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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18 21:27 (목)
"응급실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부분을 말하고 싶었죠"

"응급실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부분을 말하고 싶었죠"

  • 권주원 의협신문 명예기자(가톨릭관동대학교 예과2학년) kjoowon15@naver.com
  • 승인 2023.0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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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응급실'의 응급의학의사 곽경훈
인류학자, 종군기자?→정신과?→응급의학과 의사, 그리고 작가

ⓒ의협신문
ⓒ의협신문

 

급성 심근 경색, 급성 뇌혈관 질환 등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 고열로 우는 갓난아이, 만취해서 아픈 줄도 모르고 소란을 피우는 취객.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응급실 환경은 흡사 전쟁터 같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응급 환자들의 성별, 나이, 질환의 종류 등에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응급상황에 신속 정확하게 대처해야 한다. 미디어를 통해 어렴풋이 이런 응급실을 상상하던 차에 응급의학과 의사이면서 총 7편의 책을 다작한 곽경훈 선생님을 한 메디컬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됐다. 그의 글을 읽으며 의학도로서 응급의학을 전공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나의 미래가 될수도 있기에 그에 대한 궁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갔다. 급기야 분당 제생병원 응급실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여러 번 전화가 돌려진 끝에 가까스로 연결이 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마주했다.

ⓒ의협신문
"의사로서 책을 쓴다기 보다는 아마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글을 썼을 것 같다"는 곽경훈은 응급실이란 공간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부분, 어두운 부분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의협신문

의대생인 기자는 먼저 곽경훈 선생이 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가장 궁금했다. 26개나 되는 많은 과 중 응급의학을 왜 선택했는지, 응급의학의 어떤 점에 매료됐는지 질문를 쏟아냈다. 그는 처음부터 의사를 목표로 했을까? 

"저는 애초에 의과대학을 별로 가고 싶지 않았고 인류학자, 종군기자, 연극배우처럼 관찰자 겸 이야기꾼으로 일 할 수 있는 직업을 희망했어요. 그러나 이런 길을 택해서 먹고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의과대학을 갈 거야' 했거든요.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의대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요. 그러니 성적이 좋을 리가 없었죠. 의과대학을 마치고도 바로 인턴 수련 대신 군 복무를 선택했습니다.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면서도 영국에 가서 인류학을 전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일단 제가 그렇게 똑똑한 편도 아니고 우리 집이 저를 후원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현실적으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어요. 그렇게 현실과 타협한 저는 모교병원에서 정신과를 전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그런 문과적 소양이 있는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정신과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결국 정신과가 아니라 응급의학을 택했다. 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까? 

"정신과를 지원했는데 정신과가 당시에도 인기 과였기 때문에 티오 2명에 5명이 지원했어요. 제가 그 중에 독보적으로 꼴찌였어요. 그래서 지원하지 않을까 고민중이었는데 당시 정신과에서는 면접 성적과 상관없이 교수님의 입김이 셌어요. 정신과 레지던트 동생 말로도 교수님이 되게 특이한 사람이고, 또 특이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끝까지 한번 해보라는 거예요. 그 말에 혹했는데 생각해 보면 제 인생의 결정을 어떤 특정 인물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걸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정신과를 떨어지면 또 재수를 해야 되고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 정신과를 뺐어요. "

그렇게 선택한 응급의학과에서 의사로서의 삶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응급의학과가 편해 보여서 지원했어요. 사실 응급의학과는 일을 하려고 마음 먹으면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 명목상의 일만 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처음 수련 받은 병원의 응급의학과는 명목상의 일만 하는 데라서 편했지만 대신에 사람들이 다 무시하는 과였어요. 제가 잘 몰랐던 게 이제 제가 제 책 제목으로도 썼지만(<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의 부제 '쪽팔리는 게 죽기보다 싫은 응급실 레지던트'를 말한다) 제가 무시당하면 못 참는 성격이었던 거예요. 편한 게 좋아서 그냥 했는데 무시당하는 게 너무 싫어서 오히려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제 사고도 많이 치고 파란만장한 일들을 많이 일으켰죠."

응급의학과는 과간 경계를 넘는 의사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도 이런 점을 응급의학의 장점으로 꼽을지 궁금했다. 

"현대로 올수록 점점 과의 개수가 늘고, 하나의 과 안에서도 많은 분과가 발생해요. 그렇지만 의사들이 환자를 분류하고 과를 세부적으로 나눈다고 해서 질환도 세부적으로 나뉘지 않아요. 단 하나의 과에만 해당되는 환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예요. 예를 들어서 뇌경색이 심한 환자나 뇌출혈이 심한 환자는 대구반사라고 해서 음식물을 삼키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흡인성 폐렴에 잘 걸려요. 또 척추 손상을 입어 누워서 지내거나 보행이 잘 안 되는 분들은 요로 감염이 잘 생겨요. 그러니까 당연히 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거죠. 그래서 과잉 세분화된 현대의학의 단점을 뛰어넘어 환자의 질환 자체를 폭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어요. "

환자의 질환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과정에서 응급의학과와 다른 과는 어떤 점이 다른 것일까? 

