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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신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3.01.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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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스클루트 지음/김정한·김정부 옮김/꿈꿀자유 펴냄/2만 5000원

평범한 젊은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죽었다. 의사들은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그녀의 세포를 가져갔다.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헨리에타 랙스. 흑인 여성이었던 그는 몰랐지만 그의 자궁경부 조직에서 채취해 배양한 세포는 이후 의학의 역사를 바꿨다.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딴 헬라(HeLa) 세포는 무한 증식해 불멸의 존재가 됐으며, 의학 혁명을 일으키고 수백억 달러 규모의 산업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수십 년간 그의 가족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살았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이자 논픽션 작가 리베카 스클루트가 쓴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 국내에 출간됐다.

의대 교육과정에서부터 접하게 되는 헬라 세포이지만, 정작 그 세포의 주인과 얽힌 의학적 이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과학자들은 수십 년째 인간 세포 배양을 시도했지만, 세포들은 매번 얼마 못가 다 죽었다. 헨티에타의 세포는 달랐다.

그가 사망하기 몇달 전 자궁경부에서 떼어 낸 세포는 24시간마다 한 세대를 재생했으며, 시간이 지나도 증식을 멈추지 않았다. 처음으로 실험실에서 배양된 불멸의 인간 세포였다. 

헨리에타의 세포는 그녀의 몸 속에서 살았던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몸 밖에서 살아 있다. 지금도 세계의 세포 배양 실험실 냉동고 안에는 수백만∼수십억개의 헬라 세포가 담긴 작은 갈색병이 있다. 

학자들은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헬리에타 랙스의 세포가 살아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일부에서는 지금까지 배양된 헬라 세포를 무게로 따지면 5000만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지금껏 자라 난 헬라 세포를 한 줄로 세우면 10만 7000㎞(지구 세 바퀴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에두른다. 

이 책 인쇄에 들어간 2009년까지 6만건 이상의 헬라 세포 연구논문이 발표됐으며, 매달 300건 이상의 관련 새로운 논문이 공개됐다.

그동안 헨리에타의 세포는 암을 유발하거나 억제하는 유전자 연구에 긴요하게 쓰였다. 헤르페스, 백혈병, 인플루엔자, 혈우병, 파킨슨병 등의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됐고, 유당 흡수, 성매개 감염병, 맹장염, 인간 수명, 모기의 짝짓기, 심지어 하수구 작업이 세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연구하는 데도 사용됐다. 

과학자들은 헬라 세포의 염색체와 단백질을 상세하게 연구해 특성을 속속들이 밝혔다. 실험실에서는 실험용 쥐에 버금가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그러나 이와 함께 헨리에타 랙스와 헬라 세포의 역사는 과학, 연구 윤리, 인종, 계급 등과 관련 주요 논쟁을 일으켰다. 

이 책은 헨리에타 랙스, 헬라 세포에 대한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랙스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들이 헬라 세포의 존재를 받아들이기까지 평생에 걸쳐 펼쳤던 지난한 싸움과 그 세포를 가능하게 했던 과학 이야기다. 

이 책은 2010년 초판 출간 이후 7년 넘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로에 뽑혔으며, <가디언> '21세기 최고의 책 100', <아마존> '평생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100권의 책' 등에 선정됐다. 

이 책의 번역은 김정한 한림의대 교수(강남성심병원 항암센터장)와 김정부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두 형제가 맡았다.

김정한 교수는 "2010년 4월 미국 시애틀의 프레드허치슨 암연구센터에서 이 책을 쓴 리베카 스클루트의 '의학연구 윤리'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한 시간 가량의 강연은 충격과 감동이었다"라며 "수많은 현대의학의 기적을 이끈 한 세포주의 전기를 통해 의학 연구사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고 있었다. 이 책이 한국에서도 의학연구윤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말로 옮겨야겠다는 나만의 사명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김정부 교수는 "당시 언론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이 책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상태에서 형으로부터 번역 제의를 받았다"라며 "본의 아니게 생명공학 발전에 얽혀든 한 흑인 여성과 그 가족의 처절한 이야기를 통해, 알레시 드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1835) 들머리에서 미국을 떠받치고 있다고 갈파한 평등과 인권을 향한 인간의 지난한 투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생명과학과 인권의 경계에 걸치는 정책토론에 의미 있는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070-8226-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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