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개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게 더 많은 환자를 위해 좋은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협신문
박현미 교수가 영국의 의료분쟁 처리 체계와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미경 기자] ⓒ의협신문

박 교수는 "저 역시도 의약품 용량을 '7.5mg'이 아닌 '75mg'으로 잘못 기재해 처방한 적이 있다. 실수를 인지한 순간 바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위원회에 출석해 상세히 실수가 일어난 과정을 설명한 뒤 어떻게 이런 일을 줄일 수 있을지 토론하는 데 집중했다"며 경험담을 소개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의료인도 하나의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시스템을 개선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영국 의사의 칼럼을 소개하며 "의사에 대한 형사 기소는 명백한 위반 증거가 있을 때는 옳지만, 한 인간으로서 실수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기소를 통해 경력이 망가진 의사가 늘어나고 의사 개인을 비방하는 것은, 더 안전한 의료시스템으로 이어지지 않을뿐더러 환자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며 "기소에 대한 위협이나 두려움으로 사건 은폐를 조장하기보다는, 환자에게 안전하지 않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를 토대로 영국 의사의 최우선 가치가 '정직'으로 확립될 수 있었다는 점도 짚었다. 의료기관에 속한 모든 의료인들은 환자와 관련된 모든 의료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법률로 명시하고 있으며,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법원이 올바른 결과에 도달해 체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영국에서는 '정직한 실수'와 '살인'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며 "법정에서 정직한 실수를 살인으로 간주하자, 의사 면허를 관리하는 영국의학협회(General Medical Council, GMC) 앞에서 의사들이 자신의 면허를 찢으며 '저런 실수는 나도 할 수 있으니 내 면허도 가져가라'며 거세게 시위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영국의 의료과실 건수는 1년에 1만 5000건에 달하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형사 기소해 판결을 받은 사례는 2013~2018년 7건(유죄 4건, 무죄 3건, 조사 및 기소 진행 중 16건 제외)으로 1년에 한두 건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료기관 안팎에서 비윤리 행위를 한 의사에 대한 면허 취소는 매년 150건에 달한다. 형벌과는 별도로 의료인 면허 관리를 통해 '정직'이라는 의료윤리 가치를 지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의협신문
이날 월례모임에 참가한 의료윤리연구회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주영숙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 위원, 김충기 의협 정책이사,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사진=김미경 기자] ⓒ의협신문

박 교수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하고 형사 처벌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 의료체계는 예방과 교육,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민주주의 의료제도와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 후 열린 토론에는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주영숙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김충기 의협 정책이사 등 오프라인으로 참석한 회원들과 온라인 ZOOM을 통해 참석한 회원들이 함께 의견을 나눴다. 

토론에서는 "한국의 의료분쟁 처리는 개선이 아닌 응보적 관점에서 이뤄진다. 정말 잘못한 의사는 잡아가지 않고 정작 사람을 살리려 애쓰는 의사들을 계속 잡아가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또 "한국에서는 의료과실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정도와 기준에 대한 합의가 이제껏 없었다"는 의견과 더불어 추후 한국 의료가 나아갈 방향에 관한 고민이 이어졌다.

박 교수도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과 관련해 "지금 한국에서 '발로 하는 투표(vote by feet)'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젊은 의사들이 열악한 현실과 의료분쟁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수의료 및 기피과를 떠나는 것이 '발로 하는 투표'라는 것.

의료윤리연구회는 3월 첫째 주 월요일(3월 6일)에 열리는 월례모임에 변호사 출신의 전성훈 의협 법제이사를 초청, 한국에서 일어나는 의료분쟁은 어떻게 다뤄지는지 사례를 공유하고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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