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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입춘에 서는 상고대
입춘에 서는 상고대
  • 김세영 원장(김영철내과의원)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11.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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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 서는 상고대

겨울 내내 그치지 않는
짙은 가래의 기침을 하며
고장 난 필터의 폐포가 봄볕에 곪아
고름꽃이 되기 전에
입춘 새벽, 무주의 설천봉에 오른다


숨이 턱밑에 차올라 가슴을 열고
기관지를 잔설 위에 세우고
좁아진 여울목을 빠져나오는 
단조의 날숨소리로
능선 위에 수북이 정제된
안개의 소립자들을 불러본다


나의 허기진 부름에
빙점을 상실한 채 떠돌던 목숨알갱이들이 몰려와
동사한 육신들의 고사목,
앙상하게 육탈한 갈비뼈 끝에 매달려, 비로소
설중매처럼 서리꽃으로 핀다


아침 햇살이 꽃송이마다 꽃히어
천등처럼 열기 가득 품고 떠올라
새벽달 수번首番을 따라 떠나가는 꽃상여들 
상여 곡소리 한 마디 내지 않고
눈물 얼룩 한 점 남기지 않고 황망히 떠나가니
슬퍼도 아름답구나


저위의 등고선에 갇혀 오염된 허파꽈리,
서리꽃으로 피어나지 못하고, 끝내
고름꽃 폐염을 앓고 마는 고사목이 되어 
무성 흑백의 비극영화, 피날레에서
수직의 비문처럼 서서 맞이하는
설국의 아침은 적막해도 안온하구나.

김세영
김세영

 

 

 

 

 

 

 

 

 

▶김영철내과의원 원장 / <미네르바>(2007) 등단/시전문지 <포에트리 슬램> 편집인/시집 <하늘거미집> <물구나무서다>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디카시집<눈과 심장> / 제9회 미네르바 문학상, 제14회 한국 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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