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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의료가 의료정책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일차의료가 의료정책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 신동욱 성균관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암치유센터)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3.01.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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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듀크대학교 가정의학과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부서장께서, 2012년 미국 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에서 발간한 <일차의료와 공중보건: 인구집단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통합의 탐색(Primary care and Public Health: exploring integration to improve population health)>라는 보고서를 소개해 주셨다. 

의학의 주요한 관심은 병을 가진 각 개인을 치료하는 것이고, 공중보건의 주요한 관심은 인구집단에서의 건강 수준을 올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측면으로 발전해왔고 둘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데, 현대와 같이 만성질환이 주된 건강문제가 되는 시대에서는 일차의료가 공중 보건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점점 커지고 둘이 기능적으로 통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가장 중요한 공중보건학적인 건강 문제인 암이나 심뇌혈관 질환의 경우 흡연·비만·음주·신체활동 부족 등에 관한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점차 그 부담이 증가되고 있는 치매라든가 만성 콩팥질환 등의 문제들은 조기 발견뿐 아니라,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우울증과 자살과 같은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지만, 사실 많은 고위험군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차의료기관을 찾아간다. 즉, 생활습관과 만성질환의 관리, 질병의 조기 발견 등을 통해 더 심각한 질병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 일차의료의 역할인데, 이는 공중보건의 주요한 목적과 일치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차의료의 정의나 개념조차 모호하다. 많은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을 일차의료라고 칭하고 있지만, 이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일차의료의 개념인 지속성·포괄성·환자중심성 등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잘못된 개념이다. 외국의 일차의료 의사는 미국 계통에서 의대 졸업 후 3년간 수련을 받은 일반내과·일반소아과·가정의학과를 이야기하거나, 영국 계통에서 통상 2년의 공통 수련(foundation training)과 3년의 일차의료 수련을 받은 일반진료의(general practitioner, GP)를 의미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일차의료 수련을 받지 않아도 개업에 문제가 없어 수련을 받지 않은 사람을 GP라고 흔히 칭한다 (개인적으로는 임상수련 없는 개업은 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특정 분야의 전문의가 갖춰야 할 역량과, 지역사회의 일차진료의로서 갖춰야 할 역량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특정분야의 전문지식만 갖춘 의사가 일차진료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역량의 불합치(mismatch)도 발생한다.

흔히 우리나라의 의료가 매우 전문의 중심적이고 분절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 또한 그러하다. 모든 의료정책이 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암관리사업·심뇌혈관 질환 예방 관리 사업·치매 관리사업·정신건강사업·자살 예방 사업 등 대부분의 주요한 보건사업이 질환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그러다 보니 각 질환에 대한 권역·지역별 센터가 지정되어 이미 질환이 발생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진료 사업을 운영하고, 실제 지역사회 레벨에서는 보건소가 각종 사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실제 보건소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이 형식적인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의원급은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업에서 배제되어 있다시피 하다. 실제로 참여를 시키려고 해도, 그 많은 개별적인 사업에 참여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각 사업은 각각 전산을 구축하고 있다). 방문진료 사업이라든가 장애인 건강 주치의 사업 같은 것은 취지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현재의 일차의료기관 구조상 수행이 매우 어렵다.

심뇌혈관 질환 위험 요인의 조기발견과 이에 대한 개입을 주요 목표로 하는 일반건강검진사업조차도 일차의료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상태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일차의료가 공중 보건적인 기능을 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보니, 결국 공공의료라는 전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용어로 각종 정부 사업이 진행된다. 

쉬운 해법은 없을 것이다. 의사들에게도 일차의료의 개념이 생소한 국가에서 단기간에 쉬운 해결책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고령화되고, 모든 사람이 몇 개씩의 만성질환이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고 있는데, 모든 것이 분절적인 전문진료로 제공되면 비용적인 측면에서 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보건복지부 내에 일차의료를 전담하는 부서를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일차의료 정책국이나 일차의료 정책관의 수준이 되면 좋을 것이다. 당장 어렵다면 일차의료 정책과라도 만들어야 한다. 일차의료와 전문진료는 의료의 큰 두 개의 축인데, 우리나라는 일차의료의 중요성과 비중에 비해 너무나도 정부의 지원과 관심이 미미한 수준이다. 과학적 근거가 부실한 한의학도 한의약정책관이 따로 있고, 두 개의 과가 있다. 일단 조직과 예산이 있으니, 무엇이 되더라도 제도를 만들고 지원책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이다. 

요새 세상에서 대규모 기생충 박멸 사업이나 금연, 절주 캠페인 같은 정부 주도의 사업으로 공중보건의 효과를 보는 것은 어렵다. 누구나 가끔은 아프고, 어느 정도 연령이 되면 모두가 만성질환을 몇 개씩은 가지게 되므로 일차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일차의료가 공중보건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일차의료의 개념을 정립하고, 일차진료를 수행할 의사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제공되는 수련 과정을 만들어야 하고, 일차의료에 적합한 의료공급과 보상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각 질환에 대한 통합적인 예방과 인구집단의 건강증진도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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