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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었다고?... 의학은 '문화'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의학은 '문화'가 아니다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22.12.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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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신문
지난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 A에 대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래픽=윤세호 기자] @의협신문

지난 12월 22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직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A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의료계에서 연일 이 어이없는 판결에 "건국 이래 가장 이상하고 어이없다","기존의 무수한 판결과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다"는 말로 분노와 당혹을 쏟아내고 있지만 말로 형용하기 힘든 판결이다. 결론은 의료계가 우려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대재앙임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의사와 한의사를 구별해 이원화돼 있다. 별도의 면허제도를 마련하고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인의 임무, 면허제도, 의료기관의 개설 등 여러 규정에서 의사와 한의사의 직역을 엄격히 구분하고 서로 면허된 영역을 벗어난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로 규정하고 처벌해 오면서 환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켜왔다.
 
이런 이유로 2010년부터 2년여간 초음파 진단기기를 이용해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촬영하고 진단을 한 한의사 A씨의 행위에 1심과 항소심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의료행위가 한의학의 이론이나 원리의 응용 또는 적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로 본 것이다. 1심과 항소심의 판결이 우리 의료체계에서 지극히 '상식적'이었기에 이를 뒤집은 대법원의 판결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대법원의 판결 요지는 일반적 상식과 개념과 달라도 너무 달랐고 괴리가 컸다. "의료행위 개념은 의료기술 발전과 시대 상황 변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자의 인식과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판결문 대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의학과 한의학은 학문 체계가 상이하고,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는 엄연히 다른 학문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것인데, 마치 의학을 문화 현상인양 시대 상황의 변화라든가 가변적이란 언사를 동원해 그동안 한의계가 주장해왔던 논거를 끌어들인 것이다.

더욱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혈압계나 체온계 등 일상생활 영역에서 널리 이용되는 의료기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 대목은 더 기가 막힌다. "초음파 진단기기는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일반인도 이를 구매·사용함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CT나 MRI에 비해 사용이 간편하고 진료비용도 저렴하다"고 했는데 측정 수치로 신체의 이상 유무를 예측하는 혈압계와 체온계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너무나 단순한 논거다.

초음파는 측정보다 그 이미지를 해석해서 신체의 이상 유무를 알아내는 것이기에 단순 비교는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더 가관인 것은 "의료공학과 과학기술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 모두에게 그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의료법 제27조 1항이 해석돼야 한다"는 대목이다. 초음파가 인체에 미치는 위해는 적을지라도 이번 사건은 2년간 68회의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도 정작 환자의 자궁내막암을 진단하지 못해 환자에게 큰 피해를 준 건임은 왜 고려하지 않은 것인가?

무죄 취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같은 논리 보다는 실상은 '의사의 독점' 현상을 깨겠다는 무리한 진보주의적 또는 자유주의적 인식이 읽힌다. 판결문에서 "현대의 진단용 의료기기는 과학기술을 통해 발명 및 제작된 것으로 그 과학기술의 원리와 성과를 한의사가 아닌 의사만이 독점적으로 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의과의 초음파기기에 대한 독점이 잘못된 것인양 기술했다.

하지만 왜 이런 독점적 권한을 부여했는지에 대한 성찰은 희박해 보인다. 의료법 10조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도 중요하지만 의료법 1조에서 규정한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면" 면허된 것 이외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자칫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판결은 의사와 한의사 간의 갈등으로 끝나지  않은 전망이다. 간호법으로 대치중인 간호계는 보란듯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적극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이 영역 확장에 큰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간협은 "의료법 27조에 따른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규정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의료인간에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가 금지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로 한의사는 물론 치과의사, 조산사,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에 대해 합리적 판단기준이 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선동하고 있다. 

의료계는 연일 성명과 대법원 앞 시위로 경악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이 사건을 다시 다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신중한 검토와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총력을 하겠다는 차분한 대응도 병행하고 있다.  

한의계에선 "한의사에게 채워졌던 현대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가 풀렸다"는 이번 판결의 실상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이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긴 힘들겠지만 건강을 위협할 뿐 아니라 의료비 증가 등 국민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제대로 알려 여론에 기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회 질서를 유지해야 할 대법원이 오히려 사회 혼란을 부추긴 이번 판결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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