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6 21:21 (화)
경찰, 응급의학과 전문의 참고인 조사 했어야 했나?
경찰, 응급의학과 전문의 참고인 조사 했어야 했나?
  • 이경원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desk@doctorsnews.co.kr
  • 승인 2022.12.31 06:0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절도 휴일도 없이 응급환자 생명 구하기 위해 최선
국민 생명 지키는 응급의학 의료진 전문성·노고 존중해야
이경원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의협신문
이경원 교수(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의협신문

아침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정치 원로는 "누가 새벽 1시에 나가려고 그랬겠냐. 그러니 그 선의(善意)는 곡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밤과 새벽, 주말과 휴일, 설날과 추석을 가리지 않고 응급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을 새운다.

그날 깊은 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핼러윈 축제로 많은 이들이 청춘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 응급실로 밀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다가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의 긴급한 재난 출동 지령을 받았다.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DMAT)으로 아비규환의 재난 현장에 출동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응급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뿐이었다.

모든 국민이 알다시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DMAT으로 출동한 해당 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4시간여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시행했다. 긴급 출동하는 DMAT 차량을 자신의 집 근처로 불러 재난 현장으로 간 모 국회의원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해당 병원 DMAT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서울경찰청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이다.

근무 시간도 아니고 당직도 아닌 토요일 밤과 일요일 새벽이었지만 중앙응급의료상황실로 급히 달려가 상황실장으로서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쓴 응급의학과 전문의 여의사는 긴장한 채 떨며 마치 죄인처럼 국회 국정조사 증인석에 서야 했다.

왜 이렇게 재난 현장에서 응급환자 진료에 매진한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경찰은 4시간여 대면 조사를 꼭 해야만 했을까?

서면조사로도 충분한 일이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안에 대하여 응급환자 진료 중에도 몇 번씩 반복해서 걸려오는 경찰의 전화에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어느 국회의원이 일반인은 알 수도 없고 알려 주지도 않는 재난 전용 휴대전화로 자신을 태우고 현장에 가자고 했을 때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심지어 재난 현장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관용차도 차관이 자리를 양보해서 탈 수 있는 국회의원이 아니던가.

응급 환자를 진료하다가 출동 지령을 받고 DMAT 재난 출동에 바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재난 전용 휴대전화로 걸려온 국회의원의 전화에 출동 시간이 지체될 지도 모를 우회 경로 운행을 할 수밖에 없었을 때, 앞으로 이런 정도로 큰 문제가 될 것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긴급한 재난 현장으로 쉴 새 없이 DMAT을 15개 팀이나 출동 지령하며, 병상 여유가 없다는 각 병원으로부터 억지로 긴급 응급 비응급 환자들을 이송할 병상을 만들어 그 정보를 현장으로 전달하며 나중에는 영안실 정보까지 알아봐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국회의원의 전화를 받고, 그 국회의원의 방문을 받으며 자신이 그 문제로 전 국민이 보는 앞에 서야 할지 어떻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선의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 아무리 경찰의 직무가 중하여도 재난 현장에서 한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출동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을 그렇게 참고인 조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국회의원이 재난 현장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재난 현장으로 출동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에게 DMAT 차량을 자기 집 근처로 오라고 해서도 안 된다.

사전에 DMAT에 편성된 인원이 아니라면 아무리 의사라 하더라도 재난 현장에 스스로 가서 현장응급의료소장의 허가를 받아 자원봉사 형태로 재난응급의료에 임해야 한다.

재난 현장 못지않게 바쁜 중앙응급의료상황실로 임의로 전화를 걸어 재난 대응 관련 정보를 요구하고, 급기야 1분 1초가 급한 상황실을 방문하여 업무에 차질을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DMAT)으로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응급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뿐이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재난의료지원팀(Disaster Medical Assistance Team, DMAT)으로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도움을 절실히 원하는 응급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뿐이다. [사진=pixabay] ⓒ의협신문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하며, 소방재난본부의 상황실에서 119구급대원을 직접의료지도하며, 중앙응급의료센터 중앙응급의료상황실에서 상황의사 당직을 하며, 밤이든 새벽이든 주말이든 연휴이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전문성과 노고를 기억하고 존중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전문성과 노고를 존중해 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하고,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