"심장내과 의사는 보통 자기가 어떤 환자를 볼 지 알잖아요. 심장내과 외래에서 뜬금없이 팔이 부러진 사람이나 뇌경색 환자가 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타 과들은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는 일상이 되지만 응급실에는 모든 환자가 다 와요. 예를 들어 혈압이 낮은 환자는 심장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과 문제일 수도, 산부인과 문제일 수도 있어요. 의식이 없는 환자도 마찬가지예요. 의식이 없는 환자가 꼭 뇌의 문제 때문에 의식이 없진 않아요. 저나트륨 혈증도 있을 것이고, 저혈당으로 쇼크에 빠져서 오거나 심한 부정맥으로 인한 극단적인 선맥이 와서 의식이 처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응급실의 셜록홈즈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

타 과와 다르게 응급의학과는 외래를 보지 않아 의사의 추리의 결말을 알 수 없지 않을까?  응급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예후를 알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응급실에서 잘 치료된 사람의 예후는 잘 모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심근경색 환자가 치료가 잘 돼서 후유증 없이 사는 분들의 예후는 모를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응급실을 다신 오지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치료를 해서 그 순간의 위기는 넘겼지만 완전히 회복을 못하신 분들의 예후는 잘 알 수 있어요. 똑같이 심근경색을 심혈관 조영술을 해서 생명을 구했지만 심장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계속 폐부종이 생기는 분들은 결국에 응급실로 다시 오기 마련이거든요. 또, 인슐린 주사를 맞는 젊은 당뇨병 환자, 흔히 얘기하는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 환자의 예후 중 인슐린을 잘 맞아서 조절이 잘 된 분들의 예후는 알 수 없지만, 그런 분들이 계속 조절이 잘 안 되고 어떤 다른 문제가 생겨서 저혈당에 빠진다든지 아니면 당뇨병성 케톤산증 같은 심각한 급성 부작용이 발생한다 하면 그 예후를 알 수 있지요. "

ⓒ의협신문
곽경훈의 대표작들. 모두 7권의 책을 출판한 그는 "이제까지의 메디컬에세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충분히 담았다"며 올해는 다크 판타지소설로 독자들과 조우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신문

의사 진로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에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곽경훈과의 대화가 길어졌다. 기자의 응급의학에 대한 호기심도 그의 글을 읽고 발동된 터. 작가로서의 곽경훈에 대한 질의를 이어갔다. 의사라는 직분도 벅찰텐데 어떤 이유로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나? 

"의사로서라기 보다는 제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장래 희망이 작가이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겁니다. 그래서 책을 쓰는 건 굳이 의사로서 책을 쓴다기 보다는 아마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글을 썼을 것 같아요. "

2020년 3월 출간해 그를 세상에 알린 대표작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원더박스 발행)는 레지던트 시절의 경험을 담았다. 수직적 계급 논리가 명확한 그 당시 의사 사회에서 괴물과도 같은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했던 그의 처절한 투쟁을 엿볼 수 있다. <응급실의 소크라테스>에서는 전문의가 되고 난 뒤에 좀 더 차분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면 사회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그러나 사회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존재보다 아래쪽을 차지하는 존재를 마주할 가능성이 크지요." 이 책에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짧은 기록을 담아냈다. 

가장 최근에 쓴 책은 <날마나 응급실>. "날마다 응급실은 문자 그대로 응급실은 어떤 곳인가, 그리고 거기에 어떤 사람이 사는지 등 응급실에 대한 잡학사전과 같은 느낌으로 쓴 것이다."

그의 메디컬 에세이는 시중의 다른 책들과 차별점이 뚜렷하다. 책 속에는 감동적인 휴머니즘으로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의대 진학 열기에 편승해 의대 진학 공부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응급실의 사실적인 모습이 있는 그대로 담겨있다.

그는 "응급실이란 공간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나 우리 사회의 소외 당한 부분에 대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응급의학과가 역사가 짧은 신생과에 속한 탓에 아직도 응급의학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병원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비틀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쌓이고 현실에 대한 자기 반성을 풀어내다 보니 모두 7권이 출판됐다. 올해 그의 글은 기존 작품과는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크 판타지 소설을 통해 독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이미 메디컬 에세이는 여럿 출간했고, 그 책 속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충분히 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상상의 세계의 이야기꾼으로 돌아올 곽경훈의 신작을 기대하며 그의 끊임없는 작품 활동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